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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 서서 / 조철호가 만난 사람 - 김성희 중국 연변대 교수
이 길에 서서 / 조철호가 만난 사람 - 김성희 중국 연변대 교수
  • 동양일보
  • 승인 2018.10.1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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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교재 만들어 한글 익힌 중국 제자만 2000명 넘지요”
연변 찾는 한국방문단 위해 해마다 불철주야 봉사… 연길의 대모代母 역할
정확한 표준어 발음으로 ‘무대 장악’… 연변포석문학제의 단골 진행자
사진/ 조철호
사진/ 조철호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옌지연길, 투먼도문, 둔화돈화, 룽징용정, 훈춘훈춘, 허룽화룡 등 6개의 시와 안투안도, 왕칭왕청 등 2개의 현(군)으로 구성 돼 있다. 조선말기 조선인들이 건너가서 이룬 지역으로, ‘연변’ 또는 조선족 집거集居지역이라 칭한다. 이 지역인구의 30%정도가 우리 동포들이기 때문이다. 연변의 중심도시는 옌지연길시延吉市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충북의 진천군과 한국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 연변방문단들이 매년 연길을 찾는다. 적게는 10여명에서 많게는 30명에 이르는 방문단들은 연변포석회(회장 이임원 시인)가 펼치는 ‘연변포석조명희문학제’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 행사는 매년 연변대예술대 공연장이 나 연변문화예술연구소 공연장에서 1시간 30분간 펼쳐진다. 충북 진천 출신으로 한국 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포석抱石조명희趙明熙 (1894~1938) 선생을 기리는 행사여서, 포석 의 생애와 그의 작품을 낭송하고 참석한 문인 들과 관련 인사들의 소개와 무용과 악기연주 등 공연이 다채롭다. 이 행사엔 또 빠짐없이 포 석청소년문학상 시상식이 함께 어울려 진다. 성인들과 청소년들이 함께 출연하는 이 같은 행사는 자칫하면 산만해지거나 지루해질 수 있어 주최 측은 언제나 출연자들의 무대 점유 시간 등을 꼼꼼하게 체크하여 예정시간을 넘 기지 않으려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 해마다 열리는 이 연변포석조명희문학제를 보고 나면, 포석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한국과 중국동포간의 우정이 돈독해짐에 대해, 그리 고 무대흐름과 행사 내용에 대해 ‘매우 감동적 이었다’는 평가에 입을 모은다. 20년 가까이 이 행사의 개막 프로그램을 짜 고, 직접 마이크를 잡고 개막 인사 멘트부터 마 무리 인사까지를 총괄하는 김성희 교수(52)를 만나기 위해 그가 재직하는 중국 연변대학을 찾은 건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끝자락이 었다. 중국에서도 명문대에 속하는 연변대는 육중 한 정문의 양 옆으로는 밝은 분위기를 연출한 석조 대형 부조상浮彫像이 눈길을 잡고 있지만, 택시는 물론 관계자들 이외 차량의 출입을 강 력하게 통제하는 정문 경비의 우쭐댐이 한국 방문객의 눈에 곱지 않게 보인다. 김 교수는 멜빵을 한 가방을 멘 모습으로 약 속시간에 나타났다. 반가워하는 그 표정이나 달려오는 모습이 교수라기보다는 발랄한 한 여대생만 같았다.

-방학인데도 학교에 나와요?

“학교 근처에 집이 있는데다 학교에 나와서 할 일이 늘 있어요. 오늘은 소속과의 학생 상담 이 있어서 나왔어요.”

-김 교수의 소속이 길림성 연변대학 조선한국학학원 조선어학부 부교수더군요. 한국에 서는 종합대학 밑으로 단과대학이 있고 그 밑 에 학과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단과대학의 개 념으로 학원이란 말을 쓰나봅니다.

“한국 분들이 무슨 학원이란 말이 마치 대학 의 부속 사설학원같이 느껴지나 봐요. 많이들 혼란스러워 해요.”

-고향과 어릴 때의 꿈은?

“연변자치주 투먼-도문시圖門市에서 출생했 고 소학교와 중학교를 그 곳에서 나왔어요. 학 생 때의 꿈은 판사였어요. 그런데 연변대학에 서 주최한 백일장에서 최고상을 타다보니 연 변대 조선어학부에 입학하면 장학금을 받게 돼 있어서 인생의 진로방향이 바뀌었지요.”

-‘장학금에 눈이 어두워서’ 여판사의 꿈 을 접고 어문학부 쪽으로 돌아섰다는 말이지 요?(웃음) 후회는 없는지요.

“대학에 들어오면서 약간의 갈등은 있었지 만, 조선어문학계의 석사, 박사과정을 밟으면 서는 공부에 쫒기느라 여념이 없었어요.”

-박사학위는 어디서 어떤 논문으로 했는지요. 발표된 논문은 많은지요.

“석사까지는 연변대에서 했고, 박사학위는 평양에 있는 조선사회과학원 어문학부에서 받 았어요.

-책을 여러 권 만들었다고 들었는데요.

“‘한국어 기초문법’은 중국어로 만든 것이고, 한족학생들로 구성돼 있는 한국어학과 학생들 의 교재로 ‘한국어 읽고, 말하기’와 ‘기초 한국 어 회화’ 등이 있어요. ‘조선어 의성의태어 연 구’는 한국어로 만든 것이고요. 한국어를 공부 하는 중국(한족)학생들을 위한 교재는 2010년 출간한 이후 지금가지 유용하게 쓰이고 있어요.”

-부군이 국어학계에서는 이름 높은 연변대 김광수 교수라면서요?

“학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술꾼으로는 연 변에서는 유명하지요.(웃음)아이들은 20대 중 반의 아들과 딸이 있어요.”

-많은 책을 읽었을 텐데 특히 기억에 남는 책이거나 존경하는 분이라면…

“감명을 준 책이라면 학생 때 읽었던 ‘나뽈레 옹 전’과 근래에 읽었던 ‘태백산맥’이었어요. 존 경하는 분이라면 김호웅 (연변대. 조선어문학 전공) 교수님을 자랑하고 싶어요. 학술적으로 도 공적이 많으시지만, 열정이 넘치시고 인성 이 부드러우신 분이어서 후학들의 본보기가 되시지요.”

-한국방문도 비교적 많이 한 편이지요? 느 낌을 정리한다면…

“한국 방문은 열 차례쯤 돼요. 첫 방문이 동 양일보의 초청이였는데 그 첫 방문이 일생을 통해 매우 큰 파장을 일으키게 했어요. 나의 모 국이라면 중국이지만, 나의 조국이라면 조선 뿐이 아니라 대한민국도 조국일 것인데 한반 도의 남과 북이 이토록 다른 세상으로 현대를 살아가는가 라는 의구심이 끝없이 일었지요. 대한민국은 참으로 따뜻하고 행복감을 주는 포근한 존재였어요. 사람들마다 예의가 바르 고 말씨가 다정다감하여 오래 사귄 것 같은 감 정이 쉽게 들었어요. 음식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맛이 있었어요. 음식이라면 세계적으로 중국을 꼽는다지만 저에게는 한국의 음식들 이 최고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어요. 더구나 동양일보가 한 지역 일간신문인데도 순회명사시 낭송회를 통해 인간성의 회복과 삶의 질을 높 여 주려고 부단하게 힘을 쏟는 것을 보면서 한 국 언론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지요. 인문적인 국민 계도를 위해 언론사가 앞장을 서는 것이 내게는 낯설었지만 이 곳 에서는 자 연스럽고 유익한 사회현상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사회주의 체제하에서의 언론 역할과는 사 뭇 다른 구조와 사업성과를 경험 했겠군요.

“그 행사에 참여하면서 처음부터 놀라웠던 사실은 지역의 각 기관장들이 자기소임처럼 시낭송에 정성을 쏟는 것이었지요. 군인과 경 찰은 멋진 제복을 입고 나와서 겸손하게 시낭 송을 하고 들어가는 모습들이 중국에서 온 우 리들을 놀라게 했지요. 또 청중들이 일반인들 인 경우도 있지만 중. 고교생인 경우도 많았는 데 어떻게 끝까지 정숙한 관람태도를 유지하 고 있었는지 믿기지 않았어요. 활달 분망한 청 소년들이 1시간 이상을 정숙하게 앉아 있다는 것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비교적 엄격하다는 중국사회에서도 보기 힘든 교육 성과지요.”

-그 행사를 처음 시작 했을 때는 여기도 힘 들었어요. 해를 거듭하면서 대중문화와 고급 문화의 차이, 그에 따른 관람태도 등에 대한 현 장 교육과 교사들의 끊임없는 가르침이 ‘관중 의 자격’에 대한 깨우침을 갖게 했지요.

“나를 비롯해 한국방문을 하게 된 조선족 방 문단 모두는 순회명사시낭송 행사를 보면서 한국이 먹고 사는 것을 떠나 어떻게 인간답게 살고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추구하는 시대에 접어 들었다는 사실을 체감했지요.”

-포석 선생의 고향이 충북 진천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지요.

“고급중학교 국어시간에 선생의 소설 ‘낙동 강’을 배우면서 이미 1920년대에 민족 감정을 대변하는 문학작품이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 만, 선생의 고향이거나 문학적 가치며 후손들 에 관한 상식은 한국방문을 계기로 처음 알았 어요. 평양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전공과 좀 길이 다르긴 했어도 남쪽 출신들의 문학 예술 인들에 관한 신상에 관해선 들을 수가 없었어 요. 중국에서도 충북 옥천 출신의 정지용 시인 을 알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지요. 옥천 군이나 문화원이 연길에 와서 ‘연변지용제’라 는 행사를 거듭하면서 비로소 한국의 현대 시 인 중 대표 급 시인인 것을 알았지요. 장편소설 ‘임꺽정전’을 쓴 홍명희 선생의 고향도 충북 괴 산이라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그러니 까 중국동포들에겐 해방 후 줄곧 국어교과서 에 올라 배우게 된 ‘낙동강’의 작가 조명희 선생 만 학습 했지요.”

-포석 선생이 시인이었다는 사실은 알았나요?

“모르고 있었어요. 근래 들어서 포석 선생이 이미 1920년대에 처음으로 ‘김영일의 사死’라 는 최초의 희곡집을 냈고, 시집 ‘봄 잔디밭 위 에’를 묶어 내 한국 근현대문학사에서는 최초 의 창작시집을 낸 선각적인 시인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들 조선족 동포들은 시인이라 면 연변 용정 출신인 윤동주 시인만 일제에 저 항하는 시를 쓴 시인으로만 알고 있었어요.”

-연변포석문학제에 참석해 행사를 지켜본 한국방문단들은 행사시간 1시간 30분간의 무 대 연출을 총괄진행 하는 김성희 교수에 관해 입을 모아 좋은 평가들을 하는 것을 아는지요.

“그 행사의 단골 진행자가 된 일이야말로 내 게는 잊을 수 없는 행운이자 포석 선생에 가까 이 가는 길이 되었지요. 시나리오부터 사회까 지를 맡아서 시종 무대에 서 있어야 하는데 줄 곧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지요. 특히나 포석 청소년문학상 시상식이 함께 치러지는 무대여 서 조금만 실수를 해도 수상자의 동선動線이 엉 키거나 무대에 오르고 내림이 간격을 잃어 보 기에 매끄럽지 못하게 돼요. 여러 해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지금은 물 흐르듯 할 수 있지만, 초 창기몇 년 동안은 밤잠을 못자도록 긴장 했었 어요. 한국방문 때 동양일보의 순회명사시낭 송회에 참가하여 무대에 섰던 경험과, 그 행사 사회를 보던 연극인 박현진씨나 시낭송가 이 덕자씨의 능란한 진행이 본보기가 됐지요. 연 변포석문학회 개막행사의 코발트 빛 조명의 연출도 무대 분위기를 한껏 돋보이게 했지요.”

-매년 그 행사 땐 연길은 물론 연변의 문인 들이 대거 참석하여 마치 연변문학인대회 같 은 분위기였지요.

“이 곳 문인들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학교 때 포석 선생의 작품 ‘낙동강’을 배운 사람들이지 요. 원로 문인인 김응준 시인이나 최삼룡 문학 평론가 등 모두가 포석의 문학정신을 본받고 자 하는 데는 너와 나의 구분이 없지요. 몇 년 전 고향인 진천에 선생의 문학관이 준공된다 는 소식을 듣고 모두 준공식 광경을 보고 싶어 했지요. 그 때는 이임원 연변포석회장만 참석 했지만 그 이후 개인적으로 한국에 왔다가 돌 아보고 오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도 한국에 갈 기회가 있다면 만사를 뒤로 미루고 진천의 ‘포석조명희문학관’을 둘러보고 방명록 에 꼭 이름을 올리고 싶어요.”

-연변대 조선-한국어학원 조선어학부 강단 에 선 것이 얼마나 됐지요?

“나는 대학을 나와 연길시에 있는 제2고급 중학교 교사로 출발했어요. 그후 강소성에 있 는 양주대학 외국어학원 한국어계와 산동성 청도시에 있는 청도 이공대학 한국어계 교수 를 거쳐 2006년3월에 현재의 연변대 조선-한 국어학원 조선어학부 강단에 섰어요. 햇수로 12년이 됐네요. 당초엔 연변대에 조선어학부 만 있었는데 중국과 한국이 수교를 맺고 한국 의 영향력이 커지자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전 공하는 학과가 생기고 조선어보다는 한국어를 배우려 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어나더군요. 나 는 조선과 한국을 넘나들며 우리말을 익혀 조 선어나 한국어나 다 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어 학생들에게 양 쪽 언어를 구사하는 데는 어려 움이 없어요. 학생 수는 한 학년에 60명씩이니 4학년까지 하면 240명쯤이 되지요. 나에게 이 제껏 한국어를 배운 학생들은 대략 2000여명 쯤은 될 꺼 예요.”

-한국어를 익힌 그들이 주로 어느 방면으로 일자리를 갖게 되던가요.

“다방면이지요. 중·한 합작회사나 기업은 물론, 교육계·언론 출판계 등 비교적 좋은 일 자리에 진출하고 있어요. 근래엔 연변이 무대 가 아니라 북경 상해 등 대도시 진출이 부쩍 늘 어났어요. 갈수록 한국어과 출신들의 수요는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여요.”

-수강한 제자들로부터 어떤 스승상이 되기 를 바라는지요.

“조선족 출신 교수를 통해 한국어를 익힌 이 들이 진정한 한국의 역사와 정체성이 무엇인 지를 생각하게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55개 소수민족과 한족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중화인민공화국이 소수민족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한 문화를 존귀하게 여기고 품을 때 중국 은 대륙을 지닌 거대국가 다운 면모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근래 들어 동북공정이니 사드 보 복이니 하여 한·중관계가 복잡 미묘해지면 중국에 몸담고 있는 200만 조선족 동포들의 난처한 처지는 고스란히 동포들의 몫이 되고 말지요.”

-좌우명이나 희망이라면…

“아주 평범한 말인데, ‘성실하게 바르게 살 자’란 말을 자주 뇌이곤 합니다. 희망이라면 재 직하는 동안 ‘훌륭한 스승’이 되는 것이고 여유 가 있다면 북유럽 여행을 꼭 해보고 싶어요.”

-포석 선생 행사로 연길을 다녀오는 사람들 마다 김 교수가 연변의 대모 역할을 한다고 자랑하던데요.

“아무래도 낯선 중국에 오신 동포들이 긴장 을 하고 있다가 생각지도 않게 황당한 일을 당 하거나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이 임원 회장이나 우리 연변포석회 사람들은 방 문단이 머무는 동안 줄곧 동행을 하려 하지요. 그러다 보니 매년 오시는 분들에게서 고맙다 는 인사를 듣지만, 떠나시고 나면 좀 더 잘 모 실 것을 하며 후회가 남지요.”

-해마다 진천에서 열리는 ‘포석 조명희문학 제’가 올 해 25주년 행사를 했습니다. 30회 행 사는 특별한 기획이 있을 것이라 봅니다. 그 때 까지는 다소 시간이 있으니 한.중 관련한 정치 적 갈등들이 해결되지 않겠어요? 연변동포문 인들이 총 망라된 방문단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생각만 하는 것으로도 행복하네요. 포 석이라는 한 걸출한 문인을 통해 후대들이 국 경을 넘어서는 이런 소통을 한다는 것부터가 범상한 일은 아니지요. 어떤 거대한 기운에 끌리는 듯한 이 같은 분위기야말로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그 어떤 이끌림일 것 같아 요. 얼마전, 동북아의 공통가치를 찾아서 개최 되는 동양포럼에서 일본의 나스메 소세키-중 국의 루쉰이 그 나라의 국민작가인 것처럼 포 석 선생이 한국의 국민작가라는 학술발표를 보면서 그동안 ‘한국 민족민중문학의 선구자’ 로 칭했던 것보다 진일보한 평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끊임없는 연구로 포석 선생의 진면 모가 드러나 한국의 근현대문학의 미답未踏의 장이 열리기를 열망합니다.”

-김 교수의 그 같은 바람이 꼭 이뤄질 것이 라 믿습니다. 어떤 일이든 간절함은 기적을 만 드는 에너지가 되지요. 한국의 남북 분단 상황 과 이데올로기의 충돌로 함몰된 역사적 진실 들이 탐구자들의 진지함에 힘입어 가려졌던 베일들이 한 겹씩 벗겨지는 시점에 이르렀다 는 생각입니다. 선생의 마지막 활동지였던 연 해주가 중국과 접해 있는 곳이므로 김 교수와 같은 학계의 연구가 의외의 수확을 걷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늘 깊은 관심으로 지켜보아 주 기를 바랍니다.

“이역만리 먼 길을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한국의 낯익은 분들에게 안부 전해 주세요.” <매주 수요일 연재>

김성희金星姬 교수는… 

*1966년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 도문시 출생
*1986년 연변대학 조선어언문학계 학사.
*2003년 연변대학 준선어언문학계 석사.
*2009년 조선 사회과학원 어문학부 박사.
*1990년 길림성 연길시 제2고급중학교 교사.
*2003년 강소성 양주대학 외국어학원 한국어계 교수.
*2005년 산동성 청도시 청도이공대학 한국어계 교수.
*2006년 길림성 연변대학 조선-한국학학원 조선어학부 교수.
*현 연변포석회총무.

저서
*한국어 기초문법
*한국어 읽고, 말하기  
*기초 한국어 회화 등 6권.

주요논문
*조선,한국 및 중국조선어 문법술어 사용차이.
*상징사의 어음과 의미 관련연구.
*조선어 문장성분의 상호 호응관계 표현과 류형에 대한 고찰.
*조선어 의성의태어 형태 류형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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