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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16) 라틴 아메리카 마사헤 킴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16) 라틴 아메리카 마사헤 킴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7.09.14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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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가 훌리오 안토니오 메야를 기리기 위한 캠프. 입소자들에게 혁명 체험을 시키려고 군대 막사처럼 지어졌다.

노숙자 합숙소 분위기인 브리가다 캠프, 칠레 남자 움베르또 리더십 덕분에 힘들다는 걸 느낄 틈이 없다. 수많은 사람을 이끌고 다니며 구호를 선창하고 분위기를 띄운다. 움직일 때마다 주위가 시끌벅적하고 그가 없으면 바람 빠진 에드벌룬처럼 분위기가 싸하다. 그가 칠칠칠, 레레레 라고 외치면 무리들이 칠레, 칠레, 칠레라고 후렴을 넣는다. 순간, 낡고 열악한 캠프에 불을 훤히 밝힌 것 같다. 그 뒤로 단합,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칠레로 굳어진 거다. 저녁 자유 시간이면 그들은 야외무대를 배경으로 모여 웃고 떠든다. 뭔 얘기가 그리 많은지, 날마다 퍼 올려도 이야기 샘은 마르지 않나 보다. 테이블의 술도 화수분처럼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움베르또의 술을 마신 사람이 럼주를 테이블에 채워둔 탓이다. 

그들 곁을 지나치다가 움베르또에게 붙잡혔다. 시끌벅적한 게 싫어 피해 다녔는데 우연히 합석하게 됐고 최면에 빠진 듯 술을 마셔야만 했다. 그게 어깨를 짓누를 줄이야. 뭔가 보답할 게 없을까 궁리 끝에 마사지 해 주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날마다 힘든 노동에 시달렸으니 더없이 좋은 선물일 것 같다. 그들 중 나이 지긋한 움베르또가 젤 만만했다. 마당발인 그랑 가까워진다면 캠프 생활이 훨씬 수월할 거란 계산도 했다. 등이며 다리를 차례로 주물러 보니 잉카 문명 후손이라면서 의외로 뼈대가 약하다. 손끝에 힘 줄 때마다 아파 죽겠다고 비명을 지른다. 마사지 하는 걸 지켜보던 여자가 술잔을 엎질러가며 자지러질 듯 웃었다. 마사지 끝내고 일어선 움베르또가 조금 전 와인 엎지른 여자를 끌고 와 내 앞에 앉혔다. 고통이 얼마나 큰지 한 번 당해보란 뜻이다. 엇비슷한 세기로 마사지 했는데 여자는 시원한 듯 ‘부에노’ 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녀가 마사지 받는 걸 지켜보던 건너편 페루 여자도 내 앞에 줄을 섰다. 칠레와 페루가 어울린 모습에서 안데스 산맥의 잉카문명 속으로 깊숙하게 스며든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 감각이 사라지고 팔이 빠지기 직전 공중도시 마추픽추며 세계의 배꼽이라 일컫는 쿠스코를 거니는 환상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나랑 늘 함께 움직이던 일본인들은 움베르또를 칠레 노인이라 불렀다. 호칭과 달리 대접받으려는 기색 없이 몸 아끼지 않고 무슨 일이든 뛰어드는 걸 봐서 노인이라 불러선 안 될 것 같다. 서툰 마사지에 몸을 맡기곤 하던 그는 술자리가 벌어질 때마다 나를 불러 앉혔다. 그리곤 노예들이 고된 하루를 잊으려고 마셨던 럼주를 건넸다. 꼬냑이라면 사양했겠지만 사탕수수 찌꺼기를 발효시켜 만든 럼주여서 차마 물리칠 수 없었다. 안주로는 국수 다발처럼 생긴 초콜릿에다 올리브 절임이 전부다.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던 그는 내 소개를 빠뜨리지 않았다. 공짜 술에다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듣기가 미안해서 올리브 피클을 사다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자리를 떴다. 

저번보다 살이 쏙 빠진 움베르또는 어딘가 탈이 난 게 틀림없다. 마주칠 때마다 어두운 표정으로 ‘마사헤 킴’이라 속삭이며 미소 지을 때면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찡그리고 다니다가 그 순간이나마 환하게 바뀌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움베르또가 나를 마사헤 킴이라고 불러서인지 마사지를 끝내주게 잘 한다는 소문이 캠프에 퍼졌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어깨며 목에 손을 갖다 댄 채 찡그리곤 한다. 손을 내저으며 달아나곤 했지만 상태 나쁜 사람을 만나면 외면하긴 어렵다. 신통치 않은 실력으로나마 정성 다해 아프다는 사람을 지압했다. 십 분 정도의 마사지에 이마며 등이 흘러내린 땀으로 후줄근해졌다. 가뿐하다며 일어선 환자가 내 이마를 쳐다보고서 미안함을 버무린 엄지척 제스처로 사례했다. 서툰 실력으로 안마했으니 뭉쳤던 근육이 얼마나 풀렸는지는 알 수 없다.   

저녁 식사 시간에 움베르또를 만났다. 그가 아홉 시에 야외무대로 꼭 나오라고 꼬드겼다. 무슨 일일까 싶어 룸으로 돌아와 씻고 빨래까지 마친 뒤 밖으로 나갔다. 그들 앞에 차려진 술상은 평소와 딴판이다. 테이블 위에 생일 케이크며 못 보던 안주가 잔뜩 얹혀 있다. 누구 생일이냐고 물었더니 건너편 여자를 가리킨다. 농사일 끝나고 어깨를 주물러줬던 여자다. 내가 등장하자마자 움베르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술 마시던 사람 모두 그를 따라 일어선다. 움베르또 지휘에 맞춰 생일 축가를 합창한다. 나는 손뼉을 치긴 했지만 가사를 몰라 입만 우물거렸다. 그런 뒤 축하한다며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얼굴을 붉힌 여자가 내게 뺨을 내민다. 그들 습성에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나는 멈칫 한다. 대신 그녀 의자 뒤로 돌아가 정성 깃든 ‘마사헤 레갈로’ 를 손끝으로 전한다. 땀 흘리는 동안 움베르또가 ‘무이 비엔, 마사헤 킴’ 이라고 소리치고, 둘러선 사람들이 축가처럼 후렴을 넣는다. 혁명 전사들 영화 세트장에서 잉카 문명 후예들 피로를 풀어줬으니 라틴 아메리카를 주무른 마사지사가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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