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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21)아내 바보 디에고 비센떼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21)아내 바보 디에고 비센떼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7.11.02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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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가다 캠프에 입소한 디에고 비센떼 부부. 예순 나이지만 잠시라도 떨어지는 걸 싫어한다. 무료한 캠프, 그들 사랑이 박카스 역할을 했다.

브리가다 캠프는 눈요기할 게 거의 없다. 그 땜에 본부에서 디에고 비센떼와 파트리샤를 불러들였나보다. 예순 전후 그들 부부 사랑이 여태 식지 않은 걸 몰랐던 걸까. 파트리샤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디에고 눈이 희번덕거린다. 부릅뜬 눈으로 고함치는 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 울린다.

“파트리샤! 파트리샤!”

자기 아내 찾겠다는데 나무랄 사람은 없다. 두리번거리다가 그녀가 나타나면 ‘아모레 미오!’ 라는 멘트를 아무렇지 않게 날린다. 표정까지 싹 바뀐 그가 파트리샤를 부둥켜안는다.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표정은 자못 진지하다. 술 몇 방울이 목구멍 적신 뒤면 그가 희극배우로 바뀐다. 불그스레한 얼굴, 넘실거리는 미소엔 넓은 가슴의 소유자라는 메타포가 넘실거린다. 표정 연기의 달인, 그를 지켜보면 헐리우드에서 오래 연기 수업 받은 사람 같다.

배를 쥐고 웃도록 한 뒤 시치미 뚝 떼는 디에고. 어떤 일과 맞닥뜨려도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다. 아내 곁에 머무를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표정이다. 아내가 잠시 자릴 비웠다 나타나면 얼싸안고 입 맞추기 바쁘다. 잠시라도 떨어져 지내는 건 부부 아니란 듯, 식사 후에도 그는 아내에게 입을 들이댄다. 파트리샤가 인지를 들어 올려 디에고 눈앞에서 좌우로 흔든다. 냄새나서 안 된다고 그를 밀쳐내는 거다. 머쓱해진 그는 벌린 두 팔을 거둬들인 뒤 서둘러 양치질 한다. 세면장에서 칫솔 들고 나오는 동안 아내를 부른다. 그때서야 디에고 품에 안기는 파트리샤. 어깨 치켜 올리며 방에 들어선 디에고가 해먹 모양 침대에 몸을 눕힌다. 아내 다음으로 중요한 시에스타를 찾아 먹겠다는 뜻이다.

디에고의 역할은 아내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다. 룸메이트가 심심할까봐 인떼르나쇼나르르르르르~ 라고 가끔 소리 지른다.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디에고 발음에 옆 방 일본 사람이 배꼽을 잡는다. 그들 언어에 혀 떨어대는 발음이 없어서다. 룸메이트 그리스인 둘도 일본인과 마찬가지다. 아르바니스타는 한 뼘 길이 구레나룻을 떨어가며 발까지 굴린다. 배를 움켜쥐고 있던 아르바니타스가 침을 튀겨가며 디에고에게 한 번만 더 해 보라고 부추긴다.

흥이 난 디에고는 꼬멘사르르르르르~, 마차르르르르르~를 연이어 내뱉는다. 다닥다닥 붙은 방마다 터져 나온 웃음소리가 캠프를 환하게 밝힌다. 모든 게 불편하기만 한 캠프 생활. 디에고가 만든 웃음은 감칠맛 나는 소스 역할을 한다.

디에고는 전기면도기를 들고 살다시피 한다. 여자 이길 남자 없다더니, 수염이나 머리카락 자란 걸 파트리샤가 싫어하는 게 틀림없다. 아내 사랑에 필요한 에너지는 그뿐 아니다. 어둠살이 드리우면 디에고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에 화답하려는 듯 파트리샤 눈빛도 반짝거린다. 저녁 먹고 난 디에고가 노천카페로 가서 캔 맥주를 산다. 그런 뒤 시에스타 의자에 앉은 아내에게 다가가 어깨에 살짝 올린다. 후텁지근한 캠프에서 냉장고 속 맥주는 마른 논 적실 소나기다. 그들 주위로 콜롬비아 사람들이 럼주를 들고 모여든다. 주물로 만든 테이블이 언제 옮겨온 건지, 그 위에 안주가 언제 차려진 건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때부터 조용하던 캠프가 시끌벅적해진다. 콜롬비아인 특유의 사교성 땜에 오가는 사람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한두 잔 얻어 마시고 한 병을 사서 테이블에 갖다 놓는 건 라틴 아메리카 술 문화인 모양이다.

열악한 캠프 도미토리에서 남녀 구분은 확실하다. 그 땜에 디에고 부부가 술자리 끝내는 걸 싫어하는 걸까. 각방 쓸 각오 했겠지만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쿠바에서 떨어져 지낸다는 게 마뜩찮은 모양이다. 갈증 탓인지 파트리샤도 틈만 나면 남편을 찾는다. 불러도 대답 없을 땐 우리 방에 머릴 들이민다. 남 시선 따윈 무시하고 디에고 침대에 우람한 엉덩이를 걸친다. 침대에 누운 디에고 배를 쿠션 삼아 책 읽는 척 기운을 주고받는다. 그러는 중에도 디에고는 아내에게 은근한 시선을 건네기도 한다. 비스듬히 기댄 파트리샤 눈에 활자가 보이기나 할까. 이층 침대에서 내려다본 애틋하고 아름다운 그림이다. 캠프 요원들도 둘의 사정을 알지만 어쩔 수 없나보다. 보름을 견뎌 낸 그들 인내심은 대단하다. 디에고 부부가 어떤 조건으로 캠프에 참가한 건지는 모른다. 그들 덕분에 열악한 캠프 생활이 지겹지 않았으니 브리가다 프로그램에 동그라미 다섯 개를 그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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