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청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에베레스트 등정을 한 산악인 고상돈은 이곳 사람들에겐 영원한 청주인이다. 그가 1977년 9월15일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을 때 산악인들은 물론 전 국민이 환호했었다. 네팔 외교부에 에베레스트 입산 허가 신청서를 낸 지 6년, 영국 미국 중국 등에 이어 국가로는 세계 8번째였다.

그가 무전으로 보내 온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습니다!”라는 외침은 너무도 유명해져서 이제는 정상에 오르면 외치는 모범언어가 됐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세계의 지붕. 8848m의 에베레스트 정상은 그의 등정 이후로 한국 산악인들에게 꿈을 주는 산이 되었고, 그동안 640여 명의 한국인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해 93명이 정상을 밟았다.

원래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현지 이름이 아니다. 히말라야가 위치한 네팔에서는 이 봉우리를 ‘사가르마타(하늘의 이마)’로 불러왔고, 티베트에서는 ‘초모룽마(세계의 어머니신)’로 불러왔다. 중국이 ‘주무랑마(珠穆朗瑪)’로 부르는 것은 ‘초모룽마’를 음차한 것.

영국은 인도를 점령한 후 이 고봉들의 높이를 측량하기 시작했다. 무려 60년에 걸쳐 대대적인 측량작업이었다. 그때 인도의 초대 측량국장 조지 에베레스트의 도움이 컸고, 그래서 최고의 봉우리는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에베레스트로 작명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일까. 1924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하다가 숨진 영국 산악인 조지 맬러리는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말했다. 거기 있어서 오르는 산, 에베레스트는 세계 최고의 봉우리라는 상징성으로 모든 산악인들에게 도전하고 싶은 꿈의 봉우리가 되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에베레스트는 훈련받은 산악인이 아니어도 돈과 체력만 있으면 등정이 쉬운 산이 됐다. 돈만 내면 세계 최고봉에 오르게 해주겠다는 상업주의가 득세하면서 너나없이 쉽게 도전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다보니 쓰레기 문제도 심각해져서 ‘지상에서 가장 높은 쓰레기장’이라는 오명까지 얻을 정도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기에 가장 쉬운 계절은 3~5월. 올봄시즌 네팔 당국은 381건의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을 허가했다. 이들이 셰르파 1명씩을 동반한다고 가정하면 760명이 동시에 산으로 몰리게 된다. 여기에 중국 티베트 쪽에서도 140명에게 등반 허가를 내줬다고 하니 양쪽을 합치면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에베레스트 산등성이로 몰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마치 인간띠를 두른 듯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가득 메워진 놀라운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문제는 한 사람씩 밖엔 갈 수 없는 좁은 산등성이 병목 길의 교통정체가 심하다보니 사망자가 속출한다는 점이다. 산소가 부족한 8000m 고지대에서 추위와 고산병과 싸우며 장시간 기다리다가 목숨을 잃은 이가 올해도 11명이나 된다.

탐험 영화제작자 엘리아 사이칼리는 등정에 성공을 하고 인스타그램에 “내가 에베레스트에서 본 것들은 죽음, 주검, 카오스, 대기 줄. 내가 할 수 있는 건 죽어가는 이들을 외면하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은 타락해 갔다. 시신들을 넘어 걸어갔다”고 적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그것은 역시 돈과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등정이 많은 이들에게 버킷리스트가 되면서 네팔 정부로선 놓칠 수 없는 외화 획득 수단이 된 지 오래다. 등반 허가를 해주는데 일인당 1300만원(1만 1000달러), 정상에 데려다준다는 상업 등반 회사는 일인당 8000만원 정도를 받는다. 성취감과 명예, 기타 등등의 이유로 도전하는 사람들과 그 목적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전문 산악인들은 훈련받지 않은 아마추어들이 등반 업체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산을 오르는 무모한 도전에 우려를 표한다. 맞는 말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얻을 수 있는 기쁨과 행복감은 끊임없는 훈련과 철저한 준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때 가능한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