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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27) / 아프리카 가나 룸메이트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27) / 아프리카 가나 룸메이트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7.12.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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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명 수용 가능한 컨벤션 센터에서도 아프리카인은 귀하다. 당시 함께했던 룸메이트와 그의 아내. 세네갈 전통 의상이 돋보인다.
김득진 작가

인종 차별에 반대하면서도 아프리카인을 보면 대략난감이다. 그들과 맞닥뜨리기만 해도 표정이 굳어지면서 몸이 움츠러든다. 내가 머무는 도미토리에도 그들을 섞어 둔 탓에 늘 조심스럽지만 긴장이 풀어져 탈날까봐 나름 배려한 거라 이해한다. 소수의 참가자가 섞이다보니 뜻하지 않게 그물에 걸려든 잡어 취급을 받는 느낌이다. 아프리카, 터키, 일본에다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인이 뒤섞인 버스에 오른다. 움직이는 인종 전시장은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 형제가 피땀 흘린 전적지며 혁명 현장을 옮겨 다닌다. 옆자리에 더러 앉는 흑인과 살이 닿기라도 할까봐 어깨를 움츠리지만 흔들림이 심해 자주 부딪친다. 하는 수없이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어디서 이들과 함께 생활해 볼 기회가 있겠느냐고. 자세히 봐서 예쁘지 않은 건 없다고 최면을 거는 동안 그들을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기고, 더러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 중 으뜸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책 읽는 광경이다. 새까만 손에 쥐어진 체 게바라 영문판 전기와 귀에 꽂힌 하얀 이어폰의 극명한 대비가 조화롭게 보이는 게 나만 느낀 감정일까. 자세히 보길 정말 잘했다며 맘속으로 탄성까지 지른다. 겨우 자기 최면에 빠져들었을 무렵 졸던 남아공 출신 대원의 코 후비는 광경을 목격한다. 새끼손가락으론 아무 것도 딸려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선지 아예 엄지손가락을 콧구멍에 쑤셔 넣는다. 자세히 보니 흑인 콧구멍 크기가 장난 아닌데, 코가 크면 코딱지 크다는 진리에 도달한 순간 퍼뜩 고개를 돌린다.
캠프 도미토리, 정원 여섯 중 아프리카인이 낄 확률은 높다. 그래서 인연 맺게 된 가나 출신 오뽀꾸, 피부색 검기로 따져 아프리카인 중 으뜸이다. 전체 인구의 99%가 흑인이니 그들 순혈주의를 짐작할 만한데, 침대가 나랑 대각선에 자리하고 있는 데도 의도하지 않게 눈이 자주 마주친다. 누운 채 독서를 하던 그는 책을 안대 삼아 잠을 청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인이 영어로 된 책만 읽는다는 사실이 묘하게 끌린다. 도미토리에 둘만 남겨졌을 때 그에게 슬쩍 말을 걸어본다. 책 읽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면서. 내 얘길 듣고 난 그가 빙그레 웃는다. 곧이어 악수를 나누고 이름을 물어 수첩에 옮겨 적는다. 외기 쉬워서 굳이 적을 필요조차 없는 오뽀꾸, 옷을 벗는다는 뜻으로 기억하면 되니 룸에 들어설 때마다 장난처럼 오뽀꾸! 라고 불러본다. 자세히 봐야 예쁜 것처럼 자주 부르다 보니 정이 들기 시작한다. 그런 뒤부터 버스에 오르면 자연스레 그의 옆자리에 앉게 되고 룸메이트 중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된다. 
브리가다 캠프 해단하는 날, 오뽀꾸가 처음 보는 원피스를 걸친다. 두꺼운 천에다 꼼꼼하게 수를 놓아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다. 미심쩍었던 나는 아랫단을 들쳐서 안을 세심하게 살핀다. 화려한 바깥과 달리 안쪽은 손으로 한 땀 한 땀 기운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홑겹이다.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공 들여 지은 옷을 입을 수 있는 신분이라면 어떤 계층일까. 궁금함을 참지 못해 옷의 이름이며 어떤 사람이 그걸 입을 수 있느냐고 질문을 퍼붓는다. 벌어진 윗니를 훤히 드러내며 ‘긴띠’ 라는 옷 이름만 얘기하고서 입을 닫는 오뽀꾸. 웃는 모습이 너무나 밝다. 옷을 지은 아내와 더불어 딸 얼굴도 떠올렸는지, 물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대답을 줄줄  풀어낸다. 큰 딸은 곧 로스쿨을 졸업하고 작은 딸은 의대 3학년이라고, 폰을 켜서 아내랑 딸 사진을 보여준다. 여남은 장을 넘기니 단란해 뵈는 가족사진에다 커다란 회전의자에 등을 기대고 찍은 것도 있다. 얼핏 본 그의 첫 인상으로는 농사꾼 이상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유엔본부에 가나대표로 참석해서 찍은 사진을 내보일 땐 벌어진 앞니에다 어금니까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어깨 으쓱하며 들려준 오뽀꾸 얘기에 속이 불편하다. 다른 건 부러울 게 없지만 딸 둘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다가가기 꺼려지던 그에게서 질투심이 생겨나다니.  캠프에서 또 한 명 천적을 만났다는 것 땜에 속이 부글거린다. 딸 낳으려면 반죽이 차지게 되어야 한다는 친구 얘기가 떠올라 심통이 도진다. 부부끼리 알콩달콩 지내는 것도 모자라 예쁜 딸까지 낳은 건 지나친 거 아니냐며 따지는 대신 곁눈질로 째려본다. 사진 여러 장을 보여주며 자신을 가나 은행 중역이라고 소개한 오뽀꾸. 쉰 살에 남다른 지위에 올랐으니 가져간 풍등에 자신 있게 가나 대통령 되는 게 꿈이라고 적었겠지. 찢어지진 않을까, 무사히 통관은 될까 조바심을 내며 가져간 풍등 덕분에 오뽀꾸 속마음을 들여다 본 건 속 쓰린 수확이다. 천적 명단에 새로 등재되긴 했지만 풍등에 적었던 그의 소망만은 꼭, 이뤄지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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