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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청주의 4.19와 보훈
특별기고/ 청주의 4.19와 보훈
  • 유성종
  • 승인 2018.10.10 2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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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종 전 꽃동네대 총장
유성종 전 꽃동네대 총장

국가보훈처에서는 몇 년 만에, 4.19 관련 국가보훈 대상자를 찾는다고 공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주 다행으로 여겼다.

국가보훈(國家報勳)은 국가에 공훈(功勳)이 있는 인물이나 단체를 찾고 기리어 표양하고 보상하는 국가(國家) 기능(機能)으로서, 정치정의(政治正義)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방식이기 때문이다.

공훈자 본인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신청(申請)이나 추구(追求)가 없더라도, 주변에 추천자가 없더라도, 누락이나 탈락자가 있어서는 공평하지 않다고 아쉽게 여겨왔었다.

내가 청주상업고등학교 청년교사로서 겪은 4.19는 좀 다른 것이 있다.

우선 청주의 4.19의거는 서울의 고려대학교가 4.18에 했다고 자랑하는 것같이, 지방의 학교로서 드물게 4.18에 한 의거했다.

그날 오후에 청주상고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을 때, 시간을 맞추어 약속대로 청주공고 학생이 청주상고에 달려왔다. 충북경찰과 청주경찰은 청주공고 학생의 뒤를 따라온 것이다.

그리고 문학동 경찰국장이 단상으로 올라가 지휘학생의 마이크를 쥐고 회유코자 했으나, 몇 마디 말도 안했을 때, 청주공고 학생이 문 국장에게 돌팔매질을 시작하고, 경찰국장은 돌을 맞고 피하여 단하로 내려왔다. 이내 두 학교의 학생들은 2KM의 거리인 도심(都心)과 도청(道廳)을 향하여 노도와 같이 뛰어 나갔다.

그들이 거리에서 외친 구호는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독재정권 물러나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도청에 다다르기 전에 경찰병력은 도청 밖을 둘러싸고 도심으로 통하는 길을 막아 포진하고 있었고, 시위대는 몇 번인가 진입을 꾀하였으나 순진한 고교생들이라 쉽게 밀리어, 교동(校東)국민하교 뒷길을 더듬어, 청주상고의 정동(正東)쪽에 있는 우암산 산마루로 피하여 이동했다.

그것을 확인한 도경 기동대는 기관총을 장착한 스리쿼터 몇 대로 청주상고 교정에 들어와, 운동장 끝에서 본관을 향하여 배치하고, 360M 높이의 산마루에서 학생들이 외쳐대는 가운데, 도경 김상기 사찰과장이 메가폰으로 독이 오른 소리를 질렀다. “교장, 나오시오! 선생들, 나오시오!” 이와 같은 수모(受侮)는 나의 교직 50년에 유일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대치 상황은 우암산의 해질녘까지 계속되었다.

여기에서, 청주상고 4.18의거는 데모가 없던 청주에서 일어난 처음이고 비밀되고 돌발적인 사건이라 급거 출동한 신문도 없었고(있어도 통제되었을 것), 또한 전교직원이 경찰작전 속에 포위되고 묶여 있어서 사진 한 장도 남겨지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경찰의 견고한 포위 속에 있던 청주상고 시위대에게, 의거 참가의 실증적 자료를 요구한다면, 가장 먼저 의거를 일으킨 그들 선구자들의 표양은 할 수 없다는 불공평한 것이 된다.

도경 사찰과장의 청주상고에 대한 독기 오른 외침에는 복합된 이유가 있었다. 당시의 청주상고 고 동수 교장은 기독교 장로로서 도(道) 선거위원회 위원이었지만, 양심적인 교육자여서 어용(御用)위원이 아니었다. 선거위원회에 다녀온 이튿날 직원회에서 ‘3.15 선거는 부정선거였다.’고 언명했고, 앞으로 일어날 사태를 염려했었다.

그리고 당시의 청주상고 교사들도 사립학교 교원의 특성답게 자유불기(自由不羈)의 기풍이 있어서, 3.15 부정선거에서 3인조를 하라니까, 됩더 야당을 찍는 3인조를 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4.18 다음날에는 전교생을 강당에 모아, 그 당시로서는 새로운 말인 ‘데모’에 대한 특강을 열고, 강사인 나에게는 ‘데모의 의미와 그 방법으로써의 정치성과 민주성, 주체성과 자발성, 그리고 자유와 평등’을 설명하게 한 열린 학교였다.

이윽고 이 승만 대통령이 4월 26일에 하야하자, 제어 없는 시위를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청주의 모 고교는 도청에 가서 ‘도지사 물러가라.’고 요구했고, 모 고교는 청주경찰서에 불을 지르겠다고 했을 때, 언론의 자유를 회복한 신문은 그제야 그것들을 대서특필했었다.

그때 청주상고는 이미 의거후의 사회혼란을 우려하고 대비하여, 자경(自警)대를 조직하고 시내 요지의 질서유지와 불사른다고 위협하는 경찰서를 멀리서 지켰다. 그것을 현장에서 지휘하고 지켜보던 나의 눈에 비친 권력(경찰을 비롯한 고위직들)의 모습은 참으로 초라하고 불쌍하다는 인상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마도, 청주상고와 같이 4.18 의거로써 도내 학생의거의 선구가 되고, 스스로 자위대까지 만들어 시민에게 봉사함으로써, 학생의거의 숭고함과 순수성을 지키고, 청주시를 폭력적 소란에서 구하도록 철저히 교육한 학교는 드물 것이다. 청주상고의 교직원은 고 동수 교장과 함께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어 밖으로 자랑하지는 안했으나, 교육자의 임무로 자임하고 자부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번에, 담임했던 3학년 6반의 하나, 김 모군이 국가보훈처에 출원하겠다고 찾아왔다. 학도호국단의 체육부장인 그는 모든 대내외 행사나 사건의 표면에서 행동대장 선봉장이었던 시절의 일이라, 그가 누락되었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추천서를 쓰고 서명하면서 나도 그의 동기생들도 무심했음을 반성했는데, 또 하나 걸리는 이름이 있다.

반장이었던 윤 청남(尹淸男)군, 담임선생인 나까지 속이고 의거를 준비한 핵심이고, 당일은 동원을 책임지고 뛰어다니다가 가장 먼저 구속되었었는데, 그 사람이 일찍 작고하여 출원하지 않았다고, 보훈대상에서 제외되고 만다면 얼마나 딱하고 아쉬운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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