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모 문학박사·진천포석조명희문학관 주무관

강찬모   문학평론가/문학박사
강찬모 문학박사·진천포석조명희문학관 주무관

 

[동양일보]국권 상실기에 저항의 수단인 문학은 그에 걸맞은 강한 현실 대응력을 요구한다. 서정성보다 서사를 중심 배경으로 인물들의 직접적인 말과 행동이 거칠게 노출되는 이유이다. 역사의 과도기엔 서사가 현실을 드러내는 증언의 수단으로 유용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프로문학이 활발했던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러나 모든 문학이 강한 현실 대응력을 갖출 수는 없다. 작가의 관점과 지향에 따라 현실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다.

 

쉽게 말해 육사의 추상같은 기개도 필요하지만 소월의 정한(情恨) 대상인 진달래꽃도 필요하며 백석 시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음식또한 필요한 것이다. 소월은 뒷동산에 오르면 너무도 흔하게 보는 진달래꽃을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를 환기하는 객관적 상관물로 봤으며 백석은 봄이면 지천에 깔린 갖가지 나물먹을거리등을 소재로 당대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시로 길어 올렸다. 소재만을 놓고 본다면 국권 상실기에 선택한 시의 재료로는 적절성이 떨어진다. 망국의 현실에서 수동적 이별과 음식 타령은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문화)’의 상징성은 특정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바탕으로 오히려 총칼보다 강한 결속력과 생명력을 갖는다. 누대에 걸쳐 생존의 근간이 된 특정 공간의 자연 지리에서 생육된 소재가 지니는 원초적 힘이다.

 

이러한 대응 논리의 다양성을 플라톤이 말한 신화작용이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플라톤은 철인의 공화국에서 시인을 추방하려고 했는데 그 표면적 이유는 시인이 갖고 있는 신화(神話)작용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즉 시인은 해당 민족의 뿌리 깊은 전통을 모으고 알리는 사람인데 이들 통해 공동체를 결속시킨다는 것이다. 대중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나 쉽게 느끼지 못하는 집단무의식을 자극하며 일깨우는 역할이다. ‘아리랑애국가를 들으며 고추장된장을 먹고 무궁화를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근본을 잊을 수 있을까. 이러한 것들이 개별 민족의 역사 속에서 고유하게 만들어진 일종의 유무형의 잉여(剩餘)’문화인데 위에서 말한 음식이 이에 해당한다. 포석은 이렇게 국토의 자연지리인 강이 갖는 인문적 정서를 국권 상실기에 문학으로 온전히 수렴, 엄혹한 현실을 증언하는 모티프로 활용했다.

 

포석에 의해 수용된 강이 우리 문학사에서 하나의 전통으로 이어진 사례를 비교적 대중적으로 알려진 소설을 중심으로 우선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포석과 막역한 우정을 나눈 민촌 이기영의 두만강과 재독 작가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그리고 조정래의 한강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소설들이다. 이외에도 우리 국토에 흐르는 모든 강들이 소설의 주제와 표제로 사용된다고 봐도 지나친 비약이 아니다. 대략 일별해 보면 김동인, ‘대동강’, 삼천리, 1934. 김동현, ‘대동강’, 기획출판사, 1975. 김탁환, ‘압록강’, 열음사, 2000. 김환태, ‘섬진강’, 글힘, 2000. 김진명, ‘섬진강 만월’, 집사체, 2015. 김홍정, ‘금강’, , 2020. 한만수, ‘금강’, 글누림, 2014. 황의진, ‘임진강에 상처를 씻다’, 북인, 2017. 등이다.

 

시에서도 대중적으로 낯익은 작품이 신동엽의 금강이다. 금강은 48백행에 이르는 장편 대서사시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종횡으로 개관한다. 외국의 경우 내가 읽은 것만을 예로 든다면 러시아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과 표제는 아닐지라도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 있는데 미시시피강유역을 따라 펼쳐지는 아이들의 흥미진진한 모험과 여행기를 다룬다.

 

음악은 또 어떤가. 체코의 국민 음악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몰다우강과 윤심덕의 사의 찬미로 번안 된 루마니아 이바노비치의 다뉴뷰강의 잔물결등은 강의 인문 지리적 역사성이 동서를 떠나 보편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큼 강 혹은 물이 인간의 삶과 생존에 밀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생명체의 기원이 물이며 인간도 양수(羊水)’에서 유영한 유토피아의 추억이 있지 않은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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