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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20) 당나귀 턱뼈, 우이루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20) 당나귀 턱뼈, 우이루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7.10.2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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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턱뼈로 만든 악기 우이루. 제각각 크기 다른 치아가 높낮이 달리하며 말 달리는 소리를 낸다.
김득진 작가

 오백 년 가까이 빛을 빨아들여도 골목은 여전히 어두컴컴하다. 빛으로 공연하길 포기한 아바나는 소리 마술을 시작한다. 술래잡기 할 때 박수이듯 소리로 바뀐 빛이 잠든 뇌 세포를 깨운다. 시소 한 끝에 올라탄 태양 열기가 소리 무게 땜에 까마득 멀어진다. 진폭 키운 소리가 달빛을 배터리 삼아 밤새 축음기를 돌려댄다. 빛이 스러진 골목에 그라마폰 스피커로 생기 불어 넣을 모양이다. 질곡의 세월을 변주해서 태어난 음악인 손도 그들 율조에 마력을 보탠다. 뒤늦게 켜진 가로등이 골목에 숨어든 소리를 호명하고, 악단 악기들이 성가셔 쟁였던 빛을 튕겨낸다. 연주 전 조율 시간, 본능 못 이긴 사람이 어깨며 엉덩이를 요란하게 흔든다. 보이지 않는 날개 휘저어 하늘로 붕 떠오르겠다는 몸짓이다. 어릴 때 배운 듯한 어깨 놀리는 실력은 흉내내기 어렵다. 동전 굴러가는 소리에도 춤춘다는 그들이기에.

소리에 취한 발이 골목을 뒤로 자꾸 밀친다. 눈앞에 성 프란시스코 성당이 스쳐간다. 어디선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규모의 연주 소리가 들려오고, 관중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간다. 흥을 주체하지 못한 대 여섯 살 여자애가 악단 앞으로 나선다. 노란 치마 팔랑거리며 어깨 움칫거리는 몸놀림은 어른 못지않다. 허리 돌려가며 배꼽에서 가슴께로 두 손 자연스레 끌어올리는 실력은 프로에 가깝다. 중독이 된 탓일까. 낯선 소리 들을 수 있을까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귀에 손을 모은다.

어떤 소리가 새벽을 깨울까 해서 산책을 나선다. 소음마저 잠든 골목에서 귀한 소리를 낚으려는 뜻이다. 오백 년을 앞둔 중세 바로크 풍 도시는 방음에도 소홀하지 않다. 걷다가 다리 아플까봐 간간이 설치해 둔 공원, 집 한두 채 지을 땅에 설치한 그게 방음벽이다. 둘레엔 소박한 나무 벤치 두엇 놓였고 가운데는 나라 구했거나 빼어난 업적 남긴 영웅 동상이 세워져 있다. 평범이 외려 특별하게 보이도록해서 여행자 시선을 끄는 것이다. 자주 스친 공원은 그래서 더 정겹다. 낯선 소리 한 가닥이 고막 거쳐 달팽이관을 돌아든다. 안경 추켜올려 소리 들린 곳이 어딘지 살핀다. 잡음 가라앉은 공원 벤치, 중년 남자 둘이 각기 다른 악기 들고 앉아 있다. 기타야 흔하지만 처음 보는 악기 땜에 시선이 붙박이 된다. 호기심이 벤치와 나를 가까이 갖다 붙인다. 처음 보는 악기는 동물 턱뼈를 발라 묶은 거다. 그걸 나무 막대기로 긁어 낸 소리가 낯설다. 기타는 턱뼈 연주 소리와 어우러져 전혀 다른 음색을 낸다. 궁금하지만 연주에 몰입한 그들에게 묻는 건 실례다. 연주 들으며 사진 찍고 나서 주머니에 든 동전을 깡통 속에 던져 넣는다. 먹는 건 배급 받아 문제없어도 턱없이 비싼 공산품 사려면 돈이 필요할 테니까.

쿠바를 대표하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악기는 다양하다. 기타, 플루트, 봉고, 까라마스, 체께라, 피아노, 뜨레스, 트럼펫, 콘트라베이스, 북, 페르꾸시온, 센체로 등이다. 사진 찍은 걸 샅샅이 살펴도 동물 턱뼈 모양 악기는 보이지 않는다. 까사에 돌아오자마자 주인 여자에게 폰을 열어 보이며 묻는다. 그녀도 본 건 맞는데 이름은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나의 채근에 귀찮았던 그녀가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땍땍거리는 목소리로 묻는 동안 귀가 먹먹하다. 거의 모든 자음이 경음으로 이루어진 스페인어를 들으면 싸움판에 뛰어든 것 같다. 고막 찢어지게 내뱉던 주인 여자 소리가 멎는다. 그녀로부터 동물 턱뼈로 만든 악기가 생겨난 기원을 알아낸다. 당나귀 턱뼈로 만든 악기는 안데스 산맥에서 비롯되었고 이름은 <우이루> 라고 한다. 단단한 당나귀 턱뼈를 도구로 쓰기 시작한 건 삼손이 그것 하나로 적군 천 명을 물리쳤다는 성경 이야기가 처음이라면서.

나는 당나귀 턱뼈 연주하는 환청에 이어 말 등에 올라 탄 착각에 빠져든다. 사람 편리에 맞춰 발굽에 징이 박히는 동물. 제 꾐에 스스로 빠지기도 하는 짐승 턱뼈로 악기를 만들고, 크고 작은 이빨이 음계 이뤄 말 달리는 소릴 내는 것이다. 말발굽 소리 내는 우이루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대표 악기로 등극할 날을 기대해 본다. 상아빛 악기 하나로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더듬어보는 시간, 여객 터미널에 정박 중인 유람선 무적 소리가 또 다른 악기 되어 소리의 고향 안데스 산맥으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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