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광장에서 펼쳐진 세계노동절 퍼레이드. 체게바라 얼굴과 함께 펄럭이는 태극기가 돋보인다.

이름을 잘 까먹는단 말에 ‘후아 유?’ 라고 기억하라던 그녀. 먹는 거, 씻는 거, 잠자리까지 불편한 캠프에 딸과 함께 참가했다. 이스라엘과의 다툼을 이겨내려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팔레스타인 출신은 마흔 명 가량이었다. 브리가다 캠프, 연대의 힘을 빌리려는 그들은 하나같이 띠 모양 국기를 들고 같은 무늬 팔찌까지 찼다. 나라의 표상을 펼쳐 보이는 그들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데, 지지해 달라고 보는 사람마다 머릴 조아리는 모습에서 비장함이 드러나기도 했다.

허름한 차림으로 딸과 함께 자갈밭에 들어선 후아야는 영판 시골 아낙이었다. 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푸석거리는 흙을 헤집어 골라낸 돌을 트랙터 짐칸에 싣는 작업을 앞장서서 해냈다. 주운 돌을 트랙터에 하나하나 던져 올릴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뭘 잘못했나 싶어 돌아봤더니 이맛살 찌푸린 후아야가 손가락질을 곁들여 말했다. 작은 돌은 여자 몫으로 남겨두라고. 아차, 싶었던 나는 수줍은 미소를 건넨 뒤 큰 돌을 고르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옮기기 어려울 만큼 큰 바위는 죄다 땅 속에 묻혀 있었고, 맨손으로 그걸 캐내려니 막막했다. 그 순간 캠프장 원형 카페 입구에 떨어져 있던 못을 챙겨오지 못한 게 아쉬웠다. 못 하나만 있으면 맨손으로 땅 헤집어야 하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그걸 주워 주머니에 넣으려 할 때 지나치던 남자의 충고가 날아들었다. ‘그걸 가져가면 이 문을 잠글 수 없단 말이에요.’ 깜짝 놀란 나는 주머니에서 못을 꺼내 원형 테이블 위에 놓고 허겁지겁 도미토리로 돌아왔다. 못 하나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곳이어서 하찮은 그걸 잃어버린다면 문을 잠글 수 없다니. 대원들을 돌밭에 내몰고서도 연장 하나 쥐어주지 못하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곡괭이 없이 나뭇가지를 연장삼아 바위를 캐내면서 도구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우쳤다.

밭일에 매달렸을 무렵 후아야 이마에 맺힌 땀을 보았다. 설렁설렁해도 될 일이지만 온 몸을 던져 매달리는 모습에 어떤 결기마저 느껴졌다. 그녀뿐만 아니라 딸이며 팔레스타인 사람들 모두 일개미 같았다. 그들 모습에서 핍박받는 팔레스타인 민족이 언젠가는 이스라엘을 이겨내고 말 거란 믿음이 생겼다. 작고 하찮은 노동에서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될 큰일에 어떻게 대처할 거란 미래 모습이 점쳐졌고, 그녀를 팔레스타인 여전사라 부르길 망설이지 않았다. 저녁 무렵, 브리가다 캠프에 참가한 대원들 친목을 다질 시간이 주어졌다. 떨판 찢어진 스피커 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나갔더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시에스타 의자를 죄다 차지하고 있었다. 앉은 사람들 중 잘 생긴 곱슬머리 청년이 나무 상자를 열어 시가 한 개를 내밀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건넨 데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 받을 수 없다고 했지만 호의는 끈질겼다. 하는 수없이 시가 한 개를 받아 손가락에 끼웠다. 불을 붙여줘야 임무가 끝난다는 듯 그가 라이터를 켰지만 손을 내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술자리에 끼어 에스프레소 잔에다 럼주를 섞어 마시는 동안 행사장이 웅성거렸고, 띠 모양 국기를 높이 펼쳐든 그들이 구호를 외치면서 세미나실로 몰려갔다. 멀뚱히 서서 그걸 지켜보던 내게 후아야가 다가와 팔짱을 꼈다. 세미나실 쪽으로 날 잡아끌었던 건 자기네 이슈를 지지해 달란 뜻이다. 할 수없이 끌려가긴 했지만 구호를 외치라든지 사인해 달라고 부탁하면 어쩌나 고민스러웠다. 몇 차례 팔을 치켜 올려 그들을 지지하는 척 한 뒤 세미나실을 살짝 빠져나왔다.

다음 날 후아야와 함께 메이데이 퍼레이드 관람을 위해 혁명 광장에 갔다. 관중 앞 의자에 올라선 그녀가 손을 치켜들고 세미나실에서와 같이 구호를 외쳤다. 그걸 신호로 자리에 앉았던 일행들이 죄다 일어섰다. 그들 모두 띠로 된 국기를 펼쳐 우렁찬 목소리를 혁명 광장에 퍼뜨렸다. 나도 질세라 태극기를 흔들긴 했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갇힌 예루살렘 꼴이 되고 말았다.

멀뚱하게 선 내 모습을 본 후아야가 주먹을 높이 쳐들며 웃어보였다. 그게 내가 해 준 지지에 대한 품앗이란 걸 안 뒤 힘을 냈고, 그녀가 잠시 숨 돌리는 걸 틈 타 태극기를 쥐어줬다. 내가 팔레스타인을 맘속으로나마 응원한다는 걸 캠프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확인했을 테니 거절 못할 거라 싶어서다. 그녀는 허리며 팔목에 그들 국기를 감고서 태극기를 팔레스타인 국기인 듯 활짝 펴 들고 환한 미소를 건넸다. 태극기 배경으로 인증샷 찍는 후아야가 얼마나 예뻐 보였는지 모른다. 그녀 제스처에 힘입어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서 이제껏 한 번도 휘날려 본 적 없을 태극기를 체 게바라며 피델 카스트로를 연호하는 군중을 향해 힘차게 흔들었다. 나라의 표상인 태극기며 팔레스타인 국기가 호세 마르티 동상을 배경으로 휘날리는 건 나만의 가슴 버거운 감동이 아닐 것 같았다.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라고 선언하고 미국대사관을 거기로 옮길 거라는 얘기가 나도는 때, 팔레스타인 국기를 바라보는 여전사의 눈에서 서치라이트 불빛이 튀어나오진 않았을지. 그들 편에 유엔이 서 있다는 게 다행이지만 거대 패권 세력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어서 강소국 이스라엘과 감정 대립을 피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알게 되었다. 후아야가 나를 세미나실로 이끌었을 때 그들처럼 목청을 드높이지 않았던 일이 새삼 후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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