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임 전 대한앤프라ceo

정옥임 전 대한앤프라ceo
정옥임 전 대한앤프라ceo

 

[동양일보]살랑이는 가을바람에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잎을 바라보다 문득 내가 공장을 운영하던 때 근무했던 방글라데시인 친구 존희가 생각 났다.

어느 일요일 서울에서 볼일을 본 뒤 지하철 환승역인 부평역에서 많은 사람들과 뒤엉켜 지하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사모님~!"

무척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발길을 멈추고 쳐다보니 우리 공장에서 근무하는 존희가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다. 한손에는 넓적한 플라다스 나뭇잎을 들고…. 더불어 미소 짓는 그의 친구들 얼굴도 환했다.

나도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사모님! 예뻐요 최고~". 엄지손가락을 쳐들고 웃는 모습들이 정겨웠다. 의아한 듯 힐끔힐끔 쳐다보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은 의정부에 있는 알라신의 예배당에서 기도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단다. 동료들과 헤어지기 아쉬워 부평역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 환승하려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발견한 한 것이다.

방글라데시아 청년들 중 존희는 명랑한 성격으로 늘 웃는 모습에 인물이 준수했다. 그의 형님은 성격이 소심하고 조용한 성향인 것 같았지…만.

이들 두형제는 여권이 만료되면 친구들이나 다른 형제들을 불러 공장운영을 돕곤했다. 물론 이들이 본국을 다녀와도 일터는 우리 공장이었다.

한번은 존희가 본국에 갔다가 어머니가 정성껏 만드셨다며 떡을 가져온 적이 있다. 우리나라 떡으로 보면 팥 시루떡 같은데 질 시루에 물이 살짝 돌아 질척한 느낌이었다. 당시 이들은 최고로 맛있는 떡이라며 고향의 향수까지 먹는 듯해 보이곤 했다.

내 입맛에는 상관없이 어머니 정성이 감사하며 맛있다고 고개까지 끄덕여 줬다.

존희 핸드폰에 저장된 본국에서의 가족사진.

어머니와 아내, 딸과 여동생, 조카들의 사진이 가득했다. 화려한 옷차림새에 오뚝한 콧날 하나같이 쌍꺼풀진 큰 눈에 속눈썹까지 이어붙인 인형들 같았다.

반달 같은 눈썹은 모숨이 촘촘히 배열돼 안정감까지 느껴졌다. 까무 짭짭한 피부에 외모조건들이 어디 흠잡을 데가 없었다.

"어쩜! 이렇게 눈과 눈썹이 예쁜 거예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은 존희는 "어머니는 물론, 아내도 착하고, 자기 딸도 귀엽고, 여동생들도 모두가 착하다"고 했다.

한발 더 나아가 나는 여자들만 예쁜 게 아니라 남자형제들도 잘 생겼다고 거듭 칭찬을 했다.

"사모님! 우리 여덟째 동생은 모델이야 얼마나 잘 생겼는데…." 핸드폰 저장된 존희의 남동생 이목구비는 공장에서 특품으로만 '뽁뽁' 찍어내 만든 걸작 같았고, 눈썹도 화가가 먹물로 잘 그려놓은 듯 했다.

"사장님이 우리 아버지처럼 좋고 고마워서 방글라데시아로 갈 때까지 저는 여기서 일할 거예요"

그는 알라신께 우리 집안의 평안과 공장운영도 잘 되도록 늘 기도드린다고 했다.

기계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매우 엄숙해 보이던 존희와 그의 형, 이들 두 형제는 우리 공장에서 8년 넘게 일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도 본국으로 돌아가 따뜻한 가정을 꾸미고 잘 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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