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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61) /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조선사상전사’ 등 서평 (2)
동양포럼(61) /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조선사상전사’ 등 서평 (2)
  • 동양일보
  • 승인 2018.01.2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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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의 새로운 지평 연 오구라 교수의 철학서
조성환 원불교사상 책임연구원

내가 생각하기에 이 땅에서의 ‘한국학’ 연구는 대략 1940년생 세대로 끝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김형효나 김경재 세대). 그 이후의 세대들은 이른바 ‘전문화’의 길로 들어서거나 ‘근대화’의 세례를 받아서 ‘한국’ 전체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전통은 사라지고 말았다. 설령 있다고 해도 ‘중국’이나 ‘서양’의 시각에서 한국을 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사라진 이 전통이 일본 땅에서 일본학자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것도 단순히 이어지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한국학의 지평을 열고 있다면 더더욱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 단절된 한국학의 계보를 잇다

1998년에 초판이 나온 오구라 기조 교수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조성환 역, 모시는사람들, 2017)는 ‘한국’ 전체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세대의 한국학 연구의 계보를 잇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전통(조선)과 현대(한국)를 별개로 연구해 왔던 종래의 방식을 뒤집고, 현대 한국 안에 작동하고 있는 유교적 사유방식의 흔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한국학의 지평을 열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한국을 타자화 할 수 있는 ‘경계’에 서 있는 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한국은 ‘경계’나 ‘사이’에서 조망되기보다는 ‘외부’나 ‘내부’의 시선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중국철학이나 서양철학을 기준으로 한국철학이 서술되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한국철학 안에서만 이해되어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낯선 부분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평소에 늘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지적을 받아야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는, 그런 ‘무의식의 한국’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영역이 바로 유학이다. 종래의 한국유학 연구는 ‘조선’이라는 공간과 ‘학파’라는 영역에 제한되거나, ‘철학’이라는 분야와 ‘근대’라는 시간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주리(主理)나 주기(主氣) 또는 퇴계학이나 율곡학과 같은 학파를 중심으로 연구되거나, 사단칠정논쟁의 철학적 함축이나 서구적 근대의 맹아를 찾는 연구(‘실학’)가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그 유학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없었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동양포럼’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과 만난 오구라 교수가 최근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와 ‘조선사상전사’ 두 권의 책을 발간했다.

● 유학에 대한 통념을 뒤집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학은 전근대적인 것”이고 “한국은 근대화된 국가”라는 등식이 암암리에 깔려 있어서, 이미 근대화된 한국에서 조선시대 유학이 작동되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는 암묵적인 전제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유학의 역할”에 주목하지 못하게 만든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철학의 대상을 철학자의 텍스트로 한정시키고 있는 한국학계의 학풍도 한몫했을 것이다.

철학이란 항상 철학사에 나와 있는 철학자들의 개념이나 체계를 이해하는 작업으로 여겨져 왔지, 그것을 가지고 현실을, 그것도 ‘한국’이라는 사회 전체를 분석하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철학과 정치와 사회가 일체화된 사회였다. 지금처럼 철학연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정치가나 행정가 또는 법률가나 과학자 할 것 없이 사회지도층이나 지식인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철학(주자학)에 대한 기본 소양을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였다.

그런 조선에서 한국으로 전환된 지는 아직 10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주자학이 해체되어 버린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새로운 방법론의 도입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이러한 허점을 찌르고 있다. 한국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무시되고 잊혀져왔던 ‘주자학’의 영향력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종래의 분석방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종래에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방법론은 거의 대부분 서양의 학문이론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학, 사회학, 여성학, 문학이론 등이다. 이것을 저자는 “외과수술적인 언설”(252쪽)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 저자는 조선왕조가 실제로 채택한 통치이념인 리기론으로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즉 ‘내재적 방법론’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이 책이 종래의 주자학 연구서나 한국사회 연구서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이와 같은 ‘내재적 방법론’과 더불어 이 책이 사용하고 있는 또 하나의 독특한 방법론은 ‘한일비교사상’이다.

이 책은 일본사상의 눈으로 본 한국사상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이 작업은 최근에 나온 ‘조선사상전사’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종래에 비교철학이라고 하면 주로 중국과 서양의 비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간혹 가다 동아시아 삼국의 유학 등을 비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비교의 대상이 대부분 철학자들의 언설에 나타난 사상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지, 그것으로 한중일의 사회까지 비교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에 반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한일 두 나라에서 중국의 주자학이 수용되고 토착화되는 양상의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한일 양국의 사회적 모습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 두 나라의 비교가 효과적인 것은 한일 양국이 “비슷하면서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나라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와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기에, 거기에 자신을 투영시킴으로써 감추어진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사상으로서의 한국 연구

한편 최근에 나온 ‘조선사상전사’는 다루는 시간적 범위나 학문적 영역에 있어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다(여기에서 ‘조선’은 남북한을 아우른 ‘한국’을 가리킨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을 모두 대상으로 삼고 있고,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나 도교 등도 다루고 있으며, 학문 분야에 있어서도 철학을 넘어서 신화, 역사, 종교, 정치까지 포괄하고 있는, 말 그대로 “(문고판) 한국학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현대 북한의 사상과 인물도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이 책의 제목이 ‘조선’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나온 두 작품은 저자의 한국학 연구의 발전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가 ‘리’ 중심의, 그런 의미에서 ‘이성’ 중심의 한국론이었다고 한다면, ‘조선사상전사’는 거기에 ‘영성’의 요소까지 가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원효의 불교와 신라의 화랑과 퇴계의 유학과 수운의 동학을 ‘신라적 영성’으로 묶어내고 있는 관점이다.

이러한 시각은 종래의 한국철학사나 한국종교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종래의 철학사는 철저하게 ‘이성’ 중심의 서양철학사를 기준으로 하거나, ‘학파’ 중심의 중국철학사를 모델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랑의 풍류나 수운의 동학은 철학사에서 배제되기 마련이고, 설령 한국종교사에서 다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퇴계의 유학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철학과 종교라는 서구적 학문 분류를 넘어선 ‘사상’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틀을 적용하여, 일견 무관하게 보이는 사상가들을 연속선상에서 파악하고 있다.

 

● 서구중심적 사관에 대한 경계

또한 저자는 방법론상에 있어서도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사용한 내재적인 방법론과 한일비교사적인 관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외연을 확장시키고 있다.

먼저 한국사상의 일반적인 특징을 “사상의 순수성 확보”(제1장 ‘조선사상사총론’)에서 찾고 있는 점은, 저자 나름대로 한국사상사 전체를 조망한 결과 내려진 내재적 방법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결론이 일본사상사의 전반적인 특징과의 비교를 통해서 서술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교사상사적 방법론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근대사상사’에 대한 평가를 신중히 하고 있는 점 역시 서구 중심적 사관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한국사상사 자체의 맥락에서 한국사상을 조망하고자 하는 저자의 신중한 사상사 서술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각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부분은 동학에 대한 서술이다. 흔히 한국근대사상사를 논할 때에는 ‘개화’ 부분이 압도적인 양을 차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반대로 동학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데(개화와 척사를 합친 분량보다 더 많다), 이 점은 저자의 사상사 서술 관점이 한국사상의 독창성에 기준을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저자는 “19세기는 ‘암흑시대’라는 인식은 오류일 수도 있다,” “이 시기는 극히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철학자나 문학자가 배출되고 있다”(240쪽)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사용되었던 한일비교사의 영역도 한일비교사상사에서 한일비교문화사 내지는 한일문화교류사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고사기’나 ‘일본서기’, 또는 일본학계의 연구 성과들을 활용하여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일교류사에 관한 숨은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가령 백제와 일본의 왕실 간의 인적 교류사나 한일 양국가의 불교교류사 등).

이 외로도 원효를 장자나 도겐(道元) 등과 같은 ‘메타 메타피지스트’(메타 형이상학자)로 위치지우는 독특한 해석이나, 조선과 일본을 왕조교체와 계급교체로 보는 문일평의 조선론이나 만해 한용운의 진보주의적 세계관 소개, 일본의 양명학과는 달리 한국의 양명학은 분석적이라는 비교 등등은, 한국인들이 평소에 접하지 못하는 발상이나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 다음 세대를 위한 한국학 지침서

이상의 여러 가지 점에서 나는 이 두 권의 책이야말로 장차 한국학을 하려는 소장학자들에게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한국을 ‘철학적으로’ 또는 ‘사상적으로’ 알고자 하는 초심자들에게 이 두 권은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철학적 사유와 비교사적 시각은 물론이고, ‘한국’이라는 연구대상에 접근하는 진지한 태도와 깊은 애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오늘날 한국학계에서 이러한 식견과 열정을 가진 한국학자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 두 권의 책은 앞 세대의 한국학의 정취와 한계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그래서 미래의 한국학을 열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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