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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32) 풍등에 밝힌 브리가다 캠프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32) 풍등에 밝힌 브리가다 캠프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8.02.01 20: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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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미토 지방, 브리가다 캠프 높이 날아올라 쿠바 하늘에 박힌 또 하나 별. 대원들 소망 빼곡히 적은 풍등 날리기는 환송행사 피날레 장식에 걸맞은 특별 이벤트가 됐다.

지난해 다녀왔던 캠프, 장기 자랑 시간에 그들 춤과 노래를 멀뚱히 지켜봐야 하는 건 민망스런 일이었다. 어둑한 분위기가 늘 마음에 걸려 분위기 밝게 할 이벤트를 찾아내야겠단 생각에 이르렀고, 풍등을 가져가기로 맘먹으니 가뿐해졌다. 인터넷을 뒤졌더니 그건 점화장치가 달려 폭발물에 가까웠다. 별 탈 없이 검색대 통과할 수 있을까, 사회주의 국가에서 점화 장치 달린 걸 통과시켜 줄까,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모험할 수밖에 없다며 여덟 개를 주문했고, 배달의 겨레답게 이틀 만에 택배로 왔다. 네 개를 골라 넣었지만 철사 뼈대에다 습자지 붙인 풍등은 자칫하면 찢어질 것 같아 맞닿는 부분마다 옷가지며 휴지로 보호막을 쳤다. 캐리어를 수없이 열고 닫는 동안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캠프 도착할 때까지 백 번 넘게 확인했지 싶다.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열어 풍등부터 살폈고, 염려와 달리 멀쩡했다. 그 중 한 개를 꺼내 일본팀 리더 테루요에게 건넸다. 작년에 보살펴 준 데 대한 보답이었다. 캠프 생활에 서툰 나에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곤 했으니까.

풍등은 캠프 폐막식 때 날리면 좋겠는데, 좁은 도미토리에 보름 동안 보관하려니 꽤나 신경 쓰였다. 숙소를 옮기지 않는다면 다행이겠는데, 메이데이 연휴엔 중부 지방 호텔로 가서 사흘 머물 거라는 소식이 들렸다. 이리저리 옮긴 캐리어 땜에 온 신경이 풍등에 몰려 있었는데, 캠프로 되돌아와 끌러보니 멀쩡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브리가다 캠프 폐막식만 남겨 놓고 있을 때, 눈인사 건네곤 하던 사람들을 도미토리로 불러 풍등을 보여줬다. 라틴 아메리카에선 흔치 않은 이벤트 소품이어선지 다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찢었다. 어둔한 스페인어로 풍등을 펴서 날리는 요령을 가르쳤고, 매직을 쥐어주며 각자 소원을 적으라고 눈짓했다.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르는 그들은 나더러 먼저 써 보라고 했다. ‘마이 호프’로 시작하는 내 소망은 크지 않았지만 뒤이어 써 나가는 글귀는 대망으로 부풀려지고 있었다. 세계 평화며 자기 나라 대통령이 되게 해 달라는 것에서부터, 핵 없는 세상이라든지 병이나 전쟁 땜에 죽는 일이 없게 해 달라는 가슴 뭉클한 내용이다.

폐막식 끝날 시간에 맞춰 잔다르크처럼 풍등을 높이 쳐들었다. 노란 바탕에 글씨 썼던 대원들이 손뼉 치며 고함을 질렀다. 아홉 시, 글씨 빼곡하게 적힌 풍등을 들고 광장으로 향했고 스무 명 대원이 뒤를 따랐다. 가까이 다가간 무대, 점화 장치에 불붙일 잠비아 청년과 허공에 떠오를 때까지 풍등을 잡아줄 그리스 여자와 콜롬비아 청년이 자릴 잡았다. 쿵쾅거리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광장엔 각 나라의 술이며 올리브 절임과 초콜릿을 앞에 놓고 파티가 한창이었다. 무대 끝에서 벌이는 우리 이벤트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연습했던 것처럼 무대 위에 선 두 사람이 풍등을 맞잡고 잠비아 대원이 불을 붙였다. 성냥불 갖다 대기 바쁘게 파라핀에선 불길이 번졌고, 어둡던 무대가 서서히 밝아졌다. 웃고 떠들던 사람들 시선이 무대 쪽으로 옮겨왔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풍등 맞잡은 두 사람에게 다시 주의를 줬다. 각도가 약간만 틀어져도 습자지에 불이 옮겨 붙는 걸 더러 봤던 탓이다. 파라핀 열기가 습자지를 부풀렸고, 풍등을 더 커 보이게 했다. 제각각 쓴 글귀가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계 평화에서부터 개인의 소망까지 적힌 글씨를 보고 가슴 뭉클했던 게 나뿐이었을까.

브리가다 캠프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춤추거나 의자에 앉았던 사람들이 죄다 풍등을 바라봤다. 그 무렵 부력이 생긴 풍등이 움찔거렸고, 양쪽 귀를 잡았던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여 놔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아래로 약간 처지던 풍등이 캠프 상공으로 서서히 떠올랐다. 멀리서도 잘 보였던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 여럿 중에서 그걸 고른 게 다행이다. 쿠바 하늘 속으로 날아오르던 풍등이 대왕야자나무 가지를 살짝 스쳤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혹시라도 나뭇가지에 걸릴까봐 조마조마한 지 박수와 함성을 내질렀다. 대원들 입김 덕분인지 풍등은 카리브 해 높은 곳에 떠서 또 하나 별이 되었다.

하늘에 박힌 수많은 별을 올려다볼 때, 풍등 한 귀퉁이를 잡았던 그리스 여자가 물었다. 노란 색깔에 무슨 뜻이 담긴 거냐고. 별빛 유난스레 총총한 하늘에서 눈을 천천히 거두고 그녀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봤다. 거기 적힌 메시지만큼 중요한 게 어딨느냐며 눈을 찡긋했다. 명도 가장 높은 색깔이 노랑 아니냐는 말은 꿀꺽 삼킨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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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철 2018-02-16 07:28:12
설날 첫 아침!
작가님 쿠바 가고 안계시니,
그 빈자리 큽니다.
먼 나라 생소한 국가 가까이 느끼게
해 주시는 정성.성의 연재때마다 띄우신 풍등만큼 뭉클하게 하시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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