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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시대에 되살아나는 기와 양생의 철학 한·일 비교- 일본의 카이바라 에키켄
고령화 시대에 되살아나는 기와 양생의 철학 한·일 비교- 일본의 카이바라 에키켄
  • 박장미
  • 승인 2018.05.13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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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68)-고령화 시대에 고령자를 생각한다
카이바라 에키켄 초상
야규 마코토(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카이바라 에키켄은 누구인가?

카이바라 에키켄은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의 유학자·박물학자이다(전문의 의사가 아니었다). 이름은 아츠노부(篤信), 자는 시세이(子誠), 호는 쥬사이(柔齋)·손켄(損軒) 등이 있으나, 만년에 쓴 에키켄(益軒)이 가장 유명하다.

에키켄은 큐슈(九州) 후쿠오카번(福岡藩, 일명 쿠로다번黑田藩)의 서기였던 카이바라 칸사이(貝原寬齋)의 5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의학에도 밝았던 아버지로부터 의학을 배우고 둘째 형부터 글을 배웠다. 18세 때부터 후쿠오카번에 출사했으나, 어느 날 번주(藩主)인 쿠로다 타다유키(黑田忠之)의 노여움을 사서 면직되고, 7년 동안 낭인 생활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에 나가사키(長崎)·에도(江戶) 등지에 가서 의학과 주자학을 공부했다. 1656년에 새로운 번주 미츠유키(黑田光之)에게 사면을 받고, 다시 출사하게 됐다. 그는 의사·주자학자로 교토(京都)에서 35세 때까지 7년 동안 유학하면서, 당대의 학자들과 교류한 후에 후쿠오카로 돌아와 주자학 강의, 조선통신사의 응접, 이웃 번과의 분쟁 해결, 쿠로다 가문의 계보인 ‘쿠로다 가보(黑田家譜)’ 편찬 등 교육, 외교, 역사편찬 등 다방면으로 확약했다. 한반도와 가까운 후쿠오카에서 오랫동안 문교전책에 관여한 관계도 있어서, 그의 장서에는 퇴계·율곡 등 조선유학의 책도 많이 들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1700년, 70세가 된 에키켄은 공직을 물러가고, 에도시대 일본의 대표적인 박물학서인 ‘대화본초(大和本草)’, 교육론인 ‘화속동자훈(和俗童子訓)’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1713년에 아내 도켄(東軒)이 돌아가자 대표작인 ‘양훈생(養生訓)’을 지었다. 그리고 이듬해 1714년 8월 27일에 8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보시다시피 에키켄은 전문 의사가 아니라, 학자이자 외교관으로 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자기 눈으로 확인한 사실만을 인정하는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 대도와 백성들의 삶에 이바지하는 것을 중히 여기고, 저작의 대부분을 한문이 아니라 대중들이 알기 쉬운 카나(かな)문자로 쓴 만큼, 이용후생적(利用厚生的)인 대도를 견지한 실학자였다.



●왜, 지금 양생인가?

일흔 살을 가리켜 고희(古稀)라고 한다. “술빚이야 가는 곳마다 항상 있지마는 사람이 70 살기가 옛날부터 드물구나.”(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라는 두보(杜甫)의 ‘곡강(曲江)’ 한 구절에 유래하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술빚 걱정은 몰라도 일흔 넘게 사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 됐다. 하지만 장수를 누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느냐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의료복지 제도의 확충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양생(養生)’이라는 문제가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양생’은 ‘장자(莊子)’에도 양생주(養生主)편이 있는 만큼, 도가와 인연이 깊은 개념이었다. 그 양생주편에는 포정(庖丁; 요리사)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아주었는데, 포정이 칼질하는 솜씨에 감탄한 문혜군이 그 비결을 묻는 대목이 있다.

그 포정과 문혜군의 대화 속에 양생사상의 기본이념이 들어 있다. 즉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결코 무리하지 않는다는 점,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평소부터 도를 닦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잘 지키면 생을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생사상의 이론과 실천방법은 전국시대부터 한(漢)나라 때에 걸쳐 크게 발달하고 체계화됐다. 그것은 동양의학과 도가적 수양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일찍이 몸이 허약했던 퇴계 이황(退溪李滉)이 ‘활인신방(活人神方)’의 수련법을 써서 건강을 유지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양생의 사상과 실천은 한중일의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양생사상은 동양의학과 도가사상 속에 매몰되고, 의료 전문가나 상당한 지식인 혹은 도인이 아니면 접근하기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17~18세기 초 일본의 유학자 카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1630~1714)은 ‘황제내경(黃帝內經)’과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 그 외에 ‘난경(難經)’(周나라의 의사 편작扁鵲의 저술로 전해짐), ‘금궤요략(金櫃要略)’(후한 장중경張仲景 저), ‘갑을경(甲乙經)’(晉나라 황보밀皇甫謐 저), ‘천금방(千金方)’(唐나라 손사막孫思邈 저) 등 수많은 의학서·의술을 섭렵하고 스스로 시험·증험해보면서 유학과 어울려서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소개한 것이다.

양생·장생은 전문 의사 이외에 도가에 의해 많이 연구돼 왔다. 그래서 전문적인 의사도 아닌 유학자인 에키켄이 양생을 문제로 삼은 배경에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으나, 사회적 요인으로는 그가 살았을 때가 바로 에도시대의 평화가 오래 지속되면서, 경제적· 문화적으로도 아주 번성한 시기였다. 그래서 젊었을 때에는 자꾸 폭음폭식하고 미인을 쫓아다니면서 재미있게 살다가, 만년에 건강을 해치고 고생하거나 병들어서 일찍 죽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 상황은 오늘날의 우리들과 꽤 비슷하다.

그래서 에키켄은 스스로 쌓아놓은 연구와 실천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양생을 가르치려 한 것이다. “만사에 한때 마음에 즐거운 것은 반드시 뒤에 탈이 된다. 술과 음식을 마음대로 먹으면 즐겁겠지만, 언젠가 병이 나는 것과 같은 부류이다. 앞에 참으면 반드시 뒤의 즐겁게 된다. 뜸뜨고 뜨거움을 참으면 나중에 병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왜 양생하는가?

에키켄은 ‘양생훈(養生訓)’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의 몸은 부모가 근본이 되고, 천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천지부모의 은혜를 입고 태어나 또 길러주신 내 몸이니, 자기의 사사로운 것이 아니다. 천지가 하사(下賜)하시고 부모가 남겨주신 몸이라면, 삼가고 잘 키워서 해치고 상하지 않도록 해, 천수를 오래 보전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바로 천지부모를 섬기는 효도의 근본이다. 몸을 잃어서는 섬길 수 없다. 자기 몸 가운데 조그마한 피부, 머리털조차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 함부로 해치는 것은 불효인데, 하물며 큰 신명(身命)을 자기의 사사로운 것으로 여겨, 삼가지 않고 음식·색욕을 제멋대로 하며 원기(元氣)를 해치고 병을 얻어서, 타고난 수명을 짧게 하고 일찍 신명을 잃게 되는 것은, 천주부모에 대한 엄청난 불효이며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앞에서 보았듯이 자기 생명을 오래 보전하는 것을 중히 여기는 ‘양생’은 유가보다 오히려 도가적인 가치관이었다. 그런데 에키켄은 양생이 천지부모를 섬기는 ‘효도의 근본’이라고 규정하고, 윤리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것은 획기적인 생각이었다.

그가 효도의 근본으로서의 양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있었던 것 같다. 에키켄은 39세 나이로 상당히 늦게 결혼했다. 아내는 나이 17세인 아키즈키번(秋月藩)의 무사 에자키 히로미치(江崎廣道)의 딸 하츠였다. 하츠는 토켄(東軒)이라는 호도 가지는 정도로 서예에 능한 여성문인이었고, 남편의 학문·저술을 많이 도왔다. 에키켄은 딸과 같이 나이 차이가 있는 아내와 함께 자주 여행에 다녔고, 집에서는 함께 악기를 타고 시를 읊으며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둘 다 원래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의학과 건강법을 많이 연구하고 시험해 보기도 했다. 에키켄이 84세 때 토켄이 자기보다 먼저 죽자, 학문적인 동지라고 할 수 있는 아내를 잃은 그는, 오랫동안 둘이서 연구하고 시험해 온 성과를 세상 사람에게 널리 알려서 세상 사람을 이롭게 하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양생론’이라는 책이다. 이것은 에키켄 양생론의 집대성이자, 에키켄과 토켄 부부가 상부상조한 성과인 것이다.



●양생의 방법

(1) 하늘이 나에게 준 원기를 잘 보전하라

‘양생훈’에서 에키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양생의 방법[術]은 우선 자기 몸을 해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몸을 해치는 것이란, 내욕(內慾)과 외사(外邪)이다.” 내욕이란 음식, 호색, 수면, 말을 함부로 하는 욕심과, 기뻐함·화냄·근심·생각·슬픔·두려움·놀람의 일곱 감정(七情)을 말한다. 외사(外邪)는 하늘의 네 가지 기운(四氣)이니, 바람(風)·추위(寒)·더위(暑)·습기(濕)를 말한다.

“내욕을 참고 줄여서 외사를 경계하고 막음으로써 원기를 해치지 않으면 병이 나지 않고, 천수를 오래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듯이, 욕심과 감정을 절제하고, 순하지 않는 기운을 피하는 것으로, 원기 즉 사람이 타고난 생명의 기운을 지키는 것이 양생의 요체인 것이다. “뭇사람이 타고난 수명은 대부분 길다. 수명이 짧게 타고난 사람은 드물다” “사람의 목숨은 자기에게 있지 하늘에 있지 않다고 노자(老子)는 말했다. 사람의 목숨은 본디 하늘에서 받은 것이지만, 양생을 잘하면 길어지고 양생하지 않으면 짧아진다. 그렇다면 수명을 길게 하는 것도 짧게 하는 것도 자기 마음에 달려 있다. 몸이 씩씩하고 장수로 타고난 사람도, 양생의 술(術)이 없으면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다. 허약해서 수명이 짧다고 보인 사람도 잘 보호하고 기르면 목숨이 길어진다. 이것은 모두 사람이 하는 짓이니 하늘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2) 약·침·뜸은 어쩔 수 없이 쓰는 하책이다

하지만 에키켄은 “무릇 약(藥)·침(鍼)·뜸(灸)은 어쩔 수 없이 쓰는 하책(下策)이다.” “사람의 몸을 보전하려면 양생의 도를 믿어야 하고, 침·뜸과 약의 힘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절대로 쓰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도 잘못 쓰거나 체질에 안 맞으면 도리어 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차라리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이 양생의 도에 맞는다는 것이다. 그가 권장하는 방법은 적당한 운동이다. “신체는 날마다 조금씩 힘써 움직여야 한다. 오래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매일 식사 후 반드시 마당을 수백 걸음 조용히 걸어라. 비가 내리면 실내를 빈번하게 천천히 걸어라. 이와 같이 아침저녁에 운동하면 침·뜸을 쓰지 않아도 음식·기혈(氣血)이 막기지 않고 병도 없다. 침·뜸이 없으면 심한 열병이 나서 몸이 아픈 것을 참아야 될 지경이 이르기보다, 차라리 이렇게 하면 병들지 않고 안락할 것이다.”

(3) ‘내적’과 ‘외적’에는 방비책을 달리하라

에키켄은 “대개 사람의 몸은 약하고 여려서 덧없는 것은 마치 바람 앞의 등불이 꺼지기 쉬운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람의 몸과 마음을 공격하는 적은 크게 두 가자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과식·호색·졸림 등의 욕구, 혹은 화냄, 슬픔, 근심 등의 감정으로 모두 안에서 공격해오는 ‘내적(內敵)’이다. 하나는 바람, 추위, 더워 등 바깥에서 몸을 상하는 외적(外敵)이다. 에키켄은 ‘내적’에 대해서는 마치 적과 접전하듯 단단히 이겨내야 하지만, ‘외적’에 대해서는 방위(防衛)하는 것과 같이 대책을 단단히 세워서 적이 다가오지 않도록 막되, 적과 오래 붙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내적에 대해서는 다기지고 씩씩하게 이겨내라. 외적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고 빨리 퇴각가라. 다기진 것은 안 좋다.”

에키켄은 ‘내적’과 ‘외적’의 구별을 세워서 서로 대해 다른 대응책을 써야 된다고 지적함으로써, 주로 유가적인 도덕수양의 개념으로 생각되던 지나친 욕심·감정을 극복하는 것과, 의학적인 관점에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강조된 바람·추위·더위 등을 막고 피하는 것을 ‘양생’의 개념으로 결부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비유는 사무라이사회의 에도시대 일본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쉬웠을 것이다.

(4) 줄(縮小)인 즐거움을 즐거워하라

에키켄은 “성인(聖人)께서 자주 즐거움을 말씀하셨다. (……) 즐거움은 사람이 타고난 천지의 생리(生理)이다. 즐거워하지 않고 천지의 도리에 어겨서는 안 된다. 항상 도로써 욕심을 억제하고, 즐거움을 잃지 말라. 즐거움을 잃지 않음은 양생의 근본이다.” 라고 강조했다. ‘즐거움’과 욕심을 억제하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서로 모순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말한 뜻은 무엇이든 지나친 것은 안 좋다는 것이고 억제하다고 해도 완전한 금욕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적은 것을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양생의 요결(要訣)이 하나 있다. 요결이란 간요한 구전이다. 양생에 뜻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알아서 지켜야 된다. 그 요결은 ‘소(少)’의 한 글자이다. ‘소’란 만사에 모두 적게 하고 많게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통틀어서 단적으로 말하면 욕(慾)을 줄이는 것이다. 욕이란 이목구체(耳目口體)을 만족시키는 탐욕하는 것을 말한다. 주식(酒食)을 좋아하고 호색을 좋아하는 등의 부류이다. 대개 많은 탐욕이 쌓이게 되면 몸을 상하고 목숨을 잃게 된다. 탐욕을 줄이면 몸을 키우고 목숨을 길게 할 수 있다. (……) 한때에 기를 너무 많이 쓰고 마음을 너무 많이 쓰면 원기가 줄고 병이 나서 목숨이 짧아진다. 사물마다 (신경을) 많이 쓰고 널리 쓰지 말아야 한다. 덜 쓰고 좁게 쓰는 것이 좋다.” “양생의 술은 먼저 심법(心法)을 잘 삼가 지키지 않으면 행하기 어렵다. 마음을 고요하고 요란스럽지 않게 하고 분노를 참고 욕심을 줄이며 늘 즐거워해서 근심하지 말아야 된다. 이것이 양생의 술이자 마음을 지키는 도이다. 심법을 지키지 않으면 양생의 술이 행해지지 않다. 그러므로 마음을 키우고 몸을 키우는 공부는 둘이 아니다. 한 술이다.” 요컨대 평정한 마음을 지키고 욕심을 줄여서 항상 즐길 줄 아는 마음공부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양생의 술인 것이다.



●최한기와 에키켄—즐거운 늙음

그런데 필자에게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나라도 시대도 다르고 어떤 영향관계도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에키켄이 최한기(崔漢綺)는 상통하는 점이 많다는 사실이다.

에키켄은 (당시 동아시아의 학자가 대부분 그렇듯이) 주자학자였지만, 만년에 쓴 ‘대의록(大疑錄)’이라는 논저에서 정주(程朱)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입장을 밝혔다. 이기이원론과 결별한 그는 도덕의 근거를 더 이상 초월적인 리(理)에게 구할 수 없었다. 대신 천지의 기운이 만물을 낳고 길러주는 ‘은(恩)’에 보답한다는 ‘효(孝)’를 논리를 윤리적 기반으로 삼았다.

앞에서 보다시피 에키켄은 양생을 천지부모에 대한 효도의 근본이라고 규정했다. 이것은 최한기도 마찬가지였다. “무릇 효는 어버이를 섬김을 근본으로 삼고, 오륜(五倫)에 미치고 만사에 달하며, 과불급(過不及)의 한계와 절제는 천인운화(天人運化)에게 기준이 있다. 이것을 받들어 따라서(承順) 효도(孝道)를 베풀면, 가히 천하에 통할 수 있고 유명(幽明)의 틈이 거의 없어진다.” “운화(運化)를 받들어 따름은 (……) 효를 백가지 덕행(百行)의 으뜸으로 삼는다.” (‘기학氣學’) “효의 작고 일반적인 것은 어버이를 봉양함이요, 크고 귀한 것은 신기(神氣)를 섬김이다.” (‘명남루수록明南樓隨錄’) 그리고 그 천지부모에서 받은 몸과 마음을 중요시한 점, 기존의 권위 있는 텍스트를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과 거짓을 가리는 실증을 중요시한 점에서도 둘은 서로 상통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젊어서부터 나이가 들면서 경험과 견식이 깊어진다고 하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점이다.

에키켄은 “인생 50세에 이르지 않으면, 혈기(血氣)가 안정되지 않고 지혜도 열리지 않으며, 옛것과 지금 것을 잘 모르고 세상의 변화에 익숙하지 않고 행하는 데에도 뉘우치는 것이 많다. 인생의 도리도 즐거움도 아직 모른다. 50이 되지 않고 죽는 것을 요(夭; 젊어서 죽음)이라 한다. 역시 불행단명(不幸短命)이라고 해야 한다. 오래 살면 즐거움도 많고 얻는 것도 많다. 날마다 몰랐던 일을 알게 되고, 달마다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학문이 장족의 진보를 이루는 것과 지식에 밝게 통달하는 것도, 오래 살지 않으면 얻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양생의 술을 행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수명을 유지하고, 50세를 넘어서 되도록 더욱 오래 살아서, 60세 이상의 수역(壽域)에 이르러야 될 것이다. (……) 하지만 기질이 거칠고 욕심을 제멋대로 하고 참치 않고 삼가지 않는 사람은 오래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최한기도 역시 50~60세 이후에는 견문도 계왕개래(繼往開來)의 학문과 실무 경험도 쌓여서 승순(承順)의 도가 점차 넓고 원대해지고, 70세 이후에는 몸이 운화에 승순하면 바야흐로 강장지도(康莊之道)를 열게 된다고 말했다.

한일의 옛날 석학이 둘 다 나이가 많을수록 공부와 경험이 축적돼서 도가 밝아지게 됐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은 무언가 고령화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희망의 빛으로 비추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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