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김미나 기자]코로나19로 위로가 필요한 시기, 높고 푸른 가을하늘처럼 눈부신 1권의 동시집과 1권의 동화책이 눈길을 끈다. 두 권 모두 어린이들을 위해 기획돼 출간됐지만 오히려 어른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동시와 동화 속에 담겨 있는 인생의 가치와 삶의 진리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리듬처럼 경쾌한 전병호(67·청주시 서원구) 시인의 씨앗동시집 <민들레 씨가 하는 말>과 새를 통해 우리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이사람(52·서울시 성북구)의 <새들의 세탁소>는 이 가을, 부담 없이 읽고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양식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씨앗동시’ <민들레 씨가 하는 말>
전병호 시인의 <민들레 씨가 하는 말>은 ‘씨앗동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추구한다.
시인이 직접 만들어냈다는 ‘씨앗동시’라는 말은 단순명쾌성을 살려 짧고 쉽고 함축적이고 리듬이 있으며 감동을 주는 메시지와 이미지를 담은 시를 일컫는다.
책 속의 시편들은 모두 4행 이내로 구성돼 간결하다. ‘씨앗’처럼 작지만 단단하고 속이 꽉 차 있다. 여기에 유머와 위트, 상상력이 더해져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누구도 가까이 오지 말아요./온몸에 침을 꽂고 있어요’-선인장 전문
‘꽃을 만졌더니/내손에서 향기 난다.//만나는 친구마다/손잡아 주어야지- ‘꽃향기’ 전문
책에는 이처럼 한 눈에 들어오면서도 시인이 하고 하는 말이 명쾌하게 전해지는 74편의 ‘씨앗 동시’가 실렸다.
김경흠 평론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미처 생각할 수 없는 착상 또는 성찰을 통해 가장 짧은 말로써 가장 긴 문장을 능가하는 원리나 화두를 세상에 던지는 것, 즉 이 책의 시들은 아포리즘 형식의 동시로 규정할 수 있겠다”고 평했다.
전 시인은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 양식을 실험해 보기로 했다”며 “한 눈에 쏙 들어와서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시, 시 구절이 자꾸 떠올라서 마음으로 되새기게 되는 시, 그래서 시를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시를 한 편만 읽은 사람은 없는 시, 그런 시를 쓰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1977년 제천 입석초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6년 경기 평택 군문초 교장으로 퇴직해 39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가 당선된 이후 동시집 <백두산 돌이 따뜻하다>, <봄으로 가는 버스>, <들꽃 초등학교>, <아, 명량대첩!> 등을 펴냈다. 방정환문학상, 세종아동문학,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스토링. 93쪽. 1만1000원.
●새들이 말하는 ‘삶’ <새들의 세탁소>
“새들은 날개를 수선하기 위해 어디로 갈까?”
작가는 새들에게도 그들의 날개를 수선하는 곳이 있다고 믿으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곳은 바로 새들의 세탁소. 그곳에서는 오랜 날개 짓으로 늘어난 새들의 날개 단을 줄이기도 하고, 다친 곳을 줄이기도 한다.
동화 <새들의 세탁소>는 새들의 낡거나 다친 곳을 고친다는 내용이지만, 하나 더 들어가 보면 결국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새들의 삶을 통해 인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문체로 쓰여졌으나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존재를 돌아보게 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인형 마로이다. 새들의 세탁소에서 만난 노파로 부터 자신이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졌는지 알게 된다.
태어나는 모든 것은 그만큼의 공이 들여지지 않으면 태어나질 수 없다.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공들여 만들어진 인간이나 마로나 새나 모두에게는 끝이 있다. 새들은 날개를 더 이상 고치지 못할 때 날지 못해 일생이 끝난다. 마로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끌어다 모아 얽어맨 나도 언젠가 때가 되면 다 허물어져 빈 들판에 흩어질 거란 것을. 그리고 먼 훗날 하얀 들깨 꽃으로 다시 피어나고, 저녁 강에서 어린 붕어가 되어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다 잠이 들 거라는 것을.”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이사람의 본명은 이상윤씨. 현재 서울 광영고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중이다.
2013년 <시산맥>에 ‘관절염’외 4편으로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4년 21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동화 부문에 ‘르네의 편지’가 당선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엄마 생각’이 당선됐다. 동시집 <아빠는 쿠쿠 기관사>를 펴냈다. 인문MnB. 65쪽. 1만원.
김미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