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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37) 산티아고 데 쿠바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 (37) 산티아고 데 쿠바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8.03.15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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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데 쿠바 농산물시장 풍경. 그곳 사람들 성정이 날카로운 탓일까, 노지에서 기른 제철 채소들 식감조차 억세다.

 

김득진 작가

버스로 17시간 반 걸려 도착한 동쪽 끝 도시. 여러 나라서 널리 쓰는 지명이기도 한 산티아고는 매스컴에 단골로 등장해서 귀에 익숙하다.
예약한 까사에 택시로 도착한 게 새벽 네 시. 몇 시간 머물면서 하루치 숙박비 줘야 한다는 게 억울한데, 꿈나라 헤맬 시간까지 고함 질러대는 주민들이나 배기통 떼버린 듯 굉음 울려대는 낡은 차들이 원망스럽다. 버스에 오래 시달려 시래기 된 몸이지만 애를 쓸수록 잠은 멀리 달아난다. 긴 여행에 배가 홀쭉해진 것도 잠 쫓는 걸 거든다. 비상식량 꺼내 먹으려다가 식사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속 더부룩할까봐 꾹 참았더니 잠이란 단어조차 까마득히 잊힌다. 춥지 않은 날씨라지만 나무 차양막 만으로 안팎 구분하는 집 구조라니. 이런 곳에서 방음창 하나 달지 않고 숙박업 허가 받아낸 까사 주인이나 허가 내 준 쿠바 정부까지 싸잡아 욕을 퍼붓는다. 
샤워하고 간단한 식사 마친 뒤 졸음 쏟아지는 눈을 비비며 다운타운으로 걸어간다. 흐릿한 시선에 군것질거리 어깨에 멘 남자가 보인다. 이방인이 드물어서 그런 건지 나를 째려본 그가 나무 상자에 붙은 양철 조각을 망치로 세게 두드린다. 뒤따라 온 여자 행상은 입에 문 호루라기를 홱, 홱 불어댄다.
두 사람을 만난 뒤부터 가물거리던 눈이 번쩍 떠진다. 낯선 사람이 눈에 띄는 즉시 알려 긴장 늦추지 말자는 신호로 여겨져서다. 조금 더 걸으니 차선 하나를 막고서 난전이 펼쳐져 있다. 아바나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어서 몇 컷을 찍는다. 그럴 때 뒤통수에 대고 빽, 고함을 지른 남자. 반짝이는 눈빛만 봐선 정신 이상자가 아니다. 뭣 땜에 그러냐고 째려본 순간 손을 내민 그가 대뜸 돈을 내야한다고 윽박지른다.
큰 도시에서 이미 정신 무장을 하고 왔다는 걸 알 턱이 없는 그. 찌를 듯 손가락질하는 나를 본 뒤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다. 강단이 있는 것처럼 보여 여행자 주머니를 털어보겠다는 어설픈 사기. 여기 처음 도착했더라면 얼마를 빼앗겼을지 알 수 없다.
이십 분 쯤 걸으니 저만치 다운타운이 보인다. 쿠바에 횡단보도가 귀하다는 걸 알고 몇몇 사람들과 도로를 가로지른다. 무단횡단은 어쩔 수 없는 데도 차 몇 대가 연이어 경적을 울리며 미친 속도로 달려온다. 안전거리가 넉넉한데도 경적을 울리지 않으면 범칙금을 물기라도 하는지 누구 하나 빠뜨리지 않고 시커먼 매연에다 소음 보너스를 끼얹는다. 경음기 고장 난 오토바이는 마귀의 성에서나 들림직한 괴성을 내지르기도 한다.
도로를 건너가니 우체국 간판이 보인다. 여기 들른 기념으로 엽서나 부쳐야겠단 생각에 빠끔 열린 문 앞에 줄을 선다. 한참 만에 문지기가 길을 터줘 들어선 우체국, 다른 곳에선 진열대에 꽂아두고 팔던 엽서가 보이지 않는다.
창구 직원에게 물으니 다운타운 가면 있을 거라고 손가락으로 뒤에 줄 선 사람 가슴팍을 찔러댄다. 엽서와 우표를 함께 팔아 스탬프를 찍어 우체통에 넣는다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볼 수 있을 텐데. 엽서 파는 곳을 찾아 자그마한 공원을 지나니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렸다는 듯 아이스크림이 유혹한다.
거길 들어서는 데도 인내가 필요하다는 듯 서른 명 쯤이 줄 지어 있다. 내 차례가 되기 전에 목이 말라 쓰러질 것 같아 엽서 파는 가게로 걸음을 옮겨간다.  
좁은 길을 느리게 걷는데도 앞의 남자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맞은편에서 누군가를 발견한 그가 크게 소리를 지른 뒤 갈비뼈 몇 개가 부러질 정도로 껴안으며 펄쩍펄쩍 뛴다.
헤어졌던 피붙이가 몇 십 년 만에 만난 거라 믿으며 이산가족 상봉 현장을 지나친다. 카리브 해 아침 햇살도 낯선 여행자를 적으로 인식한 건지 정수리에 따가운 화살을 쏘아댄다. 내가 산티아고 온 게 매스컴에 알려졌는지 물건 파는 사람들이 죄다 뭔가를 두드리거나 소릴 질러 신호 하는 걸 빠뜨리지 않는다. 오토바이 한 대가 다가와서 귀에 대고 꽥, 소릴 지르고 달아나는 걸 보면 그 또한 누군가로부터 지령 받은 게 틀림없다. 
산티아고 데 쿠바를 너무 모르고 뛰어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한 때 쿠바 수도였고 행정 중심도시인 이 곳, 스페인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 선언 한 곳도 여기 근처 바이레다. 1953년 7. 26 혁명이 시작되었으며, 피델 카스트로를 위해 거의 모든 시민들이 거들었고, 82명의 게릴라를 태운 그란마호가 상륙한 바야모도 그리 멀지 않은 곳. 여기를 혁명의 요람이라 이름 지은 건 합당했다. 
잠시 머문 산티아고, 가게 앞 깨진 거울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 투영되는 건 피 끓는 산티아고 사람들과 부스럼 군데군데 핀 어릴 적 내 모습이다. 임시 수도였던 부산,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피난 온 사람들과 체온을 나누며 살았던 고달픈 순간부터 부마항쟁에 뛰어들어 유신독재를 종신시킨 일이 혁명 무렵의 산티아고와 겹쳐질 줄이야. 가파른 골목에 던진 주사위처럼 만들어진 피난민 수용소, 어디에 틈이 있어 드센 바람이 밀려들었는지. 얇은 옷으로 겨울 내내 웅크리고 지낸 기억이나 돈 벌러 나간 부모 대신 어린 동생들 돌보면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버텨야했던 시간은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이랑 한 치 어긋남도 없다. 소쿠리 속 보리쌀 삶은 걸로도 배가 채워지지 않아 가게에서 훔쳐 먹은 고구마 한 알이 그린 내 유년의 윗목, 그게 산티아고 데 쿠바 깨진 거울 속까지 따라올 줄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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