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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 한·일 국제학술회의 발제 - 일본인의 사생관 Ⅰ
동양포럼 / 한·일 국제학술회의 발제 - 일본인의 사생관 Ⅰ
  • 박장미
  • 승인 2018.08.05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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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란(親鸞)의 사상을 중심으로-
기타지마 기신(北島義信) 욧카이치대학(四日市大学) 명예교수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들어가며

현대 일본에서는‘삶’과 ‘죽음’의 분리가 강하게 보이면서, 죽음은 공포의 대상으로 터부시되고 있고 삶만이 중시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죽음은 가정에서 체험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비일상적인 장소에서만 체험되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다. 장례식의 경우에도 ‘장례식장’에서 행해지는 것이 주류가 되고 있고 지역공동체가 집단적으로 관여하여 죽음을 공유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일상적인 생활의 장에서 ‘죽음’을 바라봄으로써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방향은 단절되고 말았다.

이러한 현실은 근래에 특히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현저해지고 있고 특히 장례(葬禮)의 경우에는 극히 좁은 친척에 한정된 ‘가족장’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장례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변화는 풍부한 문화의 다양성을 부정하는‘세계화’의 침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장례에서 죽음이라는 현실의 수용과, 죽음을 계기로 한 삶에 대한‘각성’이 생겨날 수 있을까?

나는 승려로서, 그리고 지역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전통적인 장례에 오랫동안 관여해 왔다. 장례집행에서 유골수습에 이르는 일련의 의식의 의미는 삶과 죽음의 비분리성, 죽음을 통해 삶을 생각하는 것이 개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가 관여하는 공동체의 구성원과의 상호관계성 하에 심화된다는 점에 있다. 풍부한 인간성을 낳는 힘, 인간적 감동은 장례가 인연이 되어 생겨나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죽음과 삶의 ‘비분리성’, 죽음을 통해 인간적인 기쁨에 넘친 삶,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역공동체’의 힘, 그 기반에 있는 종교사상에 대해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이론적으로도 밝히고자 한다.



1. 공동체와 장례

내가 생활하고 있는 미에현(三重県) 욧카이치시(四日市市) 북부(인구의 약 80%가 정토진종 신자)에서는 1960년대 이전까지는 가장 작은 공동체(20~30호)의 모든 가정이 가입한 ‘무죠코(無常講)’라는 조직이 장례의 모든 것을 집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장례회사는 장례집행에는 관여하지 않고 관과 같이 장례에 필요한 것을 판매할 뿐, 오늘날 장례회사가 대행하고 있는 모든 것을 무죠코가 맡아서 하고 있었다. 장례 전날 밤에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서 아침까지‘타력염불찬가’인정신염불게(正信念佛偈)나 염불정신게(念佛正信偈)를 암송한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전원이 게송을 암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정토진정 사원의 일요학교에서 연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례식 당일은 승려가 죽은 자의 자택에서 출관근행(出棺勤行)을 하고, 열을 지어 화장터로 향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화장터에서는 도사(導師)를 비롯하여 몇 명의 승려가 장례식근행(葬式勤行)을 하고(‘正信念佛偈’암송), 참배자는 분향을 한다. 다 끝난 후에는 화장을 한다. 화장터는‘삼매(三味)’라고 불리는데, 주로 강가나 들판에 마련되어 있다(‘삼매’란깨달음에 도달하기 직전의 견고하고 동요되지 않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무죠코’의 구성원의 남성 집단은 가까운 사람의 시체를 화장하는 모든 일을 하고, 다음날 유가족이 유골의 일부만을 수습해 간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정토왕생’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부정하고 더럽다는 사상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깨끗하게 하는 ‘정화소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화장터에서 돌아오면 전원이 ‘히지(非時)’라고 불리는 회식을 한다. 식사는 고춧가루로 새빨개진 두부국과 곤약과 밥이다.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슬픔의 세계에 빠져있는 것은 생사(미혹)를 뛰어넘는 것이 아직 체현되지 않았다는 것, 가장 소중한 신앙심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의 표명으로, 허용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고춧가루’가 대량으로 들어간 국이나 곤약을 먹으면, 너무나 매워서 눈물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눈물이 나와도 그것은 불신심(不信心)에 의한 슬픔 때문이 아니라, 고춧가루 때문이라는 변명이 성립한다. 이 관습은 미에현 북부에서 호쿠리쿠(北陸) 지역에 걸쳐 있는 정토진종 지대에는 지금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죽을 시기가 다가온 사람들(특히 노인)은 아직 일정한 체력과 지력이 남아있는 동안에, 자신이 속해 있는 절(手次寺, 테쯔기데라)의 주지승에게 임종설교를 의뢰한다. 설교가 끝난 후에 본인은 다가올 자신의 장례에 대비해서 가족 구성원에게 창호지 교체나 청소를 의뢰한다. 그 후 비교적 짧은 시간이 지난 후에 운명을 맞이한다. 아마도 이것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까지 보아온 것을 직접 실행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가족, 친척, 공동체 구성원뿐만 아니라 승려에게 있어서도 삶의 의미를 함께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반드시 찾아온다. 인간은 결코 고립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무한한 연대 속에서‘살아가고’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비분리성은 죽음의 사물화(私物化)를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은 사람의 장례는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무한한 연대를 전제로 하는 형태로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장례가 지역공동체의 활동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생활방식에 따른 것이다. 종교가 정착되어 있는 지역공동체를 전제로 한 장례는 죽음의 공유화(共有化)에 의한 슬픔의 승화를 가져오고, 삶의 의미를 심화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나아가서 장례식에 드는 경제적 부담을 경감시켜, 가난한 자도 동등하게 장례식을 할 수 있게 된다.‘무라하치부(村八分)’라고 하는 공동체의 제재에 있어서도, 장례와 화재는 제외항목으로 되어 있다. 이 두 가지는‘개인’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것으로, 타자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원조로 인해 대상자는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구제되는 것이다.



2. 신란의 생사관

장례라는 의식은 죽음을 통해 삶을 체험적으로 생각하는 여정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 근저에는 죽음과 삶의 상호관련성, 죽음과 삶을 넘어서 진실을 향한다는 이론이 존재하고 있다. 이 이론에 대해서 일본에서 500년 이상 동안 민중 속에 정착해 있는 정토진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정토진종은 13세기 가마쿠라신불교(鎌倉新佛敎)의 개조(開祖)의 한 사람인 신란에 의해 창건되어, 15세기에 렌뇨(蓮如)에 의해 사회적으로 커다란 세력을 지니게 되었다. 현재에도 정토진종은 일본 최대의 불교교단이다. 죽음과 삶의 관계에 대해 불교에서는 ‘生死’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 말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samsara(삼사라)’의 번역어로, “인간이 윤회하여 고뇌의 세계를 전전한다”는 뜻이다. 고뇌의 세계에서의 유전(流轉)을 벗어나는 길로서 정토교는 죽음을‘왕생(往生)’으로 이해한다. 왕생이란 “정토세계(진실세계)에 가서(往) 태어난다(生)”는 뜻이다.

신란은 왕생의 의미를 현세에서 자기중심주의적 가치관이 붕괴되고 소멸되어, 부처와 함께 사는 가치관이 생겨남으로써 마음은 정토에 있으면서 지금을 사는 것으로 이해하고, 인간이 육체적으로‘운명’할 때에 번뇌는 소멸되어, 진실정토에 부처가 되어 태어난다고 이해하고 있다.

이처럼 신란에게서 죽음은 정토교의 왕생이라는 시점에서 이해되어, 첫째는‘자기중심주의적 가치관’의 붕괴소멸과 부처와 함께 사는 새로운 가치관의 탄생의 기쁨을 의미하고, 둘째는 진실의 각성을 얻은 인간이 운명을 맞이했을 때 육체와 일체화된 번뇌가 죽음과 함께 소멸하여 완전한 부처가 되어 정토에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죽음과 삶이 하나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사생관은 외부성으로서의 타자인 아미타불의 영성의 작용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용을 받는 것은‘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다. 이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해 삶으로써 삶과 죽음은 일체화되고, 죽음의 불안과 공포는 극복되는 것이다.



마무리

일본인의 사생관을 불교 이전의 진기신앙(神祇信仰)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시도도 행해지고 있다(神祇는 하늘의 신(天神)과 땅의 신(地祇)을 말한다). 그것 자체에는 일정한 의의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헤이안시대(平安時代)와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를 통해서 진기신앙은 체계적인 불교에 의해 흡수되고, 그런 형태의 일본불교가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를 거쳐 500년간에 걸쳐 일본인의 사생관의 주류를 형성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세계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격차사회의 현실은 인간의 풍부한 상생문화를 파괴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 중의 하나가 장례문화의 변모이다. 장례문화는 사생관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토착적인 장례문화에는 생사일여(生死一如), 생사를 넘어서는 영성의 작용, 공동체와 인간의 존재방식과 같이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는‘토착적 근대’의 길을 찾을 수 있다. 500년간에 걸쳐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축적되어온 일본의 불교적 사생관에는 미혹으로서의 생사를 넘어서는 지혜가 존재한다. 그 지혜에는 일본이라는 고유성을 통해서 동아시아와도 통하는 보편성이 존재한다. 그 지혜를 현대의 과제로 연결시킬 때 ‘새로운 근대’의 길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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