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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15) 살사 클럽 1830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15) 살사 클럽 1830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7.09.0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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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다란 무대 위에서 펼치는 살사 경연대회. 무대 아래서도 어설픈 실력으로 남자랑 춤추며 별장의 꿈에 젖어 있다.

식당 개업식에 초대 받아 사람들과 어울렸을 때다. 유기농 쿠바 음식이 먹고픈데 메뉴는 죄다 한국식이다. 술잔이 오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간다. 취기 오른 누군가가 노래방 가자고 깃발을 든다. 군중 속에 끼는 게 싫은 옆 자리 여자가 인상을 찡그린다. 그녀는 토요일 저녁 살사 대회에 가야한다면서 눈을 끔뻑 한다.

귀한 자리에 낄 수 있겠단 생각에 술이며 음식 따위가 보이지 않는다. 노래방 가려고 일행들이 하나 둘 일어선다. 이때다 싶었던지 내게 신호를 보낸 여자가 딸과 함께 도망친다, 우리 셋은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 탈주극을 벌인다. 한참 동안 달리던 택시가 불빛 환한 1830 간판을 보고 멈춘다. 차에서 내린 순간 카리브해 끈적거리는 습기가 우릴 반기고, 아담한 건물 어디선가 악단 반주에 맞춘 음악이 흘러나온다. 오리엔떼 지방에서 발원해서 룸바, 맘보, 차차차를 탄생시킨 손 음악. 세상 향한 쿠바의 선물이라고 알려진 노래가 그들 긍지처럼 흥겹게 들려온다.

인간 세상과 동떨어져 깔끔하게 지어진 건물은 세상에 둘도 없는 파라다이스 같다. 곧 오백 살이 될 도시에 익숙해진 눈에 난데없는 신천지라니. 파도의 포말을 막으려고 지은 듯한 높다란 철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마당을 꽉 채운 사람들이 살사에 빠져 흐느적거린다.  

늦게 경연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철문 바깥에 줄지어 있다. 정원이 채워진 뒤엔 입장 못할 수 있다는 말에 긴장된다. 그때 여자가 쇠창살 너머 서성거리는 물라토를 부른다. 다가온 물라토가 여자에게 뭔가 얘길 건넨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그가 여자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보낸다. 그들이 주고받는 손짓에 담긴 의미가 뭘까 궁금하다. 내 표정을 읽은 그녀는 물라토가 자신의 살사 코치라고 귀띔해 준다. 코치가 경연대회 참가해서 응원하려고 왔다는 거다. 여자의 표정으로 봐서 입장엔 별 문제가 없나보다.

잠시 후 또 다른 물라토가 쇠창살 달린 문을 빠끔히 열고, 여자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그에게 건넨다. 어둠 속에서 돈을 확인한 물라토가 옆으로 비켜서서 틈을 만들어준다. 고개 돌린 여자가 눈을 찡긋하며 따라오란 신호를 보낸다. 족구장 크기의 1830 안뜰, 의자에 앉은 사람보다 선 사람이 훨씬 많다. 살사 코치가 다가와 귓속말 전한 걸 그녀가 통역한다.

믿기진 않지만 예전에 어느 귀족이 첩을 위해 지어준 집이 바로 1830이란다. 그 땜에 이혼율 높은 쿠바 여자들이 혹시나 하고 모여들어 짝 찾기 놀이를 하는 모양이다.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이 풍기는 술 냄새를 피해 망고나무 아래 가까스로 자릴 잡는다. 

대회를 지켜보는 동안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 둘에게 남자들이 끊임없이 손을 내민다. 그들에게 몇 번 손을 내젓던 여자가 쑥스러운 듯 나를 쳐다본다. 보호자가 되어 달란 뜻을 눈치 챈 나는 민망하다. 신세진 걸 갚을 기회다 싶지만 물리적 거리를 좁히긴 힘들다. 그녀는 내게 찰싹 붙은 채 중학교 갓 졸업한 딸을 춤판으로 떠민다. 어려야 뭐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겸연쩍게 웃는 그녀. 망고나무 화단 위에서 딸이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 눈빛이 반짝거린다.

교대로 다가온 남자들 귓속말에도 시선을 딸에게 둔 여자는 몸을 내게 더 밀착시킨다. 쿠바의 연인인 듯 착각에 빠진 나는 그녀 곁에서 근엄한 표정으로 남자들을 물리친다. 살사 열기가 뜨거울 무렵 여자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쿠바 온 지 한 달 넘었지만 밤늦게 나온 건 처음이라고, 딸 때문에 겁나서 밤 문화를 즐기지 못했는데 고맙다고.  음악이 멎고 스피커에서 안내 멘트가 흘러나온다. 나지막한 무대 위로 살사 경연에 참가할 커플들이 모여든다. 그들 옷차림은 조명 때문에 더 눈부시다.

음악이 시작되고 옷보다 더 현란한 춤 실력을 뽐내는 커플들 열기가 좁은 무대를 달군다. 경연과 상관없는 아래쪽에서도 서툰 솜씨로 살사를 추는 커플이 여기저기 보인다. 몇 차례 곡을 바꿔가며 진행되던 경연이 끝났다. 사회자가 무대로 올라와 수상자를 발표한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우레같이 박수를 친다. 곧이어 팡파르가 울려 퍼진다. 생일 축하곡에 가사만 바꾼 노래다.

코치가 수상하지 못해 김이 빠진 여자는 돌아가자며 팔을 잡아끈다. 템포 빠른 음악은 어느 새 맘보 리듬으로 바뀌었다. 그건 아이티 토착 종교인 부두교의 사제 이름에서 유래되어 ‘신과의 대화’ 라고 알려진 곡이다. 뮤즈가 되어도 좋을 여자와 대화 나눌 기회를 놓친 게 아쉬운데, 허황된 생각은 지우는 게 좋다는 듯 카리브해 파도가 말레꼰을 힘차게 때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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