충주시청 도로과 주무관 류정현

(동양일보)

공직에 입문한지 7년째를 맞았지만 언제부턴가 직업병이 생겼다. 공직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병이다. 몇 가지 사례로 내 자신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살펴본다.
우선 어떤 상황이든 불만을 표출하지 못한다. 일전에 친구와 함께 중국집에 간 적이 있다. 자장면과 탕수육을 주문하고 컵에 물을 따르려는데, 고춧가루 하나가 컵 주둥이에 말라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때 반응은 “저기요!, 여기 컵에 고춧가루 묻었잖아요!. 새 컵으로 바꿔주세요”라거나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라며 무심코 말을 내뱉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내 자신은 엄지손가락으로 고춧가루를 떼어버린 뒤 물을 따라 마셨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주문한 탕수육은 감감무소식이고, 마주 앉은 친구는 다리를 떨며 점점 초조해한다. “아, 왜 이렇게 안 나와”하며 사장님을 부르려는 친구를 향해 난 나지막이 말했다. “기다려 봐. 나올 거야. 그들은 프로야.”
언젠가는 배달을 시켰는데 음식이 오지 않았다. 직원끼리 주문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럴 수 있지”하고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그 다음 기다리느니 손수 할 수 있는 것은 지체 없이 뭐든지 한다. 술집에서 주문한 소주가 안 나오면 냉장고가 있는 곳으로 가 직접 갖고 온다.
물론 사장님께 양해를 구한다. 벨을 누르면 되지만 종업원이 오길 기다리는 것이 싫다. “소주 시켰는데 왜 안 갖다 주냐”고 재촉해야 하고, 또 소주를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게 된다. 차라리 직접 가져오는 것이 시간도 절약되고, 종업원도 덜 힘들고, 또 왕복하는 동안 칼로리도 소모되는 ‘일거삼득’이라는 생각에서다.
또한 퇴근을 하고 시내를 돌아다닐 때면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진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식당의 사장님과 종업원, 그리고 손님, 마트 계산원도 모두 충주시민이다. 일반 직장에 비하면 사무실에서 다시 만날 확률이 꽤 높다고 할 수 있다.
공무원으로 직업병인가?.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론 관대해지는 측면이 있다. 가끔씩, 난 왜 이럴까 자문해본다. 직장에서 민원을 많이 다루다보니 이젠 누구에게 따질 여력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심성이 너무 유약해 당당하게 불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일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이며 진보학자인 고(故) 신영복 교수가 생각난다. 신 교수는 현대사회가 부끄러움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시가 조성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살며 사람 간 지속적인 만남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전에도 만난 일이 없고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으니 식당이나 마트에서 종업원이 조금의 실수라도 하면 가차 없이 언성을 높이는 것이 이른바 소비자의 권리이자 합리적인 행동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당장은 그 사람과 만날 일이 없더라도 언젠가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역할로 다시 마주칠 수도 있다. 그 짧고 가느다란 확률로 인해 우리 사회가 다시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로 회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내가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은 식상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항상 완벽하고 합리적이어야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큰 숨 한번 들이켜 보는 여유를 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여러분도 혹시 주변의 모르는 이가 실수할 때, 그것이 명백히 비난해야 할 일인지 또는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 그럴 경우 ‘그럴 수도 있지’라는 관대한 생각과 함께 타산지석으로 삼는 습관을 길러 보는 것이 배려가 넘치는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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