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청주 조엘 소아청소년과 원장

  언제부터일까, 우리는 약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어떤 때는 필요한 만큼보다 더 약에 의지하게 된다. 어떤 종류든 약은 우리 몸에 좋은 것, 건강을 유지하고 장수를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믿으며 살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지 않다면 약이 아닐 테니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약’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먹는 의약품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몸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약’이라고 할 만큼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쓰인다. 밥을 지을 때 잡곡을 섞어 맛을 낸 밥을 ‘약밥’으로 부르는가 하면, 어머니가 아픈 아기의 배를 쓰다듬어 주는 ‘약손’이 있다. 곤경에 처한 친구를 위로할 때도, 힘을 내, 훗날 ‘약’이 될 거야 라고 말 하듯이 우리 사회에서 ‘약’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쓰임과 효능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약에 대한 믿음이 깊어져 어떤 경우에는 약에 대한 과신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지나쳐서 약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진료실에서 환자와 상담을 하다보면, ‘좋은 약’을 처방해달라는 주문을 자주 받는다. ‘쎈 약’, ‘독한 약’을 달라는 특별한 부탁을 받기도 한다. 감기를 빨리 낫게 해달라며 항생제와 주사를 놔달라고 주문을 하는 일이 흔하다.

  어떤 의사도 좋은 약을 처방하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약에 대해 과장되고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좋은 약이란 고가의 약, 증상이 빨리 좋아지는 약이라 생각하고 복용약 보다는 주사약이 병을 더 잘 치료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약만 있으면 어떤 병도 나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렇다보니 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하려면 좋은 약을 먹어야 하고, 값이 비싼 약을 먹어야 하고, 좀 더 많은 약, 더 쎈 약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의 입장에서 좋은 약을 먹고 병이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조금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약을 먹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 문제라 할 수 있다. 물론 병에 따라서는 정확한 약물을 반드시 복용해야 하겠지만, 치료를 위해 모든 병에 약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필자가 의과대학 학생 시절, 의학을 공부하면서 놀라웠던 점은 우리 몸의 질병 중 많은 경우 특별한 치료약이 없다는 것이고, 하지만 많은 종류의 질병들이 약을 쓰지 않아도 자연히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질병이란 어떤 이유로 우리 몸의 균형을 잃게 되는 것인데, 우리의 신체는 항상성을 유지하고 불균형을 복원하는 자연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병이 낫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약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 무언가 몸에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고 믿는다. 건강 증진의 비결로서 특효를 지닌 물질이나 약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균형 있는 생활과 적절한 운동, 식사, 환경 등이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된다는 점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기본에 충실하기보다는 약의 도움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약물만능주의, 약을 권하는 사회 풍조가 이제는 우리의 건강에 해를 줄 수 있다.

 좋은 약과 처방은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이다. 오늘 몸살 기운이 있다면 먼저 약 상자를 뒤져볼 일이 아니라, 우선은 우리 몸을 믿어보시라.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던 격무를 잠시 손 놓고 쉬어보자, 평소보다 충분히 물을 마시고 적당한 휴식과 수면으로 우리 몸에 자생의 기회를 주도록 해보자.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