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 시조시인, 디카시집 ‘쇠기러기 설악을 날다’ 발간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시조가 만나 새로운 예술이 피어났다.

충북 진천 출생의 원로시인 이상범(83) 시인은 최근 디카시집 ‘쇠기러기 설악을 날다’를 펴냈다.

전체 시집으로는 24번째, 2007년 처음으로 펴낸 디카시집 ‘꽃에게 바치다’ 이후 꼭 10년 만에 나온 여섯 번째 디카시집이다.

사진 한 컷에 짧은 시조 한편. 어찌 보면 단순하다 할 수 있겠지만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강렬한 사진에 감각적인 시어가 더해진 그의 시는 빈틈없는 울림을 준다.

시와 사진의 콜라보레이션은 시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사진은 시의 소재가 된 것들을 눈앞에서 생생히 보여주기 때문인데 사진 속 형상이 시 속에서 어떻게 표현됐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는 오늘날 난해하고 어렵다는 이유로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현대시와 독자 간 교량의 역할을 맡기에 충분하다.

‘날 것’ 그대로 실린 사진들도 있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배경이나 줄기부분을 지운 것들도 있다. 남길 것만 남겨 보여주는 이 작업이 오히려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매력,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시인은 한편의 디카시를 완성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km의 발품을 팔아 시 소재를 찾는다. 여든 셋 나이의 원로시인이 몸으로 쓴 시라고 할 수 있다.

디카시 한편을 위해 하루에도 약 100여장의 사진을 찍는다는 이 시인. 그는 선구안을 통해 시의 소재를 카메라로 포착한 후 이를 포토샵으로 불러들여 수천번의 섬세한 손질을 한다. 이러한 형상화 과정에서 그는 시의 영감을 떠올리고 간결하고 정갈한 단시조로 완성시킨다.

책은 4부로 구성, 모두 80여편의 시를 담고 있다.

“설악에서 나래를 고정 / 쏜살같이 내닫는 도래지 / 한 사흘 머물다 서해안 / 겨울나기 할까 보다 / 자욱한 철새족의 축제 / 춤으로 푼 고향 사투리…”(‘쇠기러기 비행’ 전문)

서해안으로 겨울나기를 떠나는 철새들의 모습은 이 시인의 눈을 통해 ‘쇠기러기 비행’이라는 작품으로 태어났다. 이번 시집의 제목도 이 시로부터 나왔다.

지난해 가을 강원도 백담사를 찾아간 이 시인은 설악산을 넘어와 도래지를 향해 나르는 철새 떼를 포착했다.

병환 등으로 인해 삶의 날개를 활짝 펴보지 못했다는 이 시인은 철새와 같이 언젠가 다시 한 번 날개를 활짝 피고 자유롭게 날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이번 시집의 제호를 정했다.

“톡 하는 밤 아람 소리 <우주의 새 아들> 기별이고 / 하늘이 날 버릴 양이면 <벼락의 영광>을 달라 시던 / 이 땅의 눈부신 빛 뒤로 어두움 속 감긴 눈. / 나라 민족 고향 사랑, 사람과 문학의 질긴 인연 / 침 발라 장 넘기는 필적 향과 빛의 보석 같다 / 그 빛이 서른 개 보석이라면 빛을 본 건 여남은 개”(‘포석이 남긴 빛’ 전문)

이 시인은 포석 조명희 선생과 동향이다. 또 그를 기리는 포석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 시인은 포석을 떠올리면서 사진과 시를 통해 예술과 역사의 순간을 함께 기록했다.

이 시인은 “사진을 찍고 포토샵을 시작한지 어언 15년이 흘렀다. 디지털시대를 맞아 디카사진과 시와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데 일조했다는 자부심도 있다”며 “시가 사진을 만나 핵반응을 일으키듯 감성의 높은 경지를 이룩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한국문학상, 중앙일보시조대상, 육당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이호우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한국시조시인협회장,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등을 지냈다. 최근까지 시집 ‘별’, ‘신전의 가을’, ‘풀꽃시경’, ‘초록세상 하늘궁궐’ 등 24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이번 책의 출간 기념회는 오는 10일 오후 4시 진천포석조명희문학관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해드림 출판사. 240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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