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원 청주시 내덕2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정예원 청주시 내덕2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동양일보]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나팔꽃을 키웠다. 긴 네모 모양의 파란색 화분에 나팔꽃을 심어 창가에 두고 잎 모양이나 덩굴의 모양을 관찰하는 수업을 했다. 주번이 되면 주전자로 물을 줬던 기억이 난다. 활짝 핀 나팔꽃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때만 해도 이 나팔꽃은 내 스스로가 가꿔 피워낸 거라고 믿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자 학교에서 화분을 가져오라고 했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심고 남은 고추 모를 받아왔다. 나팔꽃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잘 키울 자신도 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의 고추 모는 비실비실 웃자라다가 힘겹게 꽃을 한두 개 피워내고, 손가락 반 마디만 한 풋고추 하나를 마지막으로 장렬히 산화했다. 할아버지께 고추 모의 마지막을 전하며 들은 재배 비법은 ‘고추는 농약을 좀 쳐야지 잘 자란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그 이후 내 손에 들어오는 식물들 중, 해를 넘겨 살아남은 식물은 없었다. 같은 집에서 키워도 부모님 손을 탄 식물들은 건강하게, 심지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있는데 내 방에 데려온 식물은 하루가 다르게 죽어갔다. 다 죽어가다가 다시 부모님 손으로 돌아가면 다시금 살아나는 것이, 역시 나는 식물과 맞지 않는다 싶었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에서 살게 되면서 우연찮게 이곳저곳에서 식물들이 들어왔다. 죽을 때 죽더라도, 그때까지라도 잘 데리고 있자 싶어 베란다에 늘어놓고 생각날 때 물을 주곤 했다. 곧 죽겠지 했던 식물들은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화분이 터져나갈 것 같아 할 수 없이 분갈이를 했다. 분갈이 후에라도 죽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싶었지만 아직까지는 살아있다.

분갈이를 하면서 화분 개수가 두 배가 됐다. 신혼집 베란다야 빨래나 겨우 널 수 있는 크기이니 사람이 다닐 자리도 없게 됐다. 지날 때마다 화분이 발에 자꾸 채이니 불편하여 마트에서 2단 선반을 사와 창가에 죽 늘어놓았다. 신혼집은 저층이다. 베란다 창가에 늘어놓으니 사생활 보호도 되는 것 같았다.

베란다에 생긴 작은 정원을 가장 반긴 것은 두 반려 고양이였다. 무심한 듯 이파리를 톡톡 건드리고, 화분 옆에 웅크리고 해바라기를 하곤 한다. 나는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워지고 나서야 해 좋은 날 화분 곁에서 잠이 든 고양이를 구경하며 어느샌가 그 화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잎에 하얗게 먼지가 쌓인다거나 아래쪽 잎이 마르거나 하는 것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려 먼지를 떨어내다가 어느 날부터인지 헝겊을 들고 하나하나 잎을 닦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모두가 집 밖에 나갈 수 없었던 엄중한 코로나 시기, 누군가는 400번을 저어 달고나 라테를 만들고, 누군가는 천 번을 저어 계란말이를 만들었다는데 나는 무성한 금전수 이파리를 하나하나 헝겊으로 닦으며 온 여름을 보낸 셈이다.

이전에는 경험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던 시기를 지내며 나는 비로소 초록을 즐기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이는 코로나 이전에는 전혀 와닿지 않았던 즐거움이었다. 이 작은 풀들이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갑갑함이 덜어지다니. 전에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단어조차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보면 이런 것들이 ‘소확행’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2020년은 그 어느 때보다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다. 매일매일 전에 없던 일들을 겪으며,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다는 생각조차 든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우리의 마음에는 코로나로 인한 짙은 어둠이 드리워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마음속에 갈 곳 없는 화를 키우고 있다. 그나마도 적었던 마음의 여유가 이제는 흔적조차 없어진 셈이다. 없어진 여유 대신이라도 작은 화분을 가꿔보는 것은 어떨까. 그 작은 초록을 가꾸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작은 화원이 새로 들어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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