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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3) 쿠바엔 부채가 없다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3) 쿠바엔 부채가 없다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7.06.15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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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여행자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아바나. 펄떡거리는 말레꼰 포말에 몸 식히는 것도 잠시다. 토시에 모자까지 쓴 단체관광객은 햇볕 피하기 바쁘다. 부채질하는 얼굴엔 짜증이 켜켜이 쌓여간다. 가만히 서 있어도 숨 막힌다는 표정이다. 시큰둥하던 그들이 두리번거린다. 귀 기울여보니 악기 연주 소리가 들린다. 시선에 잡히는 건 엉덩이 흔드는 쿠바노 뿐이다. 그가 땡볕아래 홀린 듯 몸을 꼬고 있다. 더위 피하기도 바쁜데 춤출 여유가 있다는 게 뜬금없다.  여행자는 쿠바노 열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한바탕 연극 펼친 쿠바노, 흔들의자에 체중을 싣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다. 카리브해가 데운 열기는 부채로 쫓기엔 역부족이다. 뜨거워진 몸은 바람 속으로 밀어 넣어 식혀야 한다. 차양 드리운 곳, 흔들의자에 몸을 실은 그가 바람의 길을 연다. 흔들의자는 그러라고 집집마다 갖춰 두었다. 복잡한 거리만 벗어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경, 빼 놓을 수 없는 쿠바의 피서법이다. 흔들의자 마련해 주려고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했단 우스갯소리도 떠돈다.    

새벽녘,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지난 밤 무덥던 기억을 지우려고 바람이 골목을 쓸고 간다. 몸을 그네 태워 땀 식혀주던 흔들의자도 할 일을 잃었다. 파스텔 톤 단층집 안뜰, 마주보도록 놓아둔 의자 두 개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부부간 금슬이 흔들의자 배치에서 드러난다. 얼마나 정이 넘치면 이마 맞댄 채 일어섰을까. 손 맞잡고 잠자리에 들었을 그들, 달착지근할  대화를 떠올린다. 금슬을 두고 혁명이나 사회주의 이념 따윈 의미 없다. 카리브해 파도가 섬을 흔들어도 다독여 줄 반쪽이 있으면 그만이다. 부채 하나 없는 방, 더위 쫓는 비법을 유추해 본다.  

쿠바 서부지방 비냘레스 민박집인‘ 까사’ 전경. 쿠바 사람들은 집은 물론 도시 곳곳에 흔들의자를 설치해 휴식을 취하며 무더위 속에서도 여유를 찾는다.

1511년에 첫 삽 뜬 올드 아바나. 낡고 빛바랜 건물들을 더듬어본다. 허물어진 바로크식 건물 한 채가 걸음을 붙든다. 눈 반짝이며 폐허 속에다 발자국을 낸다. 단면 드러난 흙벽에 손바닥을 가만히 대 본다. 촉감만으로도 땀이 식을 것 같다. 내력벽 두께는 두 뼘이 넘는다. 새벽엔 카리브해 바닷바람이 몰려들 테고, 새들도 차가워진 바람을 물고 블라인드 틈새로 날아들겠지. 아이들 왁자한 소리가 골목을 메우는 건 기후 탓이 크다. 노래며 춤으로 태교한 아이들 몸 흔드는 실력은 예사롭지 않다. 퇴근한 쿠바노가 흔들의자에서 땀 식히는 동안 뽀요 냄새가 짙어진다. 아내가 남편 위해 유기농 채소 곁들인 저녁상을 꾸미는 거다. 사랑을 고명으로 얹은 닭 요리는 그녀 특기다. 아내 콧소리가 흔들의자를 멈춰 세우면 식사가 시작된다.   

쿠바에선 의식주에다 교육, 의료까지 걱정할 필요 없다. 세계 으뜸이라 자부하는 의료 시스템이 아기를 건강하게 키워준다. 영아 사망률이나 문맹률은 제로에 가깝다. 구황작물로 끼니 때워도 구걸하는 사람 없다.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에다 아파도 돈 걱정 안 하니 카리브해 햇볕이 뜨거운 줄 모른다. 집집마다 흔들의자를 나눠주기 위해 혁명했단 말이 맞나 보다. 지도자들이 제 주머니 채우려 국민 삶을 등한시 하지 않는 나라. 의식주에 골몰할 시간을 개인적인 일에 할애하면 된다. 요가나 피트니스클럽에 다니며 건강을 돌보고, 취미 활동이나 연인 선물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직장으로 향한다. 걱정할 일 없다보니 늘 웃고 노래하고 춤출 여유가 생긴 걸까. 부채 없이도 몸을 바람 속으로 밀고 들어갈 줄 아는 그들, 저녁 먹고 모여 앉은 가족 주위로 달무리가 태극선 같은 울타리를 친다. 차 소리 뜸해지면 도란거리던 가족에게 졸음이 엉겨 붙는다. 그들 떠난 흔들의자에 별들 한 무리 내려앉아 속닥거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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