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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다시 부르는 광야曠野의 노래, 포석의 길(상)
특별기고/ 다시 부르는 광야曠野의 노래, 포석의 길(상)
  • 동양일보
  • 승인 2020.05.12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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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모 문학평론가

[동양일보]지난 11일은 민족민중문학의 선구자로 추앙되는 포석 조명희(1894~1938) 선생 순국 82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을 맞아 문학평론가 강찬모 박사가 선생을 기리는 글을 보내와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강 박사는 현재 진천군 ‘포석 조명희문학관’에 근무하고 있다. <편집자>



가슴에 돌을 품은 선구자

우리 속담에 “관 두껑을 닫을 때까지 두고 봐야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한 인간이 살아 온 윤리적 삶의 가변성을 이야기한다. 시쳇말로 이야기 한다면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얘기이다. 운동 경기에서 승부를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의 뜻과 승부를 속단하지 말라는 중의적 의미가 포함된 말이지만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할 때도 동일한 의미로 적용되는 말이다. 필부필부의 삶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는 대체로 관 두껑이 닫힘으로써 그에 값한다. 그러나 역사가 된 사람들의 삶은 관 두껑이 닫힌 이후에도 현실로부터 지속적으로 소환 재해석되며 평가된다.

포석 조명희의 삶도 이 같은 흐름과 궤를 함께 한다. 우리는 보통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최초’의 사람을 ‘선각자’ 혹은 ‘선구자’라고 한다. 우리의 뇌리 속에 선구자가 곧 ‘형극(荊棘)’의 길과 동의어로 떠오르는 것도 이처럼 없는 길을 처음 낸 최초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곡 '선구자'가 국민들에게 애창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어쩌면 포석은 ‘선지자(先知者)’의 운명을 신탁처럼 타고 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호(號)’- ‘포석(抱石 )’-가 이를 증명한다. 호는 한 개인이 이름에서 보완하고픈 소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삶의 ‘이정표’이다. ‘돌’을 품은 사람이 일개 범부일 수는 없지 않은가. 광야에서 베고 잔 야곱의 베개도 돌이었다.

포석은 한국근현대문학사 각각의 장르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면류관으로 쓴 ‘문학가’이자 ‘독립 운동가’이다. 고향인 진천은 물론, 우리 고장 충북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선인이다. 사실 포석은 한 가지 영역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다층적 능력의 소유자였다. 문학가와 독립운동가, 언론과 교육 등을 망라한 영역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문학에서도 시, 소설, 수필 등 문학의 3장르 이외에 희곡과 평론, 번역과 아동문학 등 그야말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다.

포석은 1923년 한국 최초 개인 창작 희곡집인 ‘김영일의 사’와 24년 한국 최초 미발표 개인 창작 시집인 ‘봄 잔디밭 위에’를 출간했으며 27년 한국 프로문학의 기념비적인 금자탑, 소설 ‘낙동강’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경향문학과 프로문학의 경계 혹은 이미 프로문학의 지향성을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등 문학사적으로 여러 해석의 지평이 열려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 하나 더 첨언하자면 프로소설이면서도 작품의 전개는 민족적 요소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삶의 이력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명 ‘민족적 사회주의자’라고 일컫는 매우 독특한 지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최초가 있었으니 일제 강점기 최초의 ‘망명(소련)’ 작가라는 이름이다. 그러나 포석의 삶과 문학은 분단이라는 민족의 비극적 소용돌이 속에 함몰, 1988년 납 . 월북 문학인들의 작품이 해금되기 전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 해방 후 남북은 물론,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옛 소련 교과서에 꾸준히 수록되었으나 그 이후 포석의 삶과 문학은 남북 어디에서도 향유되지 못한 채 역사의 뒤꼍에 유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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