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쟁이’별명이 키운 열정의 금융거인

백제새마을금고 박완례 이사장

[동양일보 유환권 기자]"제 별명이 일수쟁이였어요. 고리대금업이 성행하던 시절에 시장 상인분들 돈을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 발품을 팔며 1000원씩 저축하게 했죠. 그렇게 내식구로 만든 '개미군단' 회원이 오늘날 백제새마을금고(이하 금고)를 살찌운 효자가 된겁니다"

최근 금고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된 박완례(58) 이사장. 한 직장에서 40년 세월을 불사른 성탑(城塔)에 도전할 경쟁자가 없어 사실상 추대 당선됐다. '이제는 뼈만 묻으면 된다'며 웃는다.

박 이사장의 금융인 첫걸음은 1980년 1월이다. 변변한 사무실도 없는 산성시장 한켠에 있던 당시 금고의 자산은 3억5000만원. 박 이사장의 초임 월급이 5만원이었다고.

입사초 직원들이 마감 결산액 1만7000원을 못맞춰 1주일을 찾은적 있었다. 당시 주산 2단이었던 박 이사장이 5분만에 찾아내자 인근 금융기관에서 스카웃 제의가 쇄도했지만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일이 손에 익으면서부터는 회원들의 자녀, 부부관계, 남녀문제 등까지 상담해 주고 스킨십을 했다. 각 가정의 숟가락 숫자까지 꿸 정도의 소통은 회원들이 박 이사장에 대해 가진 ‘신뢰의 뿌리’였다.

"일에 미쳐 가정을 못챙긴 날이 허다했어요. 첫딸 돌잔치때 손님들 초대해 놓고 출근했던 기억, 아들 출산후 열흘만에 직장에 나갔던 일은 지금도 잊지 못해요. 아이들 일로 학교에 가는 것도 전부 남편 몫이었어요."

그래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항상 미안하다.

술을 못해 회식 자리에선 건네받은 소주는 상 밑에 숨겨둔 사발에 버리기 일쑤였다. ‘진실’을 모르는 지인이 어느날 남편에게 “부인이 말술이던데, 어떻게 감당하며 사느냐”고 걱정해 부부가 배꼽 빠지게 웃은적도 있었다.

박 이사장의 성실과 열정, 직진 마인드는 부동산 투자에도 ‘나비효과’의 대박을 터트렸다.

18억에 구매한 현재의 신관동 본점(대지 380평)이 땅값만 40억 가까이로 치솟아 복덩이로 변한 것. 당시 '박 이사장 개인 명의로 사라'고 주변 유혹도 컸지만 그는 사욕을 버렸다.

IMF때에는 재무건전성이 좋아 공적자금을 한푼도 안받았다. 2011년 10월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전국 새마을금고 유동성 위기‘ 발언으로 예금이 썰물 빠지듯 했을 때도 백제금고에서 이탈한 예금은 1700만원이 전부였다.

박 이사장은 성공한 경영인이자 신뢰받는 금융인으로 꼽힌다. 자산 규모만 2650억에 3개 점포 2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초우량 금고로 키웠기 때문이다.

그는 재임중 회원들 여가 복지시설로 현 건물에 노래교실 줌바댄스 요가 등 프로그램을 운영할 실버타운을 세우는게 목표다. 잉여수익을 회원에게 환원한다는 의미에서다. 장학금 출연과 소외계층 자장면 봉사 등 사랑나눔 활동도 더 활발하게 전개할 계획이다.

“직장에선 남의 집 마실 온것처럼 일하지 마세요. 업무에 올인하세요”

열정과 성실이 최고선이라고 강조하는 박 이사장이 직원들에게 성불하는 마음으로 해주는 '교양필수' 조언이다.

빗물에 질척이는 재래시장을 누비면서 상인들 손때묻은 1000원짜리를 모아 저축해 주고 오늘날의 새마을금고를 키워낸 억척 금융 경영인. 40년간 결근이라고는 단 하루도 해본적 없는 철의 여인.

그가 뿌린 땀방울에 오늘도 지역경제가 웃는다. 공주 유환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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