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서연 청주 경산초 보건교사
[동양일보]‘꼬끼오! 찌짓! 찌짓! 삐이~호릿!...... 꼬끼오! 삐이~호릿! 구구 구구구.......’
아침이라고 온갖 새들이 깨어나 지저귀는 틈 사이로 수탉이 목청껏 울어대는 이곳은 옥화자연휴양림 캠핑장이다. 새들이 단체로 깨우는 것은 귓등으로 흘리며 잠을 더 얹어 잘 수 있는데 고작해야 한 마리인 게 분명한 닭이 5분마다 소리 높여 울어대는 데는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밤사이 타프 위에는 솔잎이며 참나무 잎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누워 있고, 시원하게 불어대는 바람에도 이름 모를 벌레 두세 마리는 내 집처럼 편안하게 꼬물대며 텐트를 기어오르고 있다. 집 안에서 이 녀석들을 발견했다면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인상을 쓰며 창밖으로 냅다 던져버렸을 테지만 이곳에서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
‘너 왔니? 잠시 놀다 가렴’
벌레와 가벼운 인사를 하고 나서 세수를 하러 가는 참인데 와장창! 타프를 받치고 있던 폴대 하나가 바람에 쓰러지면서 텐트 옆에 놓인 코펠들과 부딪혀 큰 소리를 냈다.
어제 오후에 혼자 도착해서 사이트 바로 옆 두툼한 나무 기둥에 줄을 매고 어찌어찌 대충 타프를 쳐놓고 원터치텐트를 펼쳤더랬다. 다시 폴대를 일으켜 세우고 좀 더 단단하게 팩을 박은 다음 스트링을 걸었다.
날이 뜨거워지기 전에 산책하고 싶은 마음으로 서둘러 발길을 재촉한다. 드문드문 작은 별장 같은 숲속의 집들을 지나 키 큰 메타세콰이어 덕분에 빛이 가려진 오솔길에 접어드니 호젓한 분위기에 잡념이 사라진다. 커브길을 지나서 야외수영장이 보일 때쯤 문득 발끝마다 채는 풀이 있음을 느낀다. 무심결에 밟지 않으려고 은근히 피해서 걸었는데 걸음을 멈추고 보니 군데군데 죄다 질경이다.
다른 풀들은 길 양쪽에 자리 잡고 보란 듯이 쑥쑥 자라고 있는데 어째서 질경이는 길바닥에 자리를 잡고 납작하게 살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한 달 전 전북 덕유산자연휴양림 산책로를 걸을 때도 유난히 많이 보였던 풀이 질경이였다.
질경이는 이름처럼 질긴 풀이다. 풀 전체가 질긴 것은 아니고 질긴 줄기 위로 둥글고 부드러운 이파리에 치실 같은 잎맥이 세로로 펼쳐져 있어 어지간히 밟혀도 쉽게 죽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풀들처럼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같이 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몸이 밟힐 줄 알면서도 오솔길 바닥 위에서 굳이 외롭고 처절한 삶을 자처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캠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작년에 친구에게 선물 받은 <풀들의 전략>이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소중한 책이라고 아껴 읽다가 일상에 쫓겨 미루어 둔 책이었다. 질경이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길바닥이 최적의 터전이라고 했다. 낮은 몸을 하는 질경이로서는 다른 풀들 사이에 끼어 살면 빛 한자락 구경하기 쉽지 않을 터, 풀들끼리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자신만의 공간에서 찬란한 햇빛과 바람결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가며 길 위의 삶을 나름 잘 살아내고 있다는 얘기였다. 몇 번 밟히면 살아남지 못하는 다른 풀들과 달리 부드러우면서도 질겨서 잘 휘는 잎과 줄기 덕분에 질경이의 몸은 꺾이지 않고 다만 맡길 뿐이었다. 질경이만의 독특한 삶의 전략을 알고 나니 얼마나 밟혔으면 저렇게 질겨졌을까 하는 안쓰러움이 사라지고 그저 놀랍고 사랑스럽고 어여쁘다.
무겁게 짐 싸 들고 집 나가서 좁은 텐트 하나 쳐놓고 소꿉놀이하듯 밥을 해 먹으면서도 어디선가 핀 꽃향기를 실어다 주는 바람결과 꺼칠하고 단단한 나무껍질의 촉감,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포르르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새 소리가 좋아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초보 캠핑족인 나도 조금은 길 위의 질경이를 닮은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