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은 중원미술가협회장

문형은 중원미술가협회장

동양일보 나라 경제 발전이 국민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이 걸림돌인지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창의적인 나라의 문화 향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2명은 연중행사 관람이 전무하다고 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60대 이상 노년층과 월 평균 소득 150만원 미만 가구는 절반 이상 문화 관람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경제규모 11위지만, 행복지수라고 할 수 있는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는 28위다.

국민소득 3만 불에 근접한 이 나라는 여전히 물신 숭배가 심하고, 관(官)·산(産)·학(學) 어디든 평가는 성과로만 이뤄진다.

그런 문화에는 실패가 용인되지 않고, 창의적인 자를 밀어낼 확률이 크다.

도전하는 자는 늘 조직에서 위험인물로 지목되고, 성과중심 시스템이 몰고 온 ‘피로사회’ 즉, 무한경쟁 사회를 두고 젊은이들은 ‘헬’이라는 접두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청년들이 자신의 나라를 지옥으로 본다면 지금 한국은 분명 위기의 나라다.

최근 ‘금수저’와 ‘흙수저’ 논란이 횡행했다.

선거 때 후보자들은 서로 자신이 ‘흙수저’라는 사실을 유권자들에게 경쟁적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금수저’ 후보는 조용히 입을 닫고 있었다.

태평양 건너 나라는 거부(巨富)를 대통령으로 뽑았는데도...

그것도 백인 기층민들이 표를 몰아줘 당선시켰다.

‘기층민(基層民)’은 나라 기층을 이루는 백성이란 뜻으로,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이면서 사회적 특권이나 경제적 부를 누리지 못하는 일반인을 말한다.

일본 젊은이들도 보수 자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데, 우리나라에서만 빈농 아들이었다고 해야 표를 얻을 수 있는 게 기이한 현상이다.

이는 우리사회에 청빈은 있으나, 청부(淸富)는 없고 불가능하다는 냉소가 만연돼 있다.

그 심층에는 문화 부재와 소득계층 간 이동 가능성이 닫혀 있다는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다.

이 같은 결과는 지금의 한일 무역주의에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 사회적 이동성을 높이는 것도 국가적 현안이다.

대중사회의 불만족과 박탈감, 그리고 소외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불만족과 박탈감, 소외는 경제적 문제이기 보다 문화적 문제다.

눈부신 경제발전 이면에 숨겨진 기층민들의 고단한 삶은 여러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정서적으로는 대개 문화접촉 기회 결핍에서 온다고 하지만, 그것은 소득과 소유의 독과점이 문화 편중으로 이어진 사회구조 탓이라고 한다.

하지만 행복의 잣대는 절대적 기준에 있지 않고 상대적 박탈감이나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기인한다.

지난 10년간 정부 예산이 1.8배 정도 늘었는데, 문화 예산은 8배가 증가했다는 통계치가 나왔다.

그러나 국민 문화 향수 실태조사를 보면 대부분 항목에서 일제히 하락하고 있어 쉽게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득상위 20%와 하위 20%간의 문화지출 격차는 7배가 넘고, 소득과 나란히 문화도 양극화되고 있다고 한다.

문화 편중은 공동체 분열로 이어지기에 위험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불행은 어디에서 올까?.

그것은 가난과 질병, 실직, 이혼 등도 불행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스라엘 출신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생물학적으로는 불쾌한 감각에서 온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분 나쁜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학설이다.

감정에는 최저선이 없고, 브레이크도 없다.

불쾌하면 축구경기 끝에 국가 간 전쟁도 불사하는 시절이 있었다.

불쾌한 감정의 끝, 즉 행복의 마지막 문이 닫히면 사람은 대개 둘 중 하나를 택한다고 한다.

자살하거나,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이 원하는 나라와 세상으로 바꾸려 한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문화를 사회 안정망 개념으로 숙고해 문화강국으로 나가야 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