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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35) / 관객 줄 서는 골목극장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35) / 관객 줄 서는 골목극장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8.03.0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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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곳곳에서 쿠바노들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쿠바노들은 멋진 퍼포먼스로 관객을 즐겁게 한 후 관객들의 주머니를 털어간다. 상술과 예술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이다.

무대는 빅톨 위고 동상 앞, 관객은 시간과 돈을 주체 못하는 헤밍웨이 팬이다. 별 다섯 개 호텔 못잖은 유람선이 부려놓은 관광객은 가이드 깃발 따라 퍼포먼스 무대를 찾아든다. 미국에서 아바나까지 직항 노선은 관객 모자랄까봐 생겼다 보는 게 옳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한 곳에서 더 편하게 지낼 영감 얻어가는 건 덤이다. 객실 잠깐 들여다보는데 5달러, 그 외에도 돈 버는 수단은 셀 수 없을 만치 많다. 굳이 퍼포먼스가 아니라도 사진 모델이나 라이브 공연을 펼쳐 관객들 주머니를 턴다. 질 낮은 시가를 길에 내놓고 판다든지 그런 가게에 데려다 주고 뒷돈을 받아 챙기는 것도 관광 수입에 보탬이 된다. 주머니 그득 채워온 관광객은 즐길 거리만 있다면 아끼지 않고 돈을 뿌려댈 게 뻔하다. 그걸 알고 있는 쿠바 정부에서 달러를 벌어 나라 예산에 보태려고 몇 년 전부터 숙박, 음식, 택시 영업을 허가했다.

관광객 끓는 곳에는 어디나 그들을 꾀는 교묘한 상술이 등장한다. 이름난 호텔 앞에 서성거릴 무렵 괴상한 차림의 남자가 나타나고, 세숫대야 크기의 나무 등걸 위에 올라선다. 머리에 쓴 고깔이며 상하의에다 들고 있는 바구니까지 야자나무 수피로 만든 거다. 옷 여미는 재료는 칡넝쿨이고, 오른손과 목엔 염주 모양 목걸이며 팔찌를 찼다. 얼굴에 바른 위장 크림마저 자연의 선물인 듯하다.

뭘 하려고 저러는 걸까, 한참 동안 지켜봐도 맨발 남자는 미동도 없다. 숨이 멎을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가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남자, 마네킹이라 해도 믿어줄 것 같다. 나른함이 밀려들 때 쯤 지나치는 어린애가 동전 한 개를 바구니에 떨어뜨린다. 그 소릴 신호로 남자 오른손이 옆구리에 낀 바구니로 옮겨가고, 한 줌 집어 흩뿌린 곡물이 바닥 여기저기로 굴러간다. 저걸 잘못 밟으면 넘어질 텐데 하며 허릴 숙여보니 콩이다. 남자 동작이 신기해서 폰으로 찍다가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사진 찍으려면 모델료라도 내든지, 염치없다며 고함이 날아들 것 같다. 떳떳한 게 맘 편할 것 같아 주머닐 뒤지다가 남자 눈치를 살핀다. 돌아서서 체 게바라 얼굴 새겨진 지폐를 꺼내 바구니에 넣는다. 콩을 몇 차례 뿌려대던 남자, 동영상 찍으라고 그러는지 길에 쪼그려 앉아 뿌린 걸 도로 주워 바구니에 담는다. 곁에서 천사의 미소를 짓던 꼬마도 고사리 손으로 돕는다.

호텔 입구에 온 몸을 검게 칠한 남자가 등장한다. 터번을 쓴 머리며 얼굴과 손, 옷도 죄다 새까맣다. 부동자세로 꼿꼿이 선 남자, 가만히 서 있어도 푹푹 찌는데 두꺼운 옷을 입고 꼼짝 않고 서 있을 수 있다니. 길 가운데 동상을 세워둔 게 의아한지 여자가 그에게 다가온다.

손이나 다리를 건드려 보고 눈동자도 살핀 뒤 눈꺼풀은 깜빡거릴 거라며 옥의 티 찾으려 골몰한다. 그 무렵 눈을 번쩍 뜬 남자, 여자에게 윙크를 날린다. 멀리 섰던 사람들은 미처 눈치 못 챘을까봐 오른손을 조금 든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는 여자를 보고 할 일을 끝냈다는 듯 입을 길게 찢으며 두 손을 흔든다. 여자는 그때서야 퍼포먼스라는 걸 알고 남자에게 지폐를 쥐어주고 물러선다.

프로그램 끝나려면 멀었다며 여자를 붙들고, 옆에 끼고 있던 클러치 백에서 뭔가를 꺼낸다. 곧이어 귀한 종이와 볼펜이 정체를 드러낸다. 허벅지를 받침 삼아 정성스레 글씨를 적는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영수증인지 차용증서인지 애매하다. 그가 여자 손에 쥐어주는 서류가 차용증서라면 언제 갚겠다는 얘기가 들어 있어야 할 텐데 남자의 표정으로 봐서 되갚을 것 같진 않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서두르는 법이 없다. 쿠바가 또 한 번 혁명을 해도 될 만큼 지루한 시간이 흘러간다. 그런 건 아랑곳없다는 듯 남자는 여자에게 손등의 파리가 달아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고갤 숙이며 연극 끝난 걸 알린다. 그런 뒤 처음 자세로 돌아가 꼼짝 않고 서서 다음 손님을 기다린다.

쿠바노가 벌이는 퍼포먼스를 상술이라 폄훼하는 건 그들 아르떼를 이해 못한 탓이다. 어떤 장르든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낱낱이 뜯어보면 어느 순간 훅 빨려드는 게 예술 아닐까. 작가의 의중을 알아챘을 때 비로소 관객과 배우의 소통이 이뤄지고,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뭉클한 느낌 또한 다가온다.

땡볕 아래 일하지만 그들 수입은 일정하지 않다. 관광객이 던져주는 돈은 몇 푼밖에 못 되지만 내공 쌓인 덕분에 트로피 따윈 떠올리지 않고 연기에만 몰입한다. 제각각 맡은 역할에 몸과 마음을 죄다 던져 넣는 프로 근성, 그걸 지닌 배우라면 허기져도 배 부른 연기를 너끈히 소화해 낸다. 예술혼의 갑옷을 걸친 쿠바노의 다양한 마스터피스는 골목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고, 쿠바 정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콜라보레이션을 이룬다. 예술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마스터피스 하나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장르를 달리한 또 하나 아르떼다. 쿠바를 정신이 살아있는 선진국이라 이름 짓더라도 입 댈 사람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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