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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18) 의자에서 듣는 워낭소리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18) 의자에서 듣는 워낭소리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7.10.12 2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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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여기저길 기웃거릴 동안 누군가 물을 흩뿌린다. 고개 젖혀 위를 바라보니 아무도 없다. 구름 몰려드는 하늘을 본 뒤 우기 시작됐단 걸 깨닫는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 골목엔 떠돌이 개와 길고양이만 어슬렁거린다. 늘 열려있던 내국인 식당도 깜깜하다. 한산한 풍경을 채우려는지 허기지고 초라한 차림의 몇 사람이 등장한다. 그들 비닐봉지는 굴러다니는 재활용품 빨아들일 소품이다. 주름진 손이 휴지통 더듬으려 뻗지만 의자가 가로막는다. 비 소식 들은 가게 주인이 휴지통에다 그걸 기대놔서다. 가죽 재질의 의자쯤 비 맞혀도 된다 생각했겠지. 공장에서 만든 거라면 그처럼 홀대하진 않았을 텐데. 우리에겐 흔해 빠진 일회용품을 애지중지 하는 건 쿠바인들 오랜 습관이다. 빛바랜 요구르트 병이 주스 컵으로 변해 무한 반복해서 쓰인다. 손수 만든 건 지나치게 싼 반면 공산품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 쿠바다. 관광객들은 너무 싼 수공예품 가격에 당황해 애써 표정을 감춰도 그게 스물네 배 바가지 씌운 값이란 건 모른다. 쿠바 정부의 관광 수입 올릴 계략이 기념품에도 감춰져 있는데. 그런데도 토기나 장신구를 거저나 다름없이 샀다고 자랑할 게 뻔하다.   

골목 기웃거리다가 눈에 띈 비까번쩍한 가게. 진열장엔 시가며 럼주가 눈 시리게 빛을 튕겨내고 있다. 골목 풍경과 사뭇 달라 머뭇거리다가 커피 머신 친숙한 모양새를 본 뒤 성큼 발을 들여 짐짓 점잖은 척 바리스타에게 에스프레소를 주문한다. 곧이어 들려오는 몬스터 이빨 가는 소리에 발의 통증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유럽풍 바에 후줄근해진 엉덩이 간신히 걸치고 홀을 살펴본다. 홀 가운데를 떡 하니 차지한 흔들의자는 침대로 써도 넉넉할 정도다. 옅은 브라운색에 그려진 사차원 그림으로 봐서 꽤 값이 나갈 것 같다. 소재가 뭘까 궁금해서 막 집어 든 데미타세를 내려놓고 의자 가까이 다가간다. 이음매 없는 의자 소재에 두엄 냄새가 얼핏 스민 듯하다. 외갓집 고샅 들어설 때 코로 스몄던 게 기억 속에서 뛰쳐나온 걸까. 골목을 다 훑고 난 뒤부터 가죽의자만 보면 환청처럼 워낭소리가 들려온다. 비 맞고 있던 의자에서 들린 소 울음소리엔 눈물마저 배었을 것 같다. 중국서 수입했거나 비 맞고 선 소를 봤다면 그토록 함부로 대했을 리 없다.     

워낭소리 들릴 듯한 가죽의자. 화학물질 한방울 묻히지않은 가죽은 소가 제공한 둥글고 순한 감옥에 어울리는 소품이다.

공원이나 집 앞 가죽의자는 죄다 자연을 끌어다 만들었다. 거기엔 갈비뼈 앙상하게 드러낸 채 풀 뜯는 소의 숭고한 뜻이 감춰져 있다. 그 땜에 그들 염원이 갇혀 있는 *둥글고 순한 감옥이 연상된다. 순순히 죽음과 맞닥뜨리면서 인간 위해 껍질 바친 소. 그들을 받들어 불러주고 싶지만 적확한 단어 찾기가 쉽지 않다. 호칭 따윈 아랑곳 하지 않는 소들이 잡초 듬성듬성한 곳을 훑으며 입을 우물거리고 있다. 둥글고 순한 감옥을 지닌 짐승의 순수한 뜻을 새기려면 가죽에 별다른 처리를 하지 않아야 하는 모양이다. 화학 약품 바르지 않은 가죽의자에 앉으면 소 등에 탄 듯 편안하다. 귀퉁이를 손으로 툭 치면 순하디 순한 울음이며 워낭소리가 들릴 듯하다.  

들판을 다 지나치면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이 더러 보인다. 거긴 틀림없이 설탕 아니면 시가나 럼주 공장이다. 프레스며 압출 사출 공장이 거의 없다보니 대량 생산제품이 죄다 비싸고 가격도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공산품 귀한 곳에서 환경 호르몬 얘길 꺼내는 건 실례다. 흙이나 풀로 지은 집에선 화학물질 냄새조차 맡을 수 없다. 주부들은 청정 유기농 채마밭을 식탁으로 옮겨온다. 도시 농업 시스템이 길러낸 채소로 가족을 배불린 뒤면 곳곳에 널려있는 천연 재료로 생필품을 손수 만든다. 낡아서 버렸을 때 섭리에 따라 자연으로 쉬 돌아가도록 하는 선순환. 자연을 아끼는 마음을 일상에 버무려 인성마저 정청무구하게 변해가는 쿠바인들 몸속엔 정성분석을 거쳐도 해로운 성분 하나 드러나지 않을 것 같다. 바닷바람은 가죽 의자에 앉은 사람을 스치며 비단 풀어 놓은 듯 난분분 나부낀다. 둥글고 순한 감옥을 기꺼이 뛰쳐나와 지친 몸 떠받치길 주저하지 않는 소떼들 숭고한 뜻이 워낭소리 되어 오래도록 귓전에 잉잉거린다. <계속>

*김기택의 시 ‘소’ 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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