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호 청주시흥덕보건소오송지소 주무관

[동양일보]몇 년 전 한여름의 무더위도 지금처럼 지구 전체를 뜨겁게 달궜다. 밤낮으로 푹푹 찌는 한증막 같은 더위 속에 지칠 대로 지쳐 식욕도 떨어졌고, 밤 동안 숙면도 힘들어 모든 일에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고 아침이 밝았다.

밤 동안 동(冬) 장군에 버금가는 하(夏) 장군 더위와 씨름하다 일어난 딸아이는 입맛을 잃었나 보다. 밥 대신 과일을 먹겠다고 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자두와 복숭아가 딸아이의 아침 식사 메뉴로 선택됐다. 거봉을 힐끔 쳐다보며 냉장고 문을 닫으려 할 때, 비닐에 쌓인 포도 알갱이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청개구리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일주일 전 마트에서 거봉을 살 때도 개구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시 어딘가에 숨어있던 청개구리 한 마리가 이제서야 ‘나 여기 있다’라며 진한 보랏빛 포도송이 위에 청푸른 빛을 띤 자신의 피부 색깔을 보란 듯이 내비치고 있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냉장고에서 버티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비닐에 쌓인 그 비좁은 공간의 포도송이 사이에서 꼼짝도 안 하고 앉아 있었나 보다. 아니 포도송이 사이에 끼어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청개구리 생사는 눈으로 확인을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손으로 집어 들어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왠지 그 작은 청개구리가 우리 집에 무단 침입한 밤손님처럼 느껴져 겁이 났다. 휴가로 집에서 쉬고 있는 남편에게 살아있으면 방생해주고 죽어 있으면 사체 처리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곤 출근했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후 청개구리가 궁금해졌다.

“여보, 청개구리 어때? 살아 있어, 죽어 있어?”

“식탁 위에 꺼내놨더니 얼마 동안 웅크리고 꼼짝도 안 하고 있더라고. 한참 후에야 네 다리를 천천히 쭉 펴면서 기지개를 켜네. 아마 냉장고 안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었나 봐. 아직 적응이 잘 안된 것 같아서 좀 더 지켜보고 방생해 주려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선 살아있다는 것에 놀랐고 시원한 냉장고 안에서 일주일 이상을 지내며 썰렁한 기온을 체감하고 동면을 취하고 있었을 청개구리가 우스꽝스러웠다. 동면을 취할 때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꼼짝없이 얌전히 자고 있는 개구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걱정했던 나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가득 찼고, 안도의 한숨도 덩달아 내뱉어졌다.

‘넌 참 호강하는구나. 이 더운 날 모두들 더위로 밤잠도 못 이루고 있는데 넌 벌써 동면을 취하는구나.’

예외의 법칙, 어느 곳에든 예외는 있게 마련이다. 명확한 법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조건들 속에서 각가지 우연과 상황의 짜임으로 만들어진 예외는 발생한다.

가마솥더위, 찜통더위, 불더위 속에서도 잠시나마 동면을 즐긴 청개구리가 바로 그런 경우였던 것이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어쩌다 이곳까지 실려 온 것을 불쌍해해야 할지 모를 그런 청개구리와의 만남이 이 더위 속 겨울을 느끼게 해준 시원한 손님으로 생각됐다.

결국 청개구리는 그 해 여름을 건너뛰지 않게 됐고, 우리 가족은 잠시나마 팥빙수 같은 시원하고 달콤한 하루를 보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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