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은/ 중원미술가협회장

(동양일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과 총선 때도 각 정당 유력 후보들은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말하며 문화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척 했다.

필자가 확인해본 결과 당시 각 정당과 후보자들이 내세운 정책 공약은 총 320개다. 이 가운데 문화관련 공약은 17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매우 실망스러웠다.

과거 우리는 정치 고수를 국가 지도자로 세웠다.

‘정치 9단’이라고 불리는 지도자들이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경륜과 선거, 정치판에 이골이 난 노회함이라는 이미지가 함께 떠오른다.

차기 지도자 선정 레이스가 본격화되면 각 정당 후보들은 문화관련 정책구상에 골격을 드러낸다. 시장 중심주의 정책으로 문화예술이 자본권력화 되다시피 하는 과정을 우리는 경험했다.

유럽사회는 뒤늦게 문화예술이 지닌 소통과 통합, 치유의 힘을 인식하게 됐다. 이들 나라는 현재는 기울어지지 않은 문화 생태계 조성에 매진하고 있다.

언젠가 서울 세종로에 ‘문화가 있는 날’ 홍보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는 걸 봤다. 현수막을 본 뒤 ‘과연 문화가 없는 날도 있을 수 있나?’라는 의문이 든 적이 있다.

반 우스갯소리지만, ‘문화가 없는 날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과 동시에 이 단어가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아마 그 날은 ‘인류가 멸망한 날’일 것이라는 막연한 추론도 내놓을 수 있다,

정부는 매년 10월 셋째 주 토요일을 국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문화의 날’로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국민들이 보다 쉽게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매달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도 지정했다.

해당 날짜에는 영화와 스포츠, 공연, 박물관, 미술관, 고궁 등 주요 문화시설을 무료 또는 할인혜택이 주어진다.

우리의 척박한 삶 보다 적극적으로 문화향유 기회를 주고자 기획됐다고 판단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문화소외 인구가 많고 문화 격차 또한 깊다.

‘문화의 날’이던 ‘문화가 있는 날’이던 간에 그러한 작위의 문화 사업을 하는 것이려니 한다.

우리 정치의 불행은 백범 김구 선생 이후 그 분의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에 도달한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없어 보인다는 점이 큰 문제다.

전직 대통령 2명이 감옥에 있고, 되풀이되는 정부 실패와 대통령 환란에 원인을 제도의 문제로 보기도 한다. 심지어 청와대 풍수지리까지 들고 나오기도 한다.

필자 소견으로는 정치 지도자들의 인문학적 소양 결핍과 문화예술의 이데올로기 부재가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프랑스 문화상 안드레 말로의 ‘문화 민주주의’와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문화 뉴딜’에서부터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모두를 위한 문화’ 등 정치지도자들의 외침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창의성의 원천은 문화 예술’이라는 발언은 문화에 기저를 둔 국정운영 사례다.

미래 새로운 인재상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대학도 본능적으로 ‘머리 좋은 우수한 학생’ 선발에 공을 들인다. 그러나 과거의 기준은 이제 폐기되기에 이르렀다.

지식과 경험의 양이 힘이었던 시대가 저물었다. 이제는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이 중시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정치적 논란이 넘쳐흐르지만, 문화 분야는 ‘문화 실종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4차 혁명에 진입한 대한민국이 시대 기준에 맞춰 좋은 지도자는 어떤 인물인가?

투명한 문화예술에 대한 집중과 선택을 통해 ‘문화의 날’이던 ‘문화가 있는 날’이던 간에 이 제도를 잘 운용해줄 지도자가 필요한 시기다.

문화를 중시 여기는 분위기 조성과 다양한 행사를 통해 문화를 정착시키고 정립시키는 지도자들의 중심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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