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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62) / 동양포럼 ‘한·중·일 회의’ 참가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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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일보
  • 승인 2018.02.1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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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포럼 필진의 무술년 새해인사(2) / 김용환 충북대 교수

새해에, 공공지평의 개신을 생각한다

 

김용환 충북대 교수

● 물질문명 발달할수록 ‘독점현상’ 수반

오늘날에는 사람의 계산능력이 전자계산기보다 떨어지고, 컴퓨터보다 그 추리능력에서 밀리는 추세다. 이제는 통역을 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으로 소통이 가능하고, 주식거래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프로그램이 다각도로 활용되고 있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독점현상이 수반되기에 과연 공공행복에 이를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든다. 해법은 물질문명과 함께 영성문화 수준을 높이는 길이다. 실제로 한 사람이 사회 네트워크로 인류와 벗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문턱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렇게 획기적인 주변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인공지능을 싫어한다면, 바둑을 둘 때 알파고의 승리자체를 외면할 것이며, 앞으로는 바둑을 두기조차 꺼려할 것이다. 이제는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의 공공지평을 생각을 때가 도래하였다. 우리는 동양정신 문화에서 그 해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유불선이 함께 녹아 있는 동양정신 문화에는 양심기제(良心機制)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서교정신까지 포함시켜 유불선서(儒佛仙西) 사방위 회통방안의 마련이 21세기 영성인문학이 요구하는 공공지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해법은 영성전망을 밝게 바라보며 인문학 축적으로 다져온 지혜를 공공지평으로 함께 살려서 새 밝힘을 지속함에 있다.

 

● 사회 전반에 ‘윤리경영’ 필요한 시대

다가오는 무술년부터 한글창제 600주년이 되는 2044년까지, 앞으로 전개되는 4반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공공양심 경영에 따른 정신개벽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그 관건이 있다. 이제는 사회전반에 걸친 윤리경영이 요청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그 시점은 세대 간의 편견과 아집을 뛰어 넘는 상생윤리 구현에 달려있다. 상생윤리 구현을 위해 ‘오계잠(五戒箴)’을 참고하고자 한다. 전통적으로 오계잠은 수신요목으로, 한·중·일이 도덕문명의 동아시아 시민성을 함양하는 계기로서 작용될 수 있다. 오계잠은 남과 자신이 함께 양심을 속이지 아니하는 공공행복의 지평을 미래지향적으로 열어 가는 토대가 될 것이다.

첫째, 일상에서 말을 서로 주고받되 공덕을 쌓으며 복이 되게 하는 공공지평이다. 둘째, 살아가며 척을 짓지 않고 은혜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공공지평이다. 셋째, 남을 자기영성의 분신으로 바라보며 그를 잘되게 하는 공공지평이다. 정신수양에 생활규칙으로 함께 살려 도덕문명을 실심차원에서 일깨우며 사회도덕을 준수하고 공공행복에 기여한다. 넷째,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부부가 화목하며 평화가정을 이루도록 생활규칙으로 살리면서 나와 남 사이를 신의로 살리는 공공지평이다. 다섯째, 언동으로 척을 짓기 쉽기에 주고받는 말을 사랑의 말로 살리는 공공지평이다. 일상에서 과부족이 없는가를 영성으로 성찰한다. 4차 산업혁명 진입에 따른 인공지능 대비책은 공공양심을 살려 윤리경영을 지속함으로 개신하는 삶을 영위함이다.

 

● 공공지평 이루려면 ‘모를 뿐’을 활용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존엄과 상생지평을 여는 정신개벽이 일어나야 비로소 상호 공덕을 쌓고 행위 의도에서부터 양심적일 수 있게 된다. 공공지평을 이루기 위해서 ‘오직 모를 뿐’을 활용한다. 안다고 생각하면 생각이 번잡해지고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서 오감의 혼을 앞세우게 된다. ‘오직 모를 뿐’이라고 되뇌면, 번잡함에서 자유롭고 감정에서 벗어나서 오감으로부터 초월하는 공공지평을 열 수 있다. ‘오직 모를 뿐’하면, 생각 이전, 감정 이전, 오감 초월 상태에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아는 마음’으로부터 비롯하는 주객이원의 상대성에서 벗어난다. 나와 남을 나누면, 남보다 우월하려는 경쟁심이 토대가 되어 자명성을 훼손한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오직 모를 뿐’하면, 의식 중심의 영성으로 진입한다. ‘오직 모를 뿐’하면, 개체생명에서 벗어나 우주생명으로 전환한다. 일체가 이 자리의 무극에서 시작하여 둘이 아닌 ‘한’ 태극의 생명실상에 진입한다. 전체가 ‘한’으로 회통하기에 오감조차 벗어난다. 비로소 생각과 감정, 오감을 활용한 윤리경영이 가능해진다.

‘참 나’의 영성작용을 일으킴으로, 자아토대의 유위법에서 벗어나 영성에 근거한 무위의 수작(手作)이 가능해진다. 비록 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참 나’의 영성에 근거하면, 영성 안테나 작용에 따른 생각이 정언명법으로 작동되고, 이웃을 살리는 감정이 자비와 사랑의 공감대를 넓히게 된다. 혼의 자아를 주체로 행하면 행할수록 이기주의, 패권주의, 배타주의의 테두리에 꽁꽁 묶여 공공행복 구현을 어렵게 만든다. ‘오직 모를 뿐’하며 영성 안테나를 켜면, 번거로움이 사라지면서 편안함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주객이원의 상대성에서 벗어나 영성 안테나의 윤리경영에 맡기는 결단이 필요하다. 영성희열이 따르기에 환희의식을 수반한 ‘참 나’ 영성의 공공지평이 펼쳐진다.

 

● ‘오직 할 뿐’으로 공공행복 지향해야

그 다음은 ‘오직 할 뿐’으로 공공행복을 향해 나아간다. 이해관계나 물질풍요를 추구하기보다 선명성에 의해 ‘오직 할 뿐’으로 나아가 공공행복 정거장을 향한다. 어린이 세대와 청장년 세대와 나이 드신 어른세대 사이의 세대 간의 갈등이 저출산· 저성장· 고령화의 사회구조를 형성하여 한국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오직 할 뿐’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며 공공행복 정거장을 향해 정진한다. 각 세대마다 자신이 속한 세대이익에서 벗어나는 것이 관건이다. 반성적 성찰을 통해 ‘오직 모를 뿐’하며 상생모드로 나아가, ‘오직 할 뿐’으로 공공행복 정거장에 착륙한다. 물론 세대 차이를 인식하면서 자신이 속한 세대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공평모드의 영성을 작동시켜 세대 사이의 존엄을 지키고 살리며 공공행복 정거장을 향한다. 자아가 ‘참 나’를 만나는 시간이 확장될수록 자아의 ‘혼’에서 벗어나서 ‘참 나’의 영성으로 전환이 이루어진다.

자아의식을 통째로 내려놓기 위해, ‘오직 모를 뿐’하며 영성 스스로 ‘텅 빈 충만’을 알아차리는 ‘공적영지(空寂靈知)’가 절실히 요청된다. 이 길에서 더욱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편애의 장벽을 깨고 영혼의 식민지화· 영토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보수와 진보의 두터운 장벽이 양극화를 부채질한다. 이 사이의 괴리감은 자아의식의 배타성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제는 공공행복 정거장을 향한 ‘오직 할 뿐’에 투철하면 이 사이의 틈새는 소멸될 수 있다. 자아의식의 확고부동성은 실상은 가면의식이다. 가면을 벗겨 내면, 보수의식과 진보의식을 함께 내려놓을 수가 있다.

가면을 쓴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하면, 보수의 가면이든 진보의 가면이든 실상이 아니라 허상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수심결(修心訣)』에서 말한 ‘공적영지(空寂靈知)’에 주목한다. 그는 지혜로운 마음을 영성의 본래면목이라고 하였다. 이 마음을 깨치면, 삼계를 초월한다고도 하였다. 알려고 주장하면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다는 것을 직시하면 본래 성품을 확연하게 관조하게 된다. 행위의 인과응보에서 자유로우면, 스스로의 영성치유가 이루어진다. 자유 실현의 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자아 혼이 만드는 생각이 본래 고요하고 경계가 사라진 ‘텅 빈 충만’에 다가서면, 성성적적(惺惺寂寂)하여 ‘오직 모를 뿐’이 된다.

 

● 자신의 본래 모습 발견하면 공공지평 개신

신령하게 알아차리는 영성 지혜가 구족되어 있고, 결코 어둡지 않기에 끊임없이 공공지평을 개신한다. 공적영지에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발견하면 천하의 선지식이 은밀하게 전한 공공지평을 개신할 수 있다. 만일 깨친 마음이라면, 올라갈 계단조차 필요 없다. 성큼 큰 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삼계를 벗어나고 본래의 영성자택으로 돌아가 단박에 그 의심을 끊어 버린다. 자비와 지혜가 함께하기에, 공공지평의 자리이타가 샘솟듯이 충만해진다. 자신에게도 이롭고 남에게도 이로운 ‘자리이타(自利利他)’ 구현이 공공행복의 요체이기에 이 길에서 장부(丈夫)의 평생 할 일은 종지부를 찍는다.

동양정신의 유가숨결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이다. 시공을 초월한 근원적인 우주생명력은 천지와 함께 작용하면서 중화(中和)를 이룬다. 인간의 윤리경영은 희로애락을 경영하는 데 요체가 있다. 시공을 초월한 그 자리에 중심을 잡고 ‘텅 빈 충만’으로 경영한다. 감정의 희로애락을 인의예지(仁義禮智)로 경영하되 적절한 경계를 지키는 것이 중화(中和)이다. 마음에는 물처럼 흐르는 감수성이 드러나고, 땅처럼 견고한 의지가 작동하고,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격정이 자리 잡고, 바람처럼 가벼운 숨결이 요동치더라도 윤리경영으로 중화달도에 이른다. 지금은 천지개벽의 새 시대를 열망한다. 이에 동학에 이어 참동학을 표방한 증산성사(甑山聖師)는 개벽진행을 천지운행의 도수로 살렸으며, 원불교 소태산은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고 선언하였다.

도(道)는 선천 프로그램이다. 반면에 덕(德)은 후천의 체화(體化)로서 본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양심은 영성에 근거하기에 본성과 중화의 상관연동을 이룬다. 천지조화 기운은 중화도리로서 상생윤리 실천으로 이이져 공공행복의 정거장을 향한다. 개벽은 물질문명과 정신문화의 공공지평이다. 중심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균형이 중시된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보편법칙을 따른다. 본성차원에서는 우주생명의 그림이 구체화되기에 그 숨결에 따라 사건과 사물의 참모습을 구현한다. 그 근본작용을 이해하며 희로애락의 균형을 잡아 나가되, 실천요령을 함께 병행해야 공공지평이 열린다.

 

● ‘참 나’의 영성으로 조화의 덕 구현

논어의 ‘윤집궐중(允執厥中)’은 정신을 차리고 하나로 모아, 그 중정(中正)을 잡아 가는 도리이다. 서교의 하느님의 명령어와 상통하는 것이 중용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공공지평은 ‘서로 사랑하라’, ‘정의로워라’, ‘예절을 지켜 조화로워라’, ‘지혜로서 생명을 살려라’, 그리고 ‘항상 성실하라’이다. 천지만물의 운행원리는 오행의 원리로서 천지의 수많은 변화를 수반한다. 조화는 솔성(率性)에 그 관건이 있다. 솔성은 도의 작용을 쫓아 덕을 실천함이 그 요체가 있기 때문이다.

‘참 나’의 영성으로 중심을 잡아 조화의 덕을 구현함으로 천지만물의 윤리경영이 가능해진다. 영성차원의 하느님 명령어가 새겨진 자리를 개체생명의 본성이라고 한다면, 그 작용법칙에는 우주생명의 명령어가 함께 작동하여 공공지평을 열어 간다. 개체생명 차원에서 보면 본성자리이지만, 우주생명 차원에서는 하느님의 명령어가 새겨진 보편법칙이다. 상생윤리는 인의예지로서 경영하되 개체생명과 개체생명의 사이, 개체생명과 우주생명 사이를 공공지평으로 이어주고 살린다. 상생윤리는 ‘인의예지’의 경영에서 비롯된다. 만 가지가 서로 다르겠지만, ‘인의예지’에 맡게 처리하면 중화를 구현하며 만물의 생명을 살린다. 인연법칙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물건과 사건을 자명하게 처리하면, 우주생명 중심의 눈으로 비추어보더라도 어긋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성인이 사물에 감응하기 이전에는 마음의 본체가 광대하고 텅 비어 있어 경계가 사라지고 나와 남의 구분조차 사라진다. 그 경계가 사라진 영역에서 비로소 인의예지를 절도에 맞게 활용하여 성인은 도로써 조화로운 ‘중정(中正)’을 구현한다. 그 본체로 말하면, ‘텅 빈 충만’의 알아차림이다. 어떠한 물건도 비치지 않은 거울, 어떤 물건도 측정하지 않은 저울로서 작동한다. ‘중(中)’으로 있다가 아름답고 추함의 대상을 만나면 있는 그대로 다시 비추고, 치우치지 아니하는 저울작용으로 공평성을 이룬다. 세대 간의 갈등도 공평· 자명으로 공공지평을 열면, 그 실마리가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낸다. 신명과 함께 하는 영성의 공공지평은 하느님과 만나는 도리를 일상에서 살려낸다.

 

● ‘상생살림’은 마음을 하나로 모아 공경함에서

상생살림은 마음을 하나로 모아 공경함에 그 요체가 있다. 양심 그대로 곧아지면 잡스러움과 산란함이 사라져서 신명과 통한다. 신명으로 우주생명과 통하여 ‘인의예지’의 윤리경영이 이루어진다. 신명과 통하는 마음이 진리를 구현하여 천하 만물의 보편법칙이 되어 뭇 생명 살림의 상생윤리를 구현한다. 자신이 겪은 일 중에서 양심이 자명한 쪽으로 살다보면, 인의예지로서 경영되기에 상생윤리는 저절로 체화가 된다. 진리와 그 진리를 담는 그릇이 함께 굴러가서 중화의 공공지평을 개신한다. ‘참 나’의 영성에 중심을 잡고, ‘인의예지’로서 희로애락을 경영하면, 선비도리, 보살도리, 신선도리, 거듭남의 십자도리를 함께 사방위로 펼쳐 전 방위의 생명살림이 가능해진다.

분노를 일으키되 인의예지에 맞게, 슬퍼하되 인의예지에 맞게 함으로 무위이화(無爲而化)에 든다. 선천은 후천개벽으로 이어져 ‘생장염장(生長斂藏)’을 굴린다. 천하를 바로잡아 일을 하되 한 바 없이 일 하는 무위(無爲)를 일상에서 굴린다. 성인 사업은 무위로 공공행복을 구현함에 그 요체가 있다. 병에 걸렸을 때 생기 있는 사람은 약기운이 힘을 북돋아 살아나지만. 사기(邪氣)가 침범하면 약기운이 흘러 위태로워지니, 천하분란의 다스림은 생기를 얻느냐 아니면 잃어버리는가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빛의 감로(甘露)를 통해서도 영성의 공공지평이 열린다. 이 광명은 법성광명(法性光明)이자 감로해인(甘露海印)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여래성품(如來性品)에서는 “감로를 먹으면 죽을 목숨이 살아나고, 재차 감로를 먹으면 수명이 길어 영생하리라. 더없이 높은 감로 맛으로 인하여 나지도 죽지도 않을 수 있다. …… 법성광명이 모공에 들어간 자는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한다. 박복한 사람은 듣지 못할 것이지만, 큰 복이 있는 사람은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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