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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25) / 상처가 돋보이는 나라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25) / 상처가 돋보이는 나라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7.12.07 2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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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에게 보내진 체 게바라의 잘려진 손목을 들고 오열하는 여인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다. 쿠바 혁명 박물관 2층 올라가는 길에 걸려있다.

숱하게 돌아다니며 맞닥뜨린 낯섦, 그 중 쿠바가 돋보이는 건 역사가 낸 숱한 생채기를 딛고 우뚝 선 탓이다. 어둡고 낯설지만 활기 넘치는 골목을 더듬는 동안, 어릴 적 모습을 재현해 둔 느낌에 구슬과 딱지도 보일 것 같아 휘둘러본다. 그때 다이끼 갈라진 음성이 고막을 두드린다. ‘표정이 어린애 같아요.’ 타인의 시선에 그게 드러났다니 왠지 쑥스럽다. 일주일의 동행 이후 내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다이끼, 일본 청년에게 마음 여는 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입 꼬리 살짝 움직이는 게 전부여서 말을 아꼈더니 그가 다떼마에 가면 벗어던져 속내 드러내겠다는 제스처를 보인다. 캠프 생활 내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 본 다이끼가 혼네를 내보여도 되겠다고 판단한 계기는 캠프 청소며 농촌 체험을 하고난 뒤부터일 것 같다. 부실하게 식사한 뒤 연장조차 주어지지 않은 작업을 투덜거림 대신 노래로 마무리 짓는 걸 지켜봤을 테니까. 본격적으로 입을 연 건 혁명 전적지 가는 버스 옆자리에 앉았을 때다. ‘개인의 탤런트로 사람 됨됨이 분간하는 일본에서도 괜찮은 직장 얻긴 힘들어요.’ 식민지로 억눌렸던 쿠바라면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브리가다 캠프에 참가했다고 말한다. 일본인 다이끼 얘기에 터져 나오려는 말을 꾹 참는다. 스펙 쌓을 겸 사진 촬영을 배웠다는 그가 카메라를 꺼내 든다. 뷰 파인더를 열어 여러 가지 사진을 보여준다. 정성들여 찍은 거지만 보이지 않는 상처가 수두룩하다.

다이끼 얘길 들은 뒤 그들 장인 교육과 우리 기술 전수 방식을 되짚어 본다. 우리가 국가 차원에서 장인을 길러내기 시작한 건 고려시대다. 기술을 으뜸으로 쳐준 사회분위기 덕분에 세계 최초 금속활자가 태어났다. 장인들 피땀 어린 기름먹과 변질되지 않는 종이를 써서 한 땀 한 땀 제본한 직지심체요절, 피땀 어린 기술의 집약체는 직지의 어머니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 도서관 폐지 창고를 뒤지다가 찾아낸 거다. 프랑스 공사 꼴랭 드 쁠랑시가 헐값에 사서 가져간 걸 여태 돌려받지 못한 건 등짝의 낙인이나 마찬가지다. 검증을 거치진 않았지만 직지보다 138년 앞서 발간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주자본이 어느 절에 보관되어 있다. 복사본만 펼쳐 봐도 주물 재질 활자로 찍어낸 게 틀림없는데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발명자라고 떠드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서지학계와 골동품상 주장이 서로 엇갈린 탓에 세계 출판 역사를 새로 써야 할 국보급 유물이 빛을 보지 못하는 건 상처 난 데 소금을 뿌려대는 짓이다. 그에 견줄 만치 쿠바도 침략자 스페인 사람들에게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 스페인에서 가져온 사냥개로 달아나던 선주민 씨를 말리려 했던 얘기는 지울 수 없는 상흔이지 싶다. 쿠바에 혼종 문화, 아프로쿠반이 생겨난 게 우연이 아니다. 그 뒤 미국이 저질렀던 숱한 테러나 여태 무단 점령하고 있는 관타나모도 뇌리에서 지워질 리 없다. 그들이 틈만 나면 춤추고 노래하는 게 우리 지난날처럼 치이고 짓밟힌 아픔을 덮으려는 몸짓 아닐까.

가슴 먹먹한 광경을 본 건 혁명박물관 들렀을 때다. 2층 올라가는 길, 핏물 뚝뚝 떨어지는 팔 두 개를 받쳐 든 여자 그림이 가로막았다. 그녀 몸에도 진득한 핏물이 머리에서 가슴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순간, CIA 사주를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이 체 게바라 쏴 죽였다는 얘기가 기억났다. 그걸 주도한 CIA가 체 게바라 손목을 잘라 피델에게 보냈다고 인솔자가 설명한다. 그걸 보며 울컥한 게 나뿐이었을까. 외세로부터 나라 구하다 죽거나 부상당한 것보다 숭고한 일은 없다.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체 게바라는 그에 만족 못하고 라틴 아메리카 해방에 뛰어들다 총살당했다. 그의 뜨거운 열정을 본받으려는 건지 무더위 속 박물관 내부는 찜통 못지않다. 거길 빠져 나오며 까닭 모르게 속이 더부룩했다. 캠프에 돌아오는 동안 답답한 속을 씻어내라는 듯 스콜이 쏟아졌다.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을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잘린 팔목을 떠올리며 비 그친 들판을 카메라 울러 멘 다이끼와 걷는다. 피사체를 점찍은 그가 숨을 참고 셔터를 누른다. 나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던지 디테일에 신경 쓰라고 말한다. 뭐든 건성으로 보고 섣불리 판단하다 실패를 거듭했던 스스로를 타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럽다는 나태주의 ‘풀꽃’ 시를 읊어준다. 빗물에 씻긴 대나무나 야자수에 다가가 오래, 자세히 살피면 구름 걷힌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햇살이 상처에 따스하게 스며드는 게 보인다. 빛의 군무 따라 벌레 먹거나 상처 땜에 자양분 닿지 않은 부분에 시선을 옮겨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따스한 기운이 몸에 스며드는 듯하다. 천혜의 유기농 환경이어서 동화되는 시간도 짧다.

악몽 같은 상처를 드러낼 수 없어 속 끓이는 사람에게 강력 추천한다. 정전, 단수가 잦아 변기 물을 제때 못 내리고 고물차가 내뿜는 매연을 들이켜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해도 떳떳하게 생긴 상처라면 우러러보도록 가르치는 쿠바로 가라고. 숱하게 짓밟힌 걸 용서는 하되 잊진 않겠단 뜻으로 춤추며 노래하는 그들. 쿠바인이 만들어가는 디테일은 아픔으로 점철된 시선으로 들여다봐야 돋보인다. 침략자들 손에 죽어간 쿠바 선주민 추장 아뚜에이. 아팠던 지난날을 꿰매려고 그의 후예가 만들어가는 아르떼와 고려청자의 비색이 엇비슷하단 걸 일본 청년 다이끼는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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