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기 충북도 기획관리실장

한순기 충북도 기획관리실장

[동양일보]지금처럼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20~30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문패 달기가 유행했다. 대문 기둥에 큼지막한 글씨로 이름 석 자가 쓰인 나무 문패를 달기도 하고 좀 더 자상한 집주인은 식구들 이름 모두를 적은 문패를 대문에 써 붙여서 이곳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를 알렸다. 이러한 문패는 그 집의 정체성을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면서 사회적 사명감과 책임감도 함께 부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집 앞 낙엽 쓸기나 눈 치우기와 같은 것이다. 만일 집주인이 이러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소홀히 하면 동네 이웃은 물론 타지 방문객들에게 눈총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집주인은 문패를 다는 순간 몸가짐, 마음가짐이 남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문패는 단순히 집안일에 그치지 않는다. 도정 정책에도 문패를 도입해 시행되고 있다. 바로 ‘정책실명제’이다.

정책실명제는 말 그대로 도정 주요정책에 ‘문패’를 다는 일이다. 이를 통해 정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정책 기획·입안 단계에서부터 추진과정과 종결까지 누가·언제·왜·무엇을·어떻게 추진했는지 그 과정에 정책관련자 이름을 넣어 도민들에게 공개한다.

특히 충북도는 도정정책이 광범위하고 사업 가짓수가 많은 만큼 중점관리 대상사업을 정해 실명제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여기에는 도정 주요 현안에 관한 사항, 도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담하는 정책, 도민의 권익이나 복지증진 관련 정책, 50억원 이상의 대규모 예산투입 사업, 1억원 이상의 용역과 5000만원 이상 연구용역, 자치법규 제정·개정 및 폐지 등이 포함된다.

또한 지금까지 운영상황을 바탕으로 정책실명제 추진방법도 개선했다. 그동안 관 주도로 정책실명제를 추진해왔던 점을 개선해 ‘국민신청실명제’를 전격 도입했다. 수요자인 도민의 요구를 반영하고 도민이 궁금해하거나 바라는 정책 의견을 수렴해 공개하는 것이다. 국민신청실명제 도입은 도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도민의 정책참여 기회도 확대했다.

아울러 대상 사업을 선정·심의하는 정책실명제 심의위원회 역할도 강화했다. 먼저 민간위원의 비율을 대폭 늘렸다. 전체 위원의 60% 이상을 민간으로 구성하여 좀 더 투명하고 공정한 관점에서 실명제 대상 사업을 선정토록 했다. 다만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사유가 있는 정책이나 단순민원성 의견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정책실명제는 지속성과 효과성을 담보하기 위해 법적 장치도 마련했다. 1998년 정책실명제가 처음 도입된 이후 해마다 계속 개선 보완되어온 것이다. 시행 초기 기안문, 시행문, 보도자료, 정책자료집과 같은 기본적인 문서에 실명기재 의무화를 시작으로 대형공사, 정책용역사업 등으로 확대됐다. 또한 정책실명제 활성화를 위한 관리체계 강화를 위해 행정효율과 협업 촉진에 관한 규정에 정책실명제 강화규정을 마련했고 2018년에는 국민신청실명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도민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정책운영을 위해 힘써왔다. 충북도 역시 변화에 발맞추어 조례와 규칙을 제정하는 등 법적 근거를 마련해 실명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마트에서 채소 하나를 고를 때에도 생산자 이름이 적힌 상품을 보면 믿음과 신뢰감이 생긴다. 우리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도정정책들도 마찬가지다. 집주인에게 사회적 사명감과 책임감을 주던 문패처럼, ‘정책실명제’의 문패는 담당자에게는 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주고 도민들에게는 도정에 대한 신뢰를 선사할 것이다. 정책실명제를 통해 명품행정 충북의 도약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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