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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31) 청동갑옷 주인, 피델 카스트로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31) 청동갑옷 주인, 피델 카스트로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8.01.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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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걸작 레미제라블을 즐겨 읽었다는 피델 카스트로. 그는 죽어서도 성 프라시스코 대 성당 속이 빈 동판 조형물에 숨어 혁명 완성을 지켜볼 것 같다.

후줄근한 쿠바노 둘과 빨간 원피스 차림 쿠바나가 얘길 나누고 있다. 얼굴색 다르지만 구김살 없는 건 같다. 고개 돌려 바라본 성당 정문, 갑옷 차림 남자가 고개 숙인 채 한쪽 구석에서 있다. 누굴까 싶어 조심스레 다가가 살펴본다. 손은 보이지 않고 음각 글씨 새긴 책 한 권만 허공에 붕 떠 있다. 표정 읽으려고 음영 속을 더듬는 순간, 얼굴 대신 검은 공간이 시선을 훅 빨아들인다. 블랙홀 무섭다는 걸 알고 몸을 뻗대며 주춤 뒤로 물러선다. 거기엔 사람 빠져 나간 청동 갑옷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스테디셀러인 레 미제라블 글씨만 클로즈 업 된다. ‘아하, 빅톨 위고가 여길 다녀가며 흔적을 남겼구나.’ 빵이 넘쳐나서 그림자마저 배불러 춤추며 노래할 때, 몸피 불린 불쌍한 사람이 우화한 건지 한 겹 갑옷 속 기의(記意)만 오랜 풍경처럼 일렁이고 있다. 검은 공간 속 암순응을 거치면 장발장 걸었던 길이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숨 깊이 들이마신 뒤 레 미제라블 서사 속으로 빨려든다. 빛바랜 파리 시가지 뒷골목, 인품 빼어난 디뉴 교구장 미리엘 주교 빼닮은 장발장의 휴머니티와 만나고, 소설가 영혼을 껴입은 그가 칙칙한 도시에 밝힌 촛불은 밝기보다 따뜻해서 돋보인다. 집 떠난 매미를 허물 속에 도로 넣는 건 어렵지만 아직도 어딘가 서성거릴 레 미제라블을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켠다. 안타까운 시선에 화답하듯 흑백 영화 화면이 흘러간다. 얽힌 실타래 쥔 듯 막막할 무렵 오랜 왕정으로 억눌린 파리를 뒤집을 피비린내가 코로 스며든다. 혼란 속에서도 허기나마 때우려고 사창가에 뛰어드는 빵띠느, 온갖 사람 멸시를 받아가며 어둑한 뒷골목을 끝없이 헤맨다. 환등기로 비춘 그림 해독하려고 미간 좁히는 동안 빵띠느가 죽어가고, 그녀를 돌보기 위해 다가온 장발장에게 어린 딸 꼬제뜨 맡아 달란 유언 남긴 뒤 눈 감는다. 혁명은 각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마인드 컨트롤 하지만 무대 위 군중들 삶은 고개 돌려야 할 만큼 처참하다.

뒤이어 군중이 일으킨 불길이 파리 시내를 뒤덮는다. 전쟁에 버금가는 혼란 속에서 자라난 꼬제뜨는 부르주아 집안 출신 마리우스와 사랑에 눈 뜨고, 계층의 벽 허문 두 사람은 그들만의 울타리를 쌓는다. 거리가 불길에 휩싸여도 둘이 쌓은 난공불락의 성 안으로는 불길이 스며들지 못한다. 그들 사랑 꾸리는 일에는 장발장 힘이 컸다. 미리엘 주교로부터 배운 자비를 빵띠느와 꼬제뜨에게 아낌없이 전한 덕분이다. 시장이 되어 시민의 손과 발 노릇을 다했지만 자베르는 장발장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 꼬제뜨 위한답시고 혁명 대열에 섰던 마리우스를 구출하는 동안 그가 체포된다. 증기선 노 저을 사람이 필요하단 어이없는 구실 때문에 무고한 죄인을 만들어 내던 때, 시민들 배고픔 하나 해결하지 못한 권력이 불쌍한 사람에게 누명까지 씌워 감옥으로 끌고 간 내용이다.

레 미제라블을 즐겨 읽었다는 피델 카스트로. 가진 자들이 가난한 사람 주머니 노리는 게 부당하다 외친 빅톨 위고가 그의 혁명 정신에 불을 지핀 걸까. 돈 걱정 없이 교육받은 아이들이 쌓은 지혜를 씩씩함의 바탕이 되도록 하란 얘기도 흘려들었을 리 없다. 진실을 품은 분노만큼 위대한 웅변은 없다는 걸 알고 평생 군복차림으로 혁명 대열에 앞장 선 피델 카스트로. 혁명은 모든 걸 끌어안는 이해심이 앞서야 하고, 때론 지은 죄를 용서할 줄 알며, 훌륭한 목수가 되어 마음의 집을 지을 줄 알아야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그, 쥐었던 권력을 주저 없이 내려놓고 세상을 떠났으니 쿠바의 전설이 된 체 게바라 못지않게 국민들 가슴에 잊히지 않는 또 하나 신화가 될 거라 믿는다.

프랑스와 쿠바 혁명 현장, 왼쪽 오른쪽으로 나뉜 상상 속 무대 두 칸을 꾸린다. 빼어난 인물들이 죄 없이 죽어간 왼쪽과 달리 오른쪽에선 피해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혁명 초기 그란마호를 타고 상륙하면서 총 맞아 죽은 건 내전이랄 수 있지만 패권 쥔 미국이 정부군을 쥐락펴락 했으니 프랑스 혁명과 양태가 달랐다. 아르헨티나 태생 체 게바라가 혁명에 뛰어든 걸로 봐선 라틴 아메리카 연합군이 맞는다. 조국과 의사, 두 가지 뚜렷한 상징마저 내던진 체 게바라는 피델의 불타는 사명감에 끌려 총을 잡았다. 체는 산악지역에 설치한 방송국 라디오 레벨데로 정부에 휘둘리는 주민들을 세뇌시켰고, 청취자 힘을 모아 혁명에 필요한 인력, 물자를 지원받았다. 심리전에 밀린 정부군은 점차 힘을 잃었고, 산타 클라라를 지나는 정부군 무장열차 빼앗은 일로 마침표를 찍었다. 하나로 뭉쳐 썩어가던 허수아비 정권을 몰아냈으니 그들을 불쌍하다거나 비참하다 말하는 건 지나치다. 성 프란시스코 대성당 입구 레 미제라블 곁에 선 쿠바인들 환한 웃음이 그걸 증명해 보인다. 레 미제라블 조형물 만든 피델은 자신의 흔적을 어디에도 남기지 말라 유언했고, 그의 뜻대로 화장해서 유골함 하나만 남겼으니 혁명 완성을 지켜보고 말겠다고 동판 조형물에 숨어든 건 아닐까. 동생 라울과 시선을 돌리려는 짬짜미가 있었던지 산타클라라 체 게바라 동상 앞에 군복 입은 피델 입간판이 섰다. 거기엔 HASTA LA VICTORIA SIEMPRE, FIDEL! 이란 구호를 자기최면처럼 적어 놓았다.

‘승리의 그날까지, 피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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