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UPDATED. 2018-11-19 21:35 (월)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4) 타임캡슐로 가는 택시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4) 타임캡슐로 가는 택시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7.06.22 2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캡슐까지 가려면 흥정이 필요하다. 환갑 넘긴 택시엔 미터기가 없다. 손으로 힘겹게 내린 유리문 통해 서툰 대화가 오간다. 운전기사와 가난한 여행자가 벌이는 최초의 밀당이다. 관광객들은 달라는 대로 주고 타는 게 다반사다. 가난한 여행자는 그러기 쉽지 않다. 처음 제시한 절반쯤 금액으로 실랑이를 벌인다. 입맛 다신 운전기사가 엄지를 세워 차 시트를 가리키고, 나는 덜렁거리는 문고리를 조심스레 쥔다. 장석 헐렁한 문이 통째로 떨어져 나올 것 같다. 그걸 직감한 운전기사가 손을 내젓고 내 몸은 감전된 듯 차에서 급히 떨어진다. 그가 몸을 옆으로 기울여 열어준 문 틈새로 바닥이 꺼지기라도 할까봐 조심스레 발을 올린다. 빈 공간으로 어깨 내민 운전기사가 문을 힘줘서 당긴다. 작은 진동에도 차는 한참 동안 울렁거린다. 지나치는 차에서 요란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기분대로 발 구르다간 몸이 도로에 툭 떨어질 것만 같다. 말레꼰 따라 달리는 차는 그래서 속도를 높이지 않는다. 불안감 껴안고도 여행자는 이방의 풍경을 시선에 담기 바쁘다.  

타임캡슐까지의 거리는 종잡을 수 없다. 숱하게 대화가 오가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몇 개뿐이다. 카리브해 파도가 도로까지 도움닫기하고, 말레꼰의 검은 색 대포는 가슴마저 쫀쫀하게 한다. 포장한 지 오래된 도로는 여행자를 공깃돌 삼아 허공에 날리기도 한다. 그걸 통과하면 앞차가 내뿜는 매연이 허들처럼 유리를 시커멓게 가린다. 열린 차창으로 날아드는 기름 냄새엔 코를 막아야 한다. 그 다음으로 만나는 건 움직이는 빨간 신호등이다. 길 가운데 소몰이꾼 따라 뚜벅뚜벅 걷는 소들이 보여서다. 막 농사일 끝낸 그들 걸음에서 삶을 관조하는 지혜가 드러난다. 소 두 마리 등을 엮어 맨 농기구에서 쿠바 농업의 역사를 읽는다. 장애물 넘기가 운전면허 시험 과목에 포함된 걸까. 운전기사는 변화무쌍한 장애물을 잘도 피해 나간다. 재산 목록 1호인 택시가 멈춰서면 밥줄이 끊어지는 탓이다.   

택시 속도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속도계 바늘은 오래 전 떨어져 구멍이 메워져 있다. 타임캡슐에 다가가는 속도는 알 필요 없단 뜻일까. 아날로그시계, 라디오, 오일 온도계, 오일 압력계, 연료량계, 배터리 방전 경고등, 타코미터들이 한갓 장식처럼 보인다. 제각각 바늘이 달려 있지만 믿을 수도 없다. 계기가 몇 바퀴를 돌아 멈춰선 것일까. 주행거리 표시 아리비아 숫자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흥정 마친 요금에는 불안함을 달래줄 대가가 계산되지 않았다. 요금을 깎으려고 시도하지만 차는 이미 목적지에 다다른 것 같다. 고개 돌린 운전기사가 내게 손을 내민다. 타임캡슐 주소를 보여 달란 제스처다. 쪽지를 받아 든 그가 손가락으로 건물들 틈으로 난 골목을 하나하나 센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가니 하얗게 칠한 바위가 보인다. 인도 가장자리 하얗게 칠한 바위를 이정표 삼아 검은 글씨로 쓴 블록 표시가 눈에 확 들어온다. 차가 골목으로 접어들고, 낡아서 건물이라 부르기에 애매한 집 앞에 멈춘다. 나는 운전기사가 열어준 문으로 무거운 캐리어를 내린다. 골목을 휘돌아 온 바람 냄새가 낯설지 않다. 곳곳의 문화가 뒤섞인 타임캡슐 속엔 동양의 체취도 들었을 것 같다.  

타임캡슐이라 적힌 초록색 간판에 바짝 다가선다. 이방의 색깔이 눅눅한 바람에 펄럭거린다. 자세히 보니 어디선가 날려 온 과자봉지다. 관광객은 타임캡슐 겉모습만 훑다가 과자봉지만 버리고 돌아갔다. 60년 전 타임캡슐을 들여다보기엔 지나치리만치 견고했겠지. 세월을 견디다 못해 바늘마저 빠진 건물 중앙의 시계, 흔적이나마 남겨진 게 어딘가 싶다. 어둑해질 무렵 도착한 타임캡슐, 주인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여행자 캐리어가 무거울 거라는 걸 알면서도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는다. 감질나게 기내식을 먹어 입술이 바짝 마른 상태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든다. 이제부터 여행 시작인데 어쩌랴. 배고파서 잠이 오기나 할까. 유기농 천국에서 컵 라면 먹는 불상사를 겪는 건 아닐까. 여러 가지 걱정이 여행길 초입을 막아선다. 타임캡슐 향한 여행이 쉽지 않다는 걸 바늘 빠져 나간 계기가 가리키고 있다. <계속>   

타임캡슐로 가는 환갑 넘긴 택시, 계기판에 달린 눈금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작동되는 게없다.

*타임캡슐: 60년 전 유물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쿠바. 민박집 까사는 여행의 출발지여서 그렇게 이름 지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충청대로 103 (율량동)
  • 대표전화 : 043)218-7117
  • 팩스 : 043)218-7447,7557
  • 창간 : 1991-12-29
  • 제보전화 : 043)218-722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원중
  • 명칭 : 동양일보
  • 제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 등록번호 : 충북 가 00003
  • 등록일 : 1991-12-27
  • 발행일 : 1991-12-27
  • 회장 : 조철호
  • 발행/인쇄인 : 유영선
  • 편집인 겸 편집국장 : 김영이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ynews@d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