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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6) 정복자의 흔적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6) 정복자의 흔적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7.07.06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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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리니다드는 쿠바 여행의 종결판이다. 국토 70%가 평지인 섬의 산, 바다, 들판이 어울려 여행자에게 안기는 선물 꾸러미다. 상자에 무엇이 들었을까 상상하며 마요르 광장에서 완경사 따라 올라간다. 십여 분 걸어 등에 땀이 맺힐 때쯤 종탑 하나가 길을 가로막는다. 뭘까 하고 가이드북 펼쳐보니 성당을 리모델링한 LCB 박물관이다. 반가운 마음에 아치형 문짝 배꼽 부분을 주먹으로 툭툭 친다. 고릴라 몸집 같은 나무대문 빗장 여는 소리가 삐거덕 들려오고, 빠끔 열려진 틈새로 노인이 얼굴을 내민다. 입장료 1쿡을 그에게 쥐어주고 어둠 속으로 빨려든다. 보이지 않는 힘이 당기는 계단은 컴컴해서 오를수록 어지럽다. 몇 백 년 전 쳤던 종소리가 고막 근처에서 윙윙거릴 무렵 시야가 틔어 카메라가 훔칠 수 있는 전망이 넓어진다. 붉은 점토 기와며 벽돌의 파스텔 색감 팝업창이 뜨고, 전망대는 아치형 가슴을 펼쳐 보인다. 전파송출탑이 보낸 파노라마 영상이 카리브해에 닿는 느린 그림엔 혼을 뺏길 것 같다. 일렁이는 황토색 지붕과 벽돌의 안구 정화는 덤이다. 선물상자 속 풍경화를 기억에 가까스로 저장했을 때쯤 전망이 흐려지면서 계단은 하향 에스컬레이터처럼 등을 떠민다. 언제 내려왔는지 몰라 두리번거린 순간 고릴라 배 모양 나무 대문이 여행자를 밀쳐낸다. 바깥으로 떠밀린 뒤 그때서야 안내판 글씨가 망막에 투영된다. 혁명 전후 반대 세력 토벌 작전에 썼던 건물이란 설명이 맥락 끊어지게 적혀 있다.  

뜨리니다드 LCB(lucha contra Bandidos) 박물관 종탑에서 바라본 전경. 멀리 구름 아래 카리브해까지 훤히 보인다.


마을을 되짚어 내려오며 여기저기를 살핀다. 골목을 기웃거리다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발목을 접지를 것 같다. 튀어나온 돌은 걸음 뗄 때마다 샌들에 툭툭 걸려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모서리가 덜 닳아 몽돌이라 부르기엔 애매하다. 유럽의 도로 곳곳에 깔린 돌들과 크기며 생김새도 사뭇 다르다. 지반도 제대로 다지지 않았는지 도로 가운데가 푹 꺼지고 여기저기 흙바닥이 드러나 있다. 돌출되거나 빠져 나간 돌 때문에 택시와 버스마저 설설 긴다. 꼬리 물고 오르내리는 차가 일으킨 먼지며 내뿜는 매연을 피하느라 걸음 떼기조차 힘겹다. 오랫동안 겪어 온 일이겠지만 불평하는 쿠바인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마을을 뒤덮은 먼지며 매연조차 유물인 듯 간직하고 있는 그들, 눈에 보이는 해로움은 능히 피할 수 있다는 표정이다.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바람결에 주름을 펴는 노인에게 다가간다. 매연으로 가려진 그들 속내를 들춰보려는 뜻이다. 해묵은 미소에 메타포 감춘 노인과의 소통은 쉽지 않다. 했던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 한 뒤, 지난 날 상흔 하나를 끄집어낸다. 정복자의 음험한 저의가 길바닥에 깔렸다는 게 노인의 입을 빌려 드러난다. 약탈한 설탕이며 시가를 스페인 배에 싣고 갔던 속 쓰린 얘기다. 돌아오는 배의 무게 중심을 낮추려고 하역지의 잡석을 실어왔단 말엔 명치에 돌덩이 얹힌 듯 먹먹하다. 스페인 정복자가 남긴 흔적은 그걸로 그치지 않는다. 로마 스페인 광장과 닮은 돌계단에 아무렇게나 박아 놓은 돌도 그들 소행이라 말한다. 아팠던 상흔을 지워버리지 않고 관광 자원으로 쓰는 지혜는 놀랍지만, 돌계단을 힘겹게 올라 색다른 걸 발견하고픈 맘은 생기지 않는다. 

노인에게서 돌아설 무렵 줏대 없이 바비큐 냄새가 코로 스며든다. 뱃속이 비어 코 끝 간질이는 냄새를 후각이 흘려보낼 수 없었나 보다. 고갤 들어 살펴보니 돌계단 위 레스토랑 마요르 간판이 보인다. 입간판 그림대로 다이끼리 칵테일 한잔이면 식민지의 아팠던 기억까지 말끔히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올곧은 정신이 미각과 벌인 밀당에서 패배해 계단을 성큼 올라선다. 레스토랑 노랫소리가 정지 신호를 보내고, 웨이터 손짓이 여행자를 테이블로 안내한다. 다이끼리에 카리브해에서 갓 잡아 올린 랍스터는 가성비 뛰어난 식사다. 가난한 여행자를 맞아들인 랑고스타가 메뉴판의 0 하나를 뗀 것 같다. 그 무렵 식곤증이 밀려들 걸 알고 관타나메라 기타 연주가 시작된다. 반쯤 뜬 눈에 어른거리는 ‘랑꼰 데 살사’ 간판이 그때서야 보인다. 계단 오를 땐 지친 데다 허기까지 겹쳐 그걸 미처 못 봤다. 시간이 일러서인지 살사 교습소는 여태 열리지 않았지만 미리 모여든 악단과 손님들만 질서 없이 연습에 몰입하고 있다. 못갖춘마디 연주 따라 추는 그들 살사는 더위며 잠을 쫓는 도구인 듯하다. 빠르게 배를 밀어냈다 당기길 되풀이 하는 춤 동작은 몸이 삼등분 되어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인다. 알고 보니 피땀 흘린 과거를 DNA 속에 감춘 쿠바인들이 그걸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나 보다. 돈 되는 것들을 정복자에게 죄다 내준 그들, 궁핍한 시간을 버텨낸 힘은 춤과 노래로부터 나온 게 틀림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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