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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30) / 더치페이 달인 야마나카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30) / 더치페이 달인 야마나카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8.01.1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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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야마나카 부인 도모짱. 나라별 장기자랑 끝난 저녁,기모노 차림으로 식당에 앉았다.

메이데이 퍼레이드는 브리가다 캠프의 가장 큰 이벤트다. 권력이 되었던 피델 카스트로며 신화로 남은 체 게바라를 지지하는 군중들 열기는 뜨거웠다. 정오의 햇살마저 백오십 만 명이 거쳐 간 혁명 광장 데우는 노동에 뛰어들었다.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일본인들과 후끈한 공간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왕복 10차선 도로에는 쓰레기라곤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간 자리가 맞나 싶다. 모르긴 해도 호세 마르티 근엄한 동상 덕분 아닐까 생각할 때, 저만치서 트럭 몇 대가 작업복 입은 남자들을 싣고 달려왔다. 빗자루를 들고 설치던 그들은 군중이 남긴 혁명 정신과 흩어진 메아리를 소중하게 쓸어 모았다. 경찰과 군인들은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면서도 본분을 잃지 않겠다는 듯 CCTV처럼 시선을 움직였다. 광장 근처에 대원들을 내려놓은 버스는 오후 다섯 시에 브리가다 캠프 본부로 모이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인파로 들끓는 광장 가까이서 차를 탄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노동절 연휴여서 음식점이 죄다 문 닫힌 거나, 식사 할 곳은 호텔뿐이었던 걸 빤히 알고 있는 호객꾼들 돈벌이하라고 빌미를 준 것 같았다. 무리 지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젊은이 몇 명이 택시 타라며 귓속말을 하고 다녔다. 가깝다는 나시오날 호텔에 가려고 물어보니 요금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더치페이 달인 야마나카가 택시 말고 자전거를 타자고 꼬드겼다. 자전거에 안장 두 개 얹은 비씨 택시는 그나마 요금이 쌌다. 5쿡 달란 말에 성큼 내 옆자리에 앉는 도모짱, 남편 야마나카를 두고 나랑 붙어 앉는 모습은 뜬금없다.

완만한 아스팔트길을 오르는 자전거 택시는 페달이 기사의 지친 발을 돌리는지 느려 터졌다. 그런데도 남자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는 게 어이없었다. 그깟 일쯤 상관할 바 아니라는 듯 도모짱이 저만치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거기엔 나시오날 호텔이라고 큼지막이 적혀 있어 탁 트인 카리브해 경치는 덤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리막길 속도를 감당 못한 자전거 택시가 도모짱이 가리킨 곳 한참 못 미처 섰다. 그녀는 왜 호텔까지 못 가느냐고 따졌다.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린 그가 무작정 내리라고 명령했고, 도모짱이 지갑을 열어 돈을 꺼냈다. 5쿡을 그에게 내민 순간 10쿡을 내라고 눈 부라리는 걸로 봐서 페달 밟는 것보다 요금 바가지 씌우는 걸 본분으로 삼는 듯했다. 한 대당 5쿡이라고 한 걸 나도 들었는데, 따지기 싫었던지 절약이 몸에 밴 도모짱이 10쿡을 그에게 선뜻 쥐어줬다. 뒤에서 쳐다보고 있으려니 속에서 잉걸불이 솟구쳤지만 돈을 내지도 않은 주제에 따질 처지 아니어서 입을 꾹 닫았다. 신세진 걸 꼭 갚을 거라 생각하며 그녀를 뒤따랐다.

식사 시간이 지난 레스토랑에 들어선 일행이 아무렇게나 놓인 의자에 앉는 동안 원탁이 다가와 대열을 맞춰줬다. 일행은 각자 먹고 싶은 요리를 골랐다. 햄버거를 주문하는 학생들과 달리 어른들은 죄다 파스타가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 중 값싸서 고른 고르곤졸라 파스타를 기다리는 동안 실내를 찬찬히 둘러봤다. 백 년 동안 섰던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웨이터가 입은 유니폼에는 세월의 더께가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요리를 실은 수레는 한참 만에 덜컹거리며 원탁에 다다랐다. 파스타랑 가격이 비슷한 햄버거가 훨씬 크고 맛있어 보인 건 배가 고프단 증거다. 웨이터가 내려놓은 고르곤졸라 파스타를 포크로 건져 올렸더니 가슴 높이까지 따라오다가 접시에 도로 떨어졌다. 이리저리 튄 수프를 냅킨으로 급히 닦고서 다른 사람에겐 피해가 없는지 살폈다. 괜찮다면서, 어서 식사하라는 그들 제스처가 진심이길 빌었다. 고르곤졸라 파스타는 언젠가 먹어본 것과 달리 죽이나 다름없었다. 테이블 매너에 어긋나지만 접시를 기울여 면을 입으로 빨아들였다. 느끼한 음식이 간도 맞질 않아서 몇 모금 들이켜지 않아 위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몸에 좋은 유기농 요리는 맛을 내세우기엔 역부족이란 게 증명된 순간이다. 콜라를 함께 주문하지 않았더라면 아까운 요리를 절반 넘게 남길 뻔했다.

먹은 것 같지 않은 식비와 택시비를 보태 10쿡을 도모짱 앞 테이블에 얹었다. 영수증이 필요했던 그들은 웨이터를 불러 한 명씩 따로 계산해 달라고 얘기했다. 후줄근한 유니폼을 입어 생김새조차 백 년 전 사람 같았던 그는 한 사람씩 돈을 받고 프런트로 가서 영수증을 끊은 뒤 테이블로 돌아왔다. 계산을 제각각 한 바람에 웨이터는 프런트와 테이블을 여덟 번 오가느라 이마에 땀이 맺혔지만 귀찮은 기색이라곤 없었다. 나는 야마나카 부부가 식대 계산을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지켜봤다. 따로 주머니를 열어 돈 꺼내는 그들 행동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부부라더니 식대마저 각자 계산하는 모습은 어이없다. 캠프에서 함께 지내며 늘 따라 다녔지만 그들 더치페이 습관은 고질병에 가깝다. 야마나카가 맥주를 한 번 사면 그 다음엔 도모짱이 사는 게 철칙이다. 어떤 일에도 얼굴 붉히는 법이 없어 스펀지라 이름 지었던 야마나카, 살아가면서 부부 생활에 드는 돈은 어떤 방식으로 나누는지 궁금하다. 이불 속에서 아내인 도모짱과 어떻게 화대를 계산하는지 그들 덧셈과 뺄셈을 지레짐작해 보면서 실실 웃음을 흘린다. 매사에 스펀지 같으면서도 드는 돈은 따로 계산하는 야마나카를 지켜보면서 일본인의 또 다른 면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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