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형기 건국대 교수

안형기 건국대 교수

[동양일보]2020년 7월 1일 인구50만 이상 도시를 특례시로 지정하는 내용이 담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21대 국회에 다시 제출됐다. 새로운 개정안 입법예고안에서는 인구기준이 기존 100만명에서 50만명으로 대폭 완화됐다. 하향된 특례시 지정 인구기준을 충족하는 지자체들이 기대감에 부푸는 것은 당연하다. 특례시가 되면 다양한 분야에서 광역자치단체를 거치지 않고 정부와 직접적 교섭을 할 수 있어 신속한 정책결정권한과 자율권을 동시에 획득하게 되니 꿩 먹고 알 먹기 아닌가. 또한 지금까지 광역자치단체의 승인을 받아 발행하던 지방채를 지방의회 승인만 받고 발행할 수 있고, 택지개발지구 지정, 도시재정비 촉진지구 지정 등의 권한도 갖게 된다. 특례시가 되면 기초지자체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광역시급의 행정·재정 자치권을 갖게 되는 등 일반 시와 차별화된 법적 지위가 부여된다.

인구50만 미만의 도시들(시흥, 파주, 김포, 의정부, 구미 등)이 특례시 지정 요구 물결에 동참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온통 특례시 공화국(21개 특례시 요구)이 될 판이다. 현행 지방자치법 175조는 서울특별시·광역시 및 특별자치시를 제외한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에 관계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특례를 둘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례시는 기초자치단체 지위를 유지하면서 늘어나는 행정수요에 맞게 다양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자치권한을 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광역시가 없는 충북도의 입장에선 청주시에 대한 권한 축소와 일선 시군 간의 예산 불균등 배분 등을 우려하는 눈치다.

특례시 제도는 지방행정체제의 단층화·통합화라는 시대적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특히 최근 진행되고 있는 대구광역시‧경상북도, 광주광역시‧전라남도의 초광역화 통합 논리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특히 광역시가 없는 충북도의 경우 청주시에 대한 도의 권한 축소와 일선 시군간의 예산 불균등 배분 등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청주시가 광역시 수준의 행ㆍ재정적 권한에다 현재 도세나 광역세로 되어 있는 취득세나 등록세까지 가져가게 된다면 도내 지역 간 갈등의 증폭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보편·평등·균형 정책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지방자치의 이념을 살린다면 ‘잘사는 도시’를 특례시로 하기보다는 ‘소멸위기의 자치단체’를 특례군(혹은 시)로 지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지 모른다.

전국 시도지사들은 지방자치법 개정안에서 논란이 되는 특례시 조항을 빼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현 전북 도지사인 송하진 시도지사협의회장은 대통령에게 자치분권, 균형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지방자치법 개정안 통과 및 특례시 조항 삭제·분리를 공식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충북의 경우 강원과 함께 특별자치도로 갈 것인지, 아니면 대전 세종 충남 등 인접지역들과 함께 묶어 초광역도로 할 것인지 선택을 하여야 한다. 차라리 잘사는 시를 더 잘 살게 하는 특례시 보다는 소멸 위험군을 특례군으로 지정·육성하는 것이 지방화시대의 흐름에 부합한다고 본다. 특례시 지정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광역자치단체장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채 ‘지방자치법 개정안’의 국회통과는 기대난망일 것이다. 더구나 수도권에 맞선 광역 행정통합(광주 전남,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등)에 관한 논의까지 나오는 판에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자칫 누더기 입법신세로 전락할 우려마저 있다. 해법은 너무 자명하다. 일단 인구50만이든 100만이든 특례시 추진을 중단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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