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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36) / 허리케인이 남긴 흔적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36) / 허리케인이 남긴 흔적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8.03.08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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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이르마에 잘려나간 나무. 700명 투숙객과 직원들 마음 속에 푸르게 자라고 있다는 팻말이 적혀있다. 나시오날이 쿠바 최고의 호텔이란 걸 드러낸다.
김득진 작가

 미국 마피아가 자국 여행객 끌어들이려 1930년 문을 연 나시오날 호텔. 펼쳐진 바다와 딸린 정원이 투숙객 마음을 설레게 해서 이름났다.

술 마시는 게 불법이었던 미국과 달리 싼 럼주가 넘쳐나는 쿠바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대왕야자 두 그루가 아직도 키 겨루는 정원, 오래된 나무 잘려나간 둥치 위에 팻말이 붙어 있다. <호텔 건축의 상징인 나무가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 이르마에 잘려 나갔습니다. 베어내긴 했지만 그걸 지켜본 700명 넘는 투숙객과 종업원 마음속에 늘 푸르게 일렁거릴 것입니다> 카리브 해를 품은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은 시설만 빼어난 게 아니란 걸 증명해 보인다.

쿠바는 중남미 해상 교통의 요충지다. 시계 방향으로 도는 북대서양 해류는 멕시코 만 난류를 만나 유럽 뱃길을 쉽게 터준다.

대서양에서 태어난 허리케인은 이름에 먹칠하지 않으려 카리브 해 섬나라와 쿠바를 꼭 할퀴고 지나간다. 차가운 바다 오래 떠도는 동안 숯불 로스팅한 듯 그윽한 커피 향기가 그리웠던 건 아닐까. 품질 뛰어난 중남미 커피 중에서도 으뜸인 쿠바 크리스탈 마운틴, 세계 3대 커피 블루마운틴을 따라 잡으려고 티피카 품종을 옮겨 심은 결과다.

최대 시속 260킬로미터인 허리케인. 폭우까지 거느린 이르마 땜에 말레꼰이 제 역할을 못해 바닷물이 어른 허리 높이만큼 차올랐다.

9미터 파도에 4200채 주택이 침수되고 1200채가 부서졌다. 주택 20만 채를 더 지으려던 중 무너지거나 염분 침식 피해를 당해 정부는 대략난감인 처지다. 눈망울 초롱초롱한 까르멘이 유 튜브 동영상으로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주방에서 요리하는 주부들 모습을 보여준다.

연인을 안고서 바닷길을 춤추듯 걸어가는 쿠바노와 대야로 보트를 만들어 피신하는 주민들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국토의 70%가 평지인 쿠바에서 해일 피할 곳이 없었던 결과다.

플로리다나 마이에미에선 재난 방송에 따라 차에 비상물품을 싣고 진작 피신했다. 어쩔 수 없이 입은 피해는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복구하겠지. 미국과 다른 쿠바는 무너지거나 염분 침식된 건물을 복구할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일 년만 지나면 오래된 절간 단청처럼 변하는 수성 페인트.

가까스로 구해 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들마저 물에 잠겼으니 무슨 돈으로 페인트를 사서 낡은 도시에 수채화 물결이 일렁거리도록 할런지. 의료 사업에, 교육 정책에 나랏돈을 써버려 예비비도 없을 게 뻔하다.

바닷물이 넘친 탓에 생긴 포트홀 메울 여력도 남아 있지 않다.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미국도 긴장하는 허리케인. 중부 지방에서 방향을 튼 덕분에 아바나가 피해를 적게 입은 게 천만 다행이다.

가난한 나라의 자연 재해는 후유증 때문에 두렵다.

이번 이르마로 오래 전 유행한 아메바가 다시 퍼져 나갈지 모른다는 소식도 들렸다. 네글레리아 파울러리라는 단세포 유기체인 원발성 아메바, 코를 통해 뇌로 침입해서 두통과 발열에다 메스꺼움이 이어지고, 뇌척수막염으로 진행되면 발작, 환각을 일으키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기도 하는 병이다. 이번 허리케인은 차오른 물이 즉시 빠지지 않아 긴장감을 더했다. 물 빠지기 바쁘게 주민들이 집 안팎을 씻어내고 가재도구를 씻어 말려 허리케인 흔적을 지워나갔다. 가족이 힘 모아 몇 날 며칠 쉬지 않고 침구나 옷을 빨아 말렸으니 아메바가 번식을 멈춘 걸까. 완벽한 의료 체계를 갖췄다고 자부하지만 자급자족이 습관 된 나라에서 부족한 의약품이나 생필품은 무슨 돈으로 마련했을지.

1990년 무렵 믿었던 소련이 붕괴되고, 특별시기를 맞아 생산 설비 갖추지 못한 생필품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게다가 허리케인 피해가 잦았으니 이재민 수용할 임시 대피소를 마련하는 게 급했다.

근근이 살아가는 국민들 피신시키려고 국영 러브 모텔 뽀사다스를 임시 대피소로 바꿨다.

모텔 기능의 뽀사다스가 값싸서 자주 들락거리던 서민들은 사설 모텔 체인을 이용해야 했다. 침대, 냉장고, 에어컨을 갖춘 방 세 시간 사용료가 5달러. 그건 쿠바 근로자 평균 임금의 20%를 차지한다. 최근 들어 서민들 부담을 줄여 출산율 높이려고 국영 뽀사다스를 다시 열겠다고 한다.

가임여성 1인 당 1.6명인 출산율은 미주 대륙에서 가장 낮다. 아바나 지역 국영주택 담당자는 국영 러브 모텔 요금을 싸게 받아도 5곳의 뽀사다스 체인 수익률이 높을 거라고 점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대표적 폐단이라는 러브 모텔이 인구 감소를 막는 효과가 있을지, 15세부터 50세까지 콘돔을 무료로 나눠주는 나라에서….

지난 해 불어 닥친 이르마 피해는 올해 2월까지 이어졌다. 계란이며 바나나가 귀해 값이 엄청 뛰었다는 소문이 들렸다. 얼마 후 거짓말처럼 트럭이 바나나를 실어 나르고 승용차 뒷좌석마다 사람 대신 계란이 올라타고 있는 걸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자 나라와 등 맞댄 쿠바, 밀려드는 자본주의 물결에 맞서는 동안 생긴 상처를 낫게 하려고 티피카 품종 커피나무가 눈송이를 빼곡하게 매달고 재스민 향기를 소독약처럼 뿌려댄다. ‘너의 아픔까지 사랑해’ 라는 커피 꽃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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