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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 사상의 외연 넓힌 한·중·일 국제학술회의
동양포럼 / 사상의 외연 넓힌 한·중·일 국제학술회의
  • 동양일보
  • 승인 2017.09.2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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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생명수 / 야마모토 교시(山本恭司) 일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

야마모토 교시일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

지난 8월 한국에서 한·중·일의 학자·예술가·언론인·학생 등이 참가한 세 개의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한 지 72년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동아시아의 민중들이 한 그루의 생명수(生命樹)를 심을 때를 맞이했다. 동아시아는 야래(夜來)의 취우(驟雨)가 그치고 새벽의 보라색 그름이 어둠을 지우면서 천천히 밝아오고 있다. 우선 일본과 한국이다. 민중과 민중의 차원에서 점차 진정한 우호의 다리를 걸쳐가는 흐름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세 국제학술회의는 동양일보(회장 조철호)가 후원하고 동양일보 동양포럼 주간인 김태창 박사가 코디네이트했다.

충북 음성군에 있는 가톨릭계의 꽃동네영성원은 ‘꽃동네’라는 100만평의 아름다운 산골짜기에 있다. 주제는 ‘공공하는 영성을 함께 새밝힘한다’였다.

일본에서는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토대학(京都大學) 교수, 미야모토 히사오(宮本久雄) 도쿄대학(東京大學) 명예교수, 카타오카 류 토호쿠대학 준교수(准敎授), 변영호(邊英浩) 쓰루문과대학(都留文科大學) 교수, 기타지마 기신(北島義信) 욧카이치대학(四日市大學) 명예교수, 아베 나카마로(阿部仲麻呂) 일본 가톨릭신학회 이사, 가네비시 키요시(金菱淸) 도호쿠가쿠인대학(東北學園大學) 교수, 오오사와 시노부(大澤史伸) 도호쿠가쿠인대학 교수,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스즈카의료과학(鈴鹿醫療大學) 비상근강사(非常勤講師·전 신문기자) 그밖에 오구라 교수 및 카타오카 준교수의 세미나 대학원생들이 참가했다.

꽃동네 설립자이자 영적지도자인 오웅진 신부는 사람의 생명은 모두 평등하고 그 영혼도 육체도 차별 없이 구제되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노숙자·장애인·고아들 4000명을 꽃동네의 제반 시설에 수용하고 수사·수녀들과 봉사자들이 헌신적으로 돌보고 있었다.

꽃동네에서는 생명 그 자체가 무조건적인 가치라고 말한다. 안내해준 신부님은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고통이 있는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증명해주는 분이 바로 요한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한 사람의 영혼은 우주와 비할 만하다고 읊은 것은 조명희이다.

“공간의 무한의 길을 걷는 우주를 한 불사조에 비할진대 우주 자체나 한 마리의 새나 한 사람의 영혼이 무엇이 다르리오.”(시집 ‘봄 잔디밭 위에’)

사람의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다. 생명유지와 안락사의 문제는 쉽게 답이 나올 것 같이 않다. 이번 회의에서는 ‘사업과 사랑의 공동체로 연명’ ‘제도 속에 영성이 흡수돼 버리고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도 나왔고 ‘영성’과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오구라 교수는 ‘제3의 생명’을 논하면서 육체적 생명을 ‘제1의 생명’으로, ‘영생(永生)하는 보편적인 생명’을 ‘제2의 생명’으로,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에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생명’을 ‘제3의 생명’으로 명명하고, 공자의 ‘인(仁)’은 바로 그 제3의 생명이라고 말했다.

경북 안동에서는 8월 10·11·12일의 사흘간, 영남퇴계학연구원과 도산서원 선비문화 수련원의 공동주최로 제2회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 주제는 ‘외천활리(畏天活理)의 인문학(人文學)’이다. 이번에는 새로 증축된 수련원이 회의장소가 되었다. 이퇴계는 정치권력에서 거리를 두고 평생 ‘이(理)’를 중시하고 이발(理發), 이동(理動)을 강조했는데 말년에 ‘이도(理到)’라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주최 측으로 이동건(李東建) 영남퇴계학연구원 이사장, 김병일(金炳日) 동 수련원 이사장, 김종길(金鍾吉) 동 수련원 원장, 최재목(崔在穆) 영남대학교 교수 등이 회의 준비에 맡았다.

또 우젠(吳震) 중국 복단대학(復旦大學) 교수, 린유에후이(林月惠) 대만 중앙학연구원(中央學硏究院) 교수도 참석했다.

김광래(金光來)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人文社會系硏究科) 연구원은 ‘일본에서의 이퇴계 연구’에 대해 발표했다. 에도시대(江戶時代)의 주자학자에 의한 퇴계 찬양이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황통(皇統)’과 연관 지어져 왔고 일본에서의 퇴계 이해가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 이후로 ‘황통’이라는 편견으로 왜곡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서 김봉진(金鳳珍) 키타큐슈시립대학(北九州市立大學) 교수가 문제 제기했다. 또 다케나카 히데토시(竹中英俊) 전 도쿄대학출판회 상무이사는 일본 내의 조선성리학의 발자취를 소개한 고전적인 명저인 아베 요시오(阿部吉雄)의 ‘일본주자학과 조선’이 간행된 경위를 소개하고 눈길을 끌었다.

퇴계 이해를 불교의 화엄사상의 시각에서 파악하려 한 것이 오구라 기조 교수이다. ‘이치(理)란 무엇인가’에서 오구라 교수는 주체(이치)α, 주체(이치)β의 메타 주체(이치)로 ‘주체(이치) X’를 조정(措定)하고 퇴계가 만년에 도달한 ‘주체(이치)X’의 경지는 화엄 불교의 극치인 ‘사사무에법계(事事無碍法界)’의 체인(體認)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주장했다. 오구라 교수가 퇴계와 불교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은 것이 일본과 한국의 사상가·철학자 사이에 어떤 논의를 일으킬 것일까?

카타오카 류 교수는 한반도의 퇴계의 ‘이발(理發)’, ‘이동(理動)’, ‘이도(理到)’를 16~17세기에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에서 전개된 ‘인본주의’와 ‘신비주의’와의 접합과 비교하면서 공시적으로 ‘새로운 신심(信心)’이 생기(生起)되었다고 보았다.

지금 동아시아에서 장차 일어나고자 하고 있는 21세기 인문 혁명에 상응하는 종교개혁이 지금 세계의 어딘가에서 공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미래공창(未來共創)의 차례이다. 그것은 대화(對話)·공동·개신(開新)·개벽(開闢)을 뼈대로 삼는 ‘공공(公共)하는 철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8월 13, 14, 15일의 사흘간은 충북 청주대학교에서 ‘영혼의 탈식민지화(脫植民地化) ·탈영토화(脫領土化)와 미래공창(未來共創)-조명희(趙明熙)·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루쉰(魯迅)의 비교 조명-’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일본에서는 시바타 쇼지(柴田勝二) 도쿄외국어대학 교수,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오사카대학 교수, 중국에서는 꿔쟈웨이(國家瑋) 중국산동문학원(中國山東文學院) 교수가 참여했다. 참가자는 총 40명이었다.

회의 전날은 진천의 조명희 탄생지와 조명희 기념관, 그리고 그가 처형당한 러시아 땅을 바라보는 조명희의 동상을 견학하고 현대 한국이 낳은 위대한 시인·작가인 조명희의 사적과 유덕을 기렸다.

13일의 개회식에서는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이 인사를 했다. 회의장에는 약관 스무 살의 여류 화가인 김성우 화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늘을 향해 곧게 솟는 나무와 생명에너지를 상징하는 용이 약동하는 모습을 그린 ‘아무르 강의 생명수’는 조명희의 이상주의를 훌륭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조명희의 특성은 미래를 지향하는 강렬한 생명력과 포용력이다. 소세키와 루쉰은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자부심을 가질 수가 없었고 시대와의 괴리에 시달렸다. 그러나 조명희에게는 미래에 대한 끝없는 도전과 희망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인 ‘한’인지도 모른다.

김태창(金泰昌) 주간은 영(靈)과 혼(魂)의 차이점에 대해 ‘혼’은 개인 속에서 작동하는 개체생명이고, ‘영’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우주 사이에서 작동하는 에너지로 기(氣)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의식을 수반하는 독립성의 상실이 ‘식민지화(植民地化)’이고, 자각되지 않을 만큼 깊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상실한 상태를 ‘영토화(領土化)’라고 일단 정의했다.

후카오 요코 교수는 중국어를 써서 중국사회에서 살게 되면서 일본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답답함에서 해방되고 자신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때까지 일본에서는 가짜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영혼을 덮는 껍질이 벗겨지는 ‘영혼의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다. 영혼의 식민지화에는 ‘억압과 피억압 관계’와 ‘상호의존 관계’ 등등 다양한 사례가 있고 ‘탈’ 경험은 인생에서 몇 번이나 반복된다고 밝혔다.

또 시바타 교수는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이 당시의 일본과 한국의 관계와 조응시키고 있으며, 특히 ‘행인’에서는 일본의 우의화(寓意化)인 주인공의 영혼이 식민지화와 영토화의 반동으로 자신의 영혼이 식민지화되어가는 혼란과 고뇌를 그려냈고 분석했다. 소세키 작품에는 ‘현재 일본’에 실망해서 미래에 희망을 거는 미래 지향성을 볼 수 있다.

중국의 꿔쟈웨이 교수는 루쉰은 당시 중국의 현실에 대한 갈등과 어둠을 보고는 미래에 희망을 갖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고 밝혔다.

만약에 루쉰이 21세기에 살고 있다면 인터넷을 이용한 언론활동으로 국가와 사회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날카로운 관찰력을 발휘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중국은 통일 이데올로기를 추구하고 있지만, 루쉰 문학의 지향성은 통일 이데올로기를 깨뜨리는 데에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횡단매개橫斷媒介 하는 8월의 한·중·일 학술회의 /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지난 8월 상순, 3개의 국제학술회의가 잇따라 개최되었다. 각 회의의 주제는 다양했지만 그 속에는 몇 가지 일관된 주제가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영성(靈性)·영혼(靈魂)’이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로 삼은 것은 지금의 우리 삶과 동떨어진 초자원적·형이상학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영성은 너와 나, 자기와 타자 사이를 매개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그것을 ‘기(氣)’의 작용으로 보았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은 오늘날 흔히 ‘영’, ‘혼’, ‘영혼’ 등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의 ‘르아하(ruah)’, 그리스어의 ‘프네우마(pneuma)’, 라틴어의 ‘아니마(anima)’, ‘스피리투스(spiritus)’, 산스크리트의 ‘프라나(prana)’, ‘아트만(atman)’ 등은 모두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숨’, ‘입김’, ‘호흡’, 혹은 ‘바람’, ‘불다’ 등의 의미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동양 한자문화권에서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로 ‘기(氣)’에는 ‘논어’ 향당(鄕黨)편에 ‘숨을 죽이다(屛氣)’라고 하듯이 ‘숨’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이와 같은 ‘숨’은 뒤에 종교와 철학에 의해 생명원리로 내면화·개체화되거나 혹은 신의 영혼으로 보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동시에 너와 나 사이를 도나들며 매개하고 맺고, 잇고, 살리는 것이기도 했다. ‘논어’에도 ‘사기(辭氣·말, 말씀)’이라는 용례가 보이고 오늘날에도 ‘분위기(雰圍氣)’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의 ‘영성’을 다시 일깨우고 빈부격차, 남녀차별, 세대 간 갈등, 국가와 민족과 종교 등의 대립을 극복할 길을 찾자는 것이 이번 회의의 취지였다.

첫 번째 회의 때에는 먼저 꽃동네의 고아원, 중환자병동, 양로원, 묘지, 특수학교를 견학한 다음, 꽃동네의 연혁과 활동 소개, 꽃동네의 창립자이자 이사장인 오웅진 신부의 강의와 토론이 있었다. 이어서 영성에 대한 연구동향과 꽃동네에서의 케이스스터디 소개를 비롯하여 마더 테레사 수녀, 메이지 일본의 특이한 기독교 사상가인 아라이 오오수이(新井奧邃), 남아프리카의 ‘우분투’, 에도시대 일본의 과격한 농본주의(農本主義) 사상가인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러시아적 영성, 일본적 영성, 유학, 19세기 한국의 최한기(崔漢綺) 기학(氣學)과 최제우(崔濟愚)의 동학(東學)에 있어서의 영성에 대해서 발표와 논의가 이루어졌다.

필자도 개체의 생명인 제1의 생명, 우주적 생명인 제2의 생명에 대한, 자기와 타자 사이에 일어나는 ‘제3의 생명’, 동일본대지진 후에 나타난 기묘한 유령 이야기, 예수의 ‘치유’와 ‘기적’의 현대적 의의 등등 ‘영성(靈性)’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발표하고 논의하였다.

그 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꽃동네대학교의 김승주 신부가 생명윤리의 문제로 제기한 층격적인 사례였다. 밤마다 술을 마시고서 아들·딸을 학대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심지어 어느 때 17세가 되는 딸을 강간하고 임신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고민 끝에 꽃동네를 찾아와 신부와 상의해서 낙태하지 않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미혼모 대안학교로 전학하고 반년 후에 출산해서 집에 돌아왔다. 자기 딸이 안고 있는 갓난아이를 본 아버지는 딸의 발밑에 엎드려 울면서 회개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술을 끊고 아이가 입양될 날까지 한껏 아이를 돌보았다.

김승주 신부는 “가정의 ‘축복을 못 받은 아기’가 태어나서 온 가족을 축복했다. 이것이 생명이 가지는, 생명만의 힘”이라고 결론지었다. 무력한 갓난아이가 아버지를 개심(改心)시키고 가족 세 명의 운명을 바꿨다. 이 ‘힘’은 역시 이성도 감성도 아니고 ‘영성’의 힘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회의 ‘외천활리의 인문학’에서는 이퇴계의 ‘이(理)’가 주제가 되었다.

이퇴계는 이발설(理發說) 즉 ‘이’가 능동성을 가지고 발(發)한다고 주장했다. 유명한 사단칠정이기호발설(四端七情理氣互發說)에서 사단(四端)은 ‘이가 발하고 기가 따른(理發而氣隨之) 것’이라고 설명되었다. 퇴계는 그 이발설을 발전시키고 ‘이동(理動)’, ‘이도(理到)’를 주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전개는 중국에도 유례가 없고 한국의 독자적인 사상으로 중국권의 연구자들도 주목되고 있다고 한다.

퇴계에 의하면 ‘이’가 정의(情意)가 없고 조작(造作)도 없는 것은 ‘이’의 본체(本然之體)이지만 사람의 마음이 가는 곳마다 발현하지 않음이 없고 이르지 않음이 없는 것은 ‘이’의 ‘지신지용(至神之用)’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지신지용 즉 지극히 신통스런 용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퇴계는 ‘이’가 죽은 것(死物)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것(活物)임을 강조했다. 만약 ‘이’가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연법칙이나 법률의 조문, 윤리규정과 같은 무기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 훨씬 가까워진다.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그의 곁에 다이모니온(귀신)이 있고, 그가 악한 짓이나 생각을 하려했을 적에는 ‘안 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지만, 퇴계도 역시 ‘이’를 그것과 비슷하게 악을 말리고 선을 권장하는 신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본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안에서 김태창 주간이 “위대하신 퇴계선사를 우러르고 받듦에 종래의 방법이 서책의 행간과 담론의 범주에 집착하고, 송학(宋學)의 성리학에 주박(呪縛)되고, 더구나 훈고의 유치(幼稚)에 정체된 관점과 수준으로 퇴계선사를 제대로 논의하고 연구하지 못하였으니,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나 그 어른의 덕성(德性)과 거보 전인격(全人格)을 높게, 넓게, 깊게 세워 받들기를 지향하여 퇴계선사의 진면목을 재조명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과거의 이른바 한국 유학, 한국 주자학, 영남 퇴계학 등의 방법론적 협애(狹隘)와, 사대적 고루(固陋)를 뛰어넘는 것이라 학계 특히 신진 학자들에게 상당한 자극과 충격을 준 것으로 생각되었다. 앞으로도 김태창 주간의 그러한 소신과 제창은 계속될 것이다.

세 번째 회의 ‘영혼의 탈식민지화와 탈영토화’에서,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교수는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기 혼 위에 ‘가짜 자기’라는 뚜껑을 놓고 참된 자기 혼을 감금해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자기는 남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삼고, 자기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억압하고 마는 것이다. 당연히 그 억압에 따른 무리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 병폐는 몸과 마음의 병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남에 대한 억압(식민지화)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김태창 주간은 ‘식민지화’와 ‘영토화’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남의 지배하에 놓이고 자기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 ‘식민지화’인데 대해,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영토화’라고 한다고 밝혔다.

식민지화 및 영토화는 오래되었으면서 새로운 문제이다. 충북대학교 김용환(金容煥) 교수는 ‘식민지화·영토화’를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無名)’과 관련시켜서 설명했다. 또 회의에서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도 거론되었다.

동굴 안에 여러 사람이 벽을 향해 묶여 있다. 그들은 뒤에서 켜 있는 불에 의해 생기는 그림자만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실재 사물이라고 믿고 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어떻게 해서 태양이 비치는 동굴 바깥으로 도망쳤다. 그는 이제야 자기들이 여태까지 보았던 것이 단지 그림자,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제국주의는 곧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를 수반하고 있었다. 군사력으로 압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피지배자가 지배를 당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스스로 생각해야 식민지 지배가 수월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조명희, 나쓰메 소세키, 루쉰은 바로 그러한 시대에 살고 각각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러한 지배의 논리와 맞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만의 과제가 아니다. 오늘날 정치적· 직접적인 제국주의는 사라졌다 하더라도 거대기업·대자본의 논리에 의한 영혼의 식민지화· 영토화는 여전히 계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세 개의 회의들을 일관하는 또 하나의 주제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들의 세대간 대화였다. 이번 회의에서는 많은 학부생, 대학원생, 실천가들이 참석해고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또 하나 이번 회의에서는 가능한 한 기존 학술회의의 틀을 타파하려는 시도를 볼 수 있었다. 청주의 회의장에는 김선우 화가가 조명희의 심상(心象)을 그린 ‘아무르 강의 생명수’와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행인’, 그리고 루쉰의 ‘아Q정전’의 이미지를 그린 그림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 그림을 어떻게 보느냐 해석도 다양했다. 김선우 화가의 그림이 있었기에 더더욱 자유로운 토론이 촉발된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포석의 찬가를 한국 시인이 짓고, 그것을 일본 학자가 번역하고, 다른 일본 학자가 낭송을 하여 개회식의 분위기를 돋우었고, 중간에도 가곡을 곁들여서 주제해석에 도움이 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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