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 중 85%가 아는 사이…가해자 ‘역고소’ 피해도 심각”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미투(me too)’ 운동 이후 한국여성의 전화에 성폭력 피해를 상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국여성의 전화가 8일 발표한 ‘한국여성의 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상담통계 분석’에 따르면 지난 1월 30일부터 3월 6일까지 접수된 성폭력 피해 상담은 100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23.5% 증가했다.

이 기간 성폭력 피해 상담 100건 중 28건에서 ‘미투’ 캠페인이 직접 언급됐다. 구체적으로는 미투 캠페인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거나 피해 경험이 상기되어 말하기를 결심했다는 사례가 많았다.

‘이대로 두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길 것 같아서’, ‘이제는 그 일이 성폭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라고 말한 이들도 있었다.

한국여성의 전화 관계자는 “이는 미투 캠페인이 가해자가 유명인인 사례나 언론 보도를 통한 고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상담 사례 2055건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성폭력 피해가 29.5%로 가장 많았고, 가정폭력 28.1%, 데이트폭력 13.8%, 스토킹 8.8% 등의 순이었다.

피해자가 여성이고 가해자가 남성인 사례가 94.9%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또 전·현 배우자, 전·현 애인, 데이트 상대자 등이 가해자인 경우가 45.9%를 차지해 여성 폭력 피해 다수가 남성에 의해 발생하며,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인 것으로 분석됐다.

성폭력 피해를 유형별로 보면 33.9%가 성폭행·성추행이었으며, 성적 모욕·비난·의심이 14.9%를 차지했다.

성폭력 가해자는 직장 관계자가 24.4%로 가장 많았고, 전·현 애인, 데이트 상대자 등이 23.7%, 친족 및 전·현 배우자가 14.8%를 각각 차지했다.

전체 성폭력 피해의 85%가 피해자와 아는 사람에 의해서 발생했는데, 이는 성폭력이 낯선 사람 혹은 일부 병리적 개인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통념과는 배치되는 것이라고 여성의전화 측은 지적했다.

성폭력 피해 중 상담 내용에 2차 피해 경험이 드러난 사례는 19.3%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피·가해자의 주변인과 가족에 의한 피해가 44.5%로 가장 많았고, 직장에서의 피해가 18%, 경찰·검찰·법원 등에서의 피해가 17.5%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겪게 되는 ‘역고소’의 심각성도 지적됐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7년 지원했던 ‘역고소’ 피해 사례는 18건이었는데, 이중 16건은 가해자가 고소한 사례였다. 무고(6건) 및 명예훼손(4건) 역고소가 대다수였고, 모욕, 허위사실 유포, 업무방해, 사기, 가택침입, 재산 분할 등이 있었다. 2건은 검사에 의한 무고 인지였다.

여성의 전화 관계자는 “가해자에게 매뉴얼처럼 자리 잡은 역고소로 인해 피해자는 정서적·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 자체가 부정되는 극심한 고통에 놓이게 된다”며 “이러한 현실은 결국 피해자가 피해를 제대로 말할 수 없게 하고, 폭로나 익명 고발 등 다른 방법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하기도 하며, 역고소 피의자가 되기를 감수하며 피해를 고발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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