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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 기고문 ■ 고령자 시대의 고령자를 생각한다(2)
동양포럼 / 기고문 ■ 고령자 시대의 고령자를 생각한다(2)
  • 동양일보
  • 승인 2018.02.2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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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갈등, 인식의 균형으로
김영미 시인

● 당신은 오늘 하루 누구와 대화하였는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방문객’에서)

사람들은 일생동안 수많은 관계를 맺는다. 이 시처럼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서로 알게 모르게 ‘실로 어마어마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올 만큼 소중한 만남인데, 사람들은 관계에서 오는 책임감 또는 부채감 때문에 온라인 서비스를 주로 소비한다.

어느 조직의 구성원, 모임, 친구, 연인, 가족이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나를 만드는 일이다. 바로 그들이 나에 대해 설명해줄 유일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늘 하루 동안에 ‘누구와 대화하였는가?’ 개인은 타인과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성격, 삶의 양식 나아가 독창적인 영혼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타인은 거울과 같아서 나의 생각이 타인에게 비치고 또 타인의 생각은 나라는 거울에 비치면 서로 공명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이, 하나의 실체가 다가오는 만남을 환대해야 한다.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보편적 현상이다.

한국사회도 예외 없이 이념, 계층, 지역 등의 다양한 갈등이 존재해왔다.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것이 세대갈등이다. 문제는 세대 간의 불신과 대립이 격화되어 현재 우리사회의 여러 분야에 확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2010년 이후 세대갈등이 높아진 원인은 한국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이전의 외환위나 금융위기를 통해 계층의 불균형이 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후 저출산·고령화의 진전은 노동생산성 인구감소와 초고령 사회로 진입을 예고하며 세대 간 부양과 부담의 경제적 문제로 사회적 긴장을 한층 높였다. 이로 인한 세대 간 문화격차는 ‘세대차이’를 넘어 ‘세대갈등’으로 전개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 조화롭기에 더 아름다운

내가 살고 있는 옥천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구감소로 인한 인구불균형이다. 전체 인구 중 노인이 증가하면서 몇 년 사이 군내 초등학교 몇 곳이 폐교됐고, 중·고등학교는 통폐합 위기에 처해있다. 생활주변도 많이 달라졌다. 빈집이 늘어나는데도 아파트는 올라가고, 시내와 변두리엔 택배시설과 요양시설이 넘쳐난다. 작은 마을에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가는 젊은이들을 붙잡아 둘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동네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하는 마을이장님들의 한숨소리만 커 간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우리가족은 2001년 옥천으로 이사를 왔다. 작은 마을 옥천은 서울토박이에게 그동안 몰랐던 사람살이의 ‘정’을 느끼게 해웠다. 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재미를 알았던 때이다. 그 정으로 18년째 옥천에서 지낸다. 그해 초여름, 옥천 요금소를 빠져나오면서 느낀 첫 인상은 정겨움이었다. 마을을 너그럽게 감싸는 햇살이 낮고 낡은 건물사이를 통과하며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 ‘행복’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외할머니 댁 같은 혹은 상처 받은 사람들이 위로 받은 수 있는 곳이라 느껴졌다. 좀 과장하자면 마치 작은 동네가 우리 가족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 한 착각이랄까. 우린 15세대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한 아담한 빌라에서 행복한 시간을 만났다. 이사 온 날, 세대마다 떡을 돌리며 인사를 나눴다. 어머님의 생각이셨다. 다음날 이집 저집에서 제철과일과 야채를 과분하게 받고 놀랐던 저녁, 새 가족을 맞이하기 위해 반상회 날을 앞당겨 동네잔치를 열어준 이웃들의 따스한 마음들,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노인 3세대가 정으로 소통했던 공간들. 이 모든 감정과 경험, 그리고 시간들이 모여 새 식구들에게 잘 전달되고, 고스란히 스며들었기에 화목하게 지냈던 것이라 생각된다. 톨스토이는 일흔이 훨씬 넘는 나이에 삶의 성찰을 담은 단편집을 펴냈다. 이 중 ‘세 가지 질문’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대하고 있는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고민과 일깨움일 것이다. 옥천에서의 삶은 가족과 함께 하면서 더불어 사는 것으로의 관계를 확장시켰고, 이웃들과 함께 공유하는 삶에서 조화롭기에 더 아름다운 나눔의 정을 알게 해주었다. 그러나 요즘 변화의 물결 속에 점점 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 가족의 형태가 변해간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 동향 2014’에 따르면 한 부모 가구 및 1인 가구가 증가됐다. 미혼율이 높아지고, 독거노인이 늘어나고 이혼율이 증가한데 기인한 것이다. 2035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가구 중 34.3%나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가족형태의 변화는 세대갈등으로 이어졌다. 세대갈등은 정치, 경제, 가족, 문화 영역에서 그 갈등이 중첩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경제적 갈등이 가족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문화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른 세대 간 불균형이 갈등을 증폭시키고 이로 인한 가족형태의 변화는 가정의 역할, 가족 구성원의 역할과 가치관 변화, 사회의 역할 변화와 함께 그에 따른 부작용인 것이다. 바로 가족해체 및 가족붕괴 현상이다. 세대갈등에서 중요한 문제는 세대 간의 인식차이에 있다. 문학이 그 시대의 산물이라고 볼 때, 그 징후를 문학과 대중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2007년 ‘가족의 탄생’과 2010년 ‘고령화 가족’은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전통적인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가정과 빈곤을 주제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가족의 탄생’은 가족이 해체되고 다시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가족의 형태는 가부장제에서 가족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아버지’가 없거나, 혈연관계에서 벗어나 있다. 입양이나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동거의 형태로 가정이 생겨나는 모습을 그린다. 혈연적 관계보다는 경제적 관계로 변질되거나, 사회적 관계처럼 서로를 소외시킨다. 즉 ‘콩가루 집안’, ‘동거인’ 등 결손가정이다. 영화는 가족의 의미가 상실된 구성원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과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한 시각을 열어보였다. ‘고령화 가족’은 평균나이 49세를 자랑하는 고령화 식구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무능과 무직, 상처와 불명예로 점철된 이 시대의 온갖 궁상을 끌어 모아 제시하고 있다. 가족의 형태는 씨가 다르고 배가 다른지만 함께 밥을 먹는 ‘식구’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핏줄’이 아닌 ‘의리’와 ‘인간적인 정리’로 표현된다. 흔히 착한 설교로 마무리되는 가족 사랑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 이후 가족애를 그린 영화도 대부분 가족관계의 회복보다는 예전과 달라진 가족형태에 초점이 맞춰있다.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 역시 매우 날카롭다. 최근 몇 년간 현대시에 그려진 가족의 풍경은 현대사회의 가족관계를 다양한 측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첫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힘과 용기를 주는 현실 긍정의 힘을 보인다는 것이다. 둘째, 낯선 가족관계와 이를 넘어 가족해체 혹은 가족붕괴에서 오는 비애의 감정이다. 셋째, 혈연중심의 전통적 가족가치관을 그대로 지키는 화해와 조화의 미덕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저엔 가족상실과 빈곤으로 인한 ‘가족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라는 것이다.

한 주일씩 엇갈리는 교대근무/ 한 이불 덮으면서 주말부부다/../ 찬밥 물에 말아 혼자 먹는 저녁밥/ 담 넘어오는 저 된장찌개 냄새/(이한걸 ‘저녁밥’부분)

참사랑 요양병원/ 세상의 것들이 다 음식이 되는 어머니의 입 안은 요란하다/../ 어머니는 이제 세상을 기억하지 않는 미지수X/ 입만 살아 있는 환형동물로 산다(정진경 ‘세상의 것들은 다 음식이 된다’부분)

만나도 모르는 사람들/ 몰라도 만나는 사람들// 만나더라고 만나자 않은 것이다/ 이제 이 좁디좁은 우주에서 우리는 그리 되었다./(이병률 ‘사람의 재료’부분)

우리는 서로의 감정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당신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거짓이/ 세상을 덮어버릴까 두려워서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파먹다가 안쓰럽게 부수러기가 되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나라에서/(이병률 ‘이별의 원심력’부분)

우리사회는 노동 시장의 불안으로 실업이 늘고 취업이 힘든 상황에 가족부양과 부담으로 원만한 가족관계를 이루기가 힘든 것이다. 이로 인한 가족해체와 가족붕괴는 문화적 세대갈등으로 이어져 여려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가족 내 정신적인 유대감 약화의 문제, 가족부양 인식의 변화에 따른 노인과 자녀교육 문제, 가정의 기능약화에 따른 청소년 비행 문제 등이다. 가족은 사회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과거 조부모 세대, 부모세대, 아이세대로 구성되는 전통적 가족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있다. 여성의 경제력 상승과 핵가족, 글로벌화 등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가족 형태가 등장했다. 심지어 동성애 가족과 비 혈연가족들로 구성된 공동체 가족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딩크족(무자녀), ‘딩크펫 가족’(자녀를 낳지 않고 대신 애완동물을 키우는), ‘페치워트 가족‘(재혼으로 인해 성이 다른 가족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가족) ‘싱글맘, 싱글대디’, ‘미스맘’(결혼은 하지 않았으나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거나 입양해 혼자 아이를 낳고 기르는) 등이다. 가족의 해체와 재탄생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인다.

 

● 정(情)은 한국인들의 정서

정은 한국인들에게 남다른 애착이 있는 말이다. 한국인들의 정서 그 자체인 셈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인간관계와 마음의 질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한다. 정이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현상의 융합체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정에 대한 수많은 맥락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은 부부간의 정, 형제간의 정, 남녀 간의 정, 친구와 이웃 간의 정 등등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즉 정으로 살아온 한국인의 사람살이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그 조직이 매우 복잡하고 불평등한 면이 내제되어 있어 구성원들 간의 합의와 신뢰가 쉽지 않다. 바람직한 가족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윤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윤리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허나 사회공동체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급한 것은 개인적 윤리차원에서 가족관계의 회복에 있다. 바로 정으로 통하는 관계이다. 가족이라는 것은 끝없는 화해와 조화로움 속에서 끊을 수 없는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가족이라는 이름의 아픔은 삶을 살아가는 씨앗이 된다는 사실은 분명할 것이다.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네가 너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안쓰러운 것이고/ 끝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사랑스런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원로 나태주 시인의 시 ‘꽃·2’ 전문이다. 그는 2014년 일흔의 나이에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했다. 제목은 ‘꽃’이지만 이 시가 단순히 꽃을 노래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가진 것 없이 안쓰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생명의 존재원리이고, 생의 지속원리이며 인간의 존재의미와 가치를 아름답게 해준다는 점에서 인간애에 바탕을 둔 시로 평가된다. 정은 가족에 대한 소중함이기도 하다. 그 속에는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아껴주고, 함께 있으면 편하고, 오랜만에 보면 반갑고, 잘못을 이해해주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은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며 색깔도 없는데 분명 존재한다. 그것도 역동적으로 살아 있다. 이런 속성 때문에 정은 때때로 지나친 참견이나 오지랖, 사생활 침해 등으로 오해될 수 있다. 정을 받는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이 부담스러울 수 있고, 정을 주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가 오히려 야속한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과 이상적인 관계 사이에서 지혜로운 접점을 발견하면 점차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는 현대사회의 인간관계에서 심리적 자원이 될 것이다.

 

● 세대공감, 3대가 함께하는 행복 대한민국

2016년 국민대통합위원회 주최로 ‘3代가 함께하는 행복 대한민국’ 상생을 위한 세대공감의 장이 열렸다. 가족 간 및 세대 간의 갈등을 좁혀 나가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다. 그 추진배경은 우선 저출산·고령화의 급격한 진행, 사회구조의 다원화, 개인화 속에서 경제적 이해관계, 이념, 생활방식 등의 차이로 각 세대 삶의 만족도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노인 부양 및 빈곤, 일자리 부족 등의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한 세대소통과 공감의 조건에 대한 연구 필요성이다. ‘자녀와 부모 간 인식 차이 좁히기, 조직문화 속의 갈등 해소를 위한 해법을 찾기, 공공문화에서의 미덕과 배려를 찾기, 세대상생을 위한 행복 대한민국을 만들기’ 등 4가지 영역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국민들의 경험과 지혜를 들었다. 주로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세대 갈등 경험에 주안점을 두었다. 세대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대화를 통한 갈등해결 경험 부족(36%)’, ‘세대 간 가치관의 차이(24%)’, ‘노후대비가 안된 노년세대(10%)’ 등을 진단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상생해법으로 ‘세대 간 수평적·문제해결식 대화 기회 확대(40%)’, ‘공동체의식 및 공공 에티켓 강화(27%)’, ‘일자리, 임금 등의 제도 개선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14%)’이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세대 차이는 시간문제다.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신도 젊은 시절에 그랬음을 인정하고, 젊은 사람들은 자신도 언젠간 늙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 갈등해소의 시작이다. 걱정, 두려움, 무능력한 느낌의 부정적인 감정은 어린아이도 늙게 한다. 노인에게는 교만과 허영이 독이 된다. 공감은 성공적인 노화에 필수 감정이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먼 길을 걷는 것”이라는 인디언의 비유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세대상생의 시작도 서로에 대한 공감과 배려에서 출발한다. 세대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민행복과 직결된다.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가정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세대 간 협력과 공존을 이루어내기 위한 첫걸음은 타 세대에 대한 단순한 편견과 부당한 비난을 극복하는 것, 각 세대가 놓여 있는 세대 위치와 조건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 열린 마음으로 각 세대의 의식적 특성을 받아들여 다른 세대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공동체의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3代(어린이-젊은이-노인) 세대가 더불어 행복한 세대공존이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열쇠일 것이다. 바로 정으로 통하는 가족, 정으로 뭉친 마을, 정으로 공감하는 세대이다.

 

● 당신의 노후는 안전하십니까?

우리나라는 2016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 국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인구의 15%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가 시작됐다. 그들이 맞이할 노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세대의 경제적 조건이 가족 내 경제적 부양 관계에 의해 굴절되고 있다. 초고령 사회 일본에선 이미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노후파산’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두려운 노년의 현실이 된 것이다. 한국의 취약한 사회 구조상 한국의 노인들은 노후파산이라는 벼랑 끝에 내몰리기 쉽다.

노후가 준비되지 않은 그들에게 장수란 축복이 아닌 재앙일 뿐이다. 노후 파산은 경제적 파탄을 넘어, 가정 해체와 건강 악화, 고독사로 이어지는 노년의 수렁이다. TV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가족이 동반자살을 했다는 비보가 종종 들려온다. 그 이유는 생활고, 질병, 외로움 등이다. 2년 전, 시어머니는 오랜 지병을 앓다 83세 나이로 돌아가셨다. 1년 조금 넘게 요양병원에 계 계시다가 운명하셨는데, 그 슬픔은 생각보다 무척 컸다. 26년 동안 다섯 식구가 뭉쳐 살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힘든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가족 중에 환자가 있으면 경제적, 정신적 고통이 뒤따른다. 나는 며느리이기에 앞서 보호자였던 시간이 더 많았다.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족이 편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선 가족 중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던 때이기도 하다. 다행히 요양원에 오래 계시지 않았기에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양원은 경비에 따라 요양시설과 서비스의 질이 달라진다. 요양원에 가보면 눈물을 흘리며 침대에 누워있는 노인이 많다. 자식들은 찾아오지 않고, 입원비도 납부되지 않은 상태에 연락마저 끊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생활고로 부모를 요양원에 방치하는 ‘신고려장’ 사태는 100세시대의 현실이고 사회의 풍경이다. 문제는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계속 늘어난다는 것에 있다. 경제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여성노인의 빈곤이 극심하다. 노후준비라는 개념이 없는 이들은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요양시설 조차 못가는 노인들은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이런 노후 생활을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아파도 꾹 참고 병원에 안가”라고 말한다. 그들은 죽음만을 기다린다. 지금의 노년층들이 준비되지 않은 이유가 무얼까. 그들은 장년시절 게으른 베짱이는 아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인생을 살았고,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부모 세대에 효를 다한 세대이었을 것이다. 노후준비의 장애요인은 물가상승에 따른 생활비 부족, 과도한 자녀양육비 및 교육비, 빠른 정년퇴직, 자녀결혼과 사업자금 지원, 국민연금 보장기능약화, 노후준비 인식과 정보부족 등으로 변수가 많았다. 늘어난 수명만큼 남은 앞날에 대한 고민과 걱정도 깊어진다. 국가적으로도 100세 시대는 부담스럽다. 초고속 고령화로 경제활동 위축과 노후준비를 위해 꺼내들 카드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 우리는 모두 처음 늙는다

은퇴부터 歸天까지 삶을 좌우하는 건 경제적 자립과 여가활용이다. 노화에 대한 긍정적인 교육과 더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은퇴자들을 위한 일자리다. 일은 중요하다. 자기인식, 자부심, 사회적 지위 등등 일이 주는 만족은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의미하며, 노인문제(우울증) 예방과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3만 개 이상 일자리 확보한다고 밝혔다. 가장 많은 노인 일자리는 취약계층 지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옥천도 장애인가정이나 보호시설 등을 지원하거나 다문화가정의 가족 상담과 정서지원 등의 공익활동을 한다. 취약한 노인 가정을 방문해 안부를 확인하고 말벗이 돼주는 ‘노노케어’와 어린이집을 방문해 동화를 들려주는 ‘이야기나라사업단’은 참여도가 높고 반응도 매우 좇다. 노인들에겐 사회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세대 간 소통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각 지역의 시니어클럽을 중심으로 지하철 안전지킴이와 보육시설 도우미, 아동청소년 안전지킴이, 초등학교 급식도우미, 어르신 강사 파견, 백세택배, 백세기획, 문화유적 해설 등이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처음 늙는다. 단순히 오래 산다는 것이 무슨 복이겠는가. 제대로 생명의 힘을 느끼며 사는 것이 모든 인간의 꿈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공공의료비의 많은 부분이 노인층에 과다하게 쓰인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 역사를 보면 지출이 가장 큰 항목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앓는 질병이라고 한다. 노인의 의존 상태가 길어지는 것은 노화 때문이 아니라 질병 때문이다.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냈던 김형석 교수(99세)는 90세가 넘어서 더욱 전성기를 이어간다. 지혜롭게 나이 드는 어른을 뵐 때면, 노화는 “생의 정점에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더 성숙하게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김 교수는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행복은 개인적이라기보다 인간관계에서 온다. 정서적인 안정감과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인간관계가 무너지게 되면 사회적으로 성공했을지라도 행복한 사람일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최근 가정상실과 파괴에서 오는 상흔이 여러 사회악으로까지 번지고 있을 때일수록 “사랑이 있는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라며 ‘가화만사성’을 강조한다.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이다. 사랑이 있는 고생만큼 행복한 것은 없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나누고 베풀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속뜻을 생각했다. 그 핵심은 수신에 있다. 각자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힘을 쓴다면 세상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도 80대 어른 두 분이 계신다. 현재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유성종 선생님과 동양포럼 주간 김태창 선생님이다. 오랜 벗이기도 하신 두 분은 몇 십년동안 세계 여러 곳에서 ‘공공하는 철학’을 펼치셨고, 현재는 고향 청주에서 시민철학운동을 전개하신다. ‘수신제가’를 실천하시는 두 분은 늘 겸손과 배려가 몸에 배어 있으시다. 어떻게 하면 개개인과 지역, 그리고 나라에 도움이 될까를 늘 고민하셨고, 현재도 일념으로 걱정하시는 모습을 뵈면 ‘참 어른’이란 생각이 든다.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시는 그분들의 열정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옥천신문에서 읽은 한 구절이 생각난다.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 인식의 균형, 수신제가

최근 현직검사가 검찰 내부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면서 법조계에서 미투캠페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검찰과 기업 심지어 대학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투(Me Too, 나도 겪었다)운동은 ‘성추행·성폭력 피해를 고발하고 함께 연대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 불길은 문학계로 번지면서 한 원로 시인을 둘러싼 과거의 의혹을 현재로 소환했다. 바로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이다. 문제는 50대가 80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있다. 이 시에서 성추행을 일삼은 원로 시인이 괴물로 비유돼 상세히 묘사되었다. 또 다른 시인은 ‘En선생’의 실명을 공개했는데, 그는 민주화 투사로 알려진 시인이었다. 그 시인은 같은 분야30년 후배 시인에게 ‘교활한 늙은이’로 비춰졌다. 또 그 시인이 노벨상을 타면 우리나라가 싫어져서 우리나라를 떠나야겠다고 할 정도로 인식됐다. 그렇다면 원로 시인은 어떻게든 修身부터 해야 할 것이다. 이 시는 실제로 사회 각계각층에 교활한 늙은이가 꽤 있다는, 80대의 인간도 자성해야 한다고 읽힌다. 어찌 보면 마음 아픈 일이기도 하다. 최 시인의 용기 있는 폭로로 거의 우상시 되었던 원로 시인의 민낯이 드러났다. 이른바 우상파괴라는 관점이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이로 인해 갈등과 대립이라는 산고를 치러야 하지만 세대 간 상생관계로 가는 방향에서 거쳐야 할 과정이라 보인다. 이 사건은 그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종래의 프레임을 깨고 새로운 세계를 열려면 누군가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원로 시인은 한 신문사를 통해 “30여 년 전 어느 출판사 송년회였던 같은데,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전했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문제에 대해 누군가 용기를 내어 문제제기를 했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논함으로써 당사자가 ‘잘못한 일이다’라고 뉘우치고 반성을 했다는 것이다. 장수시대가 도래했다. 우리나라도 얼마 안가 전체인구의 1/4을 70~90세대의 사람들이 차지할 것이다. 노인은 젊은 세대들로부터 지지, 돌봄, 존경을 받아야 하고. 노인은 젊은이에게 문화적 의미, 안정성, 그리고 과거와의 연속성 등을 제공해야 한다. 세대는 서로 돕는 관계이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조화로운 지향점을 가져야만 그 궁극에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 간 인식의 균형이 매우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처럼 나이, 경력, 업적을 등에 업은 권력사회를 깨야한다. 3세대가 상생하는 즉 어린 세대와 젊은 세대, 그리고 나이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사회, 균형 잡힌 사회가 되기 위함이다. 문학계에서 일어났던 비슷한 현상이 사회 각계각층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고령자도 자기인식을 바꿔야 하고, 다른 세대의 사람들도 고령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문학계의 성추행 폭로는 50대 인간이 80대 인간을 보는 하나의 관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세대 간의 인식차이가 조정이 되어 세대 간 상생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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