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그림 형상전&법화불화전 감상문
[동양일보]충북대 명예교수 김공수(80) 박사와 젊은 김선우(24) 화가의 공동 작품전시회 ‘빛 그림 형상전&법화불화전’이 지난 5~7일 ‘노소동행(老小同行)’이란 주제로 청주예술의전당 소1전시실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동양포럼이 국제적으로 추진하는 3세대(청소년세대·중장년세대·노숙년세대)의 상화·상생·공복을 실현시키려는 기초 작업으로써, 3세대가 서로 존엄하는 사회 만들기 운동의 일환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은 그것에 관련된 감상을 모은 것이다.
●행사의 취지와 작품에 대한 소감
김용환 교수=코로나 사태로 연기되었던 ‘노소동행(老少同行)’ 첫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동양포럼 활명삼소방에서 추구하는 노숙년세대와 청소년세대가 함께하는 세대 공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노년세대 김공수 교수와 청년세대 김선우 작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기획이었다.
김공수 교수님의 내빈소개와 나의 축사 그리고 김선우 작가 작품에 대해 미술비평을 한 원혜영 박사의 작품해설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 전시는 동양포럼 주최, ‘노소동행’ 주제발표의 생활실화 의미도 담겨있다. 노숙년세대 김공수 교수님과 청소년 세대 김선우 작가가 연대함으로 중장년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보여준 무대였다. 이처럼 활명연대를 통한 세대상생의 미래공창을 함께 열어 갈 수가 있다.
이번 노소동행 전시회 출품 가운데 눈에 띈 작품은 ‘비상’이라는 제목의 김공수 충북대 명예교수의 작품이다. 세종특별시 개발현장에서 미닫이 문 밖 틈새 사이에 비친 찢긴 종이를 사진으로 촬영하여 한지에 인화함으로 생명이 비상하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여기에는 한지라는 재료와 인화기술, 사물형상이 빚어낸 종합예술 가치를 엿보게 한다.
문 밖 틈새 사이를 가로지르는 시선, 한지인화 노력, 사물형상이 아우러져 빚어낸 세계에 하나 뿐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고 느낀 것은 ‘근원적 생명력의 비상’이다. 현상을 떠받드는 근원적 생명력의 존재/그것을 캐치하는 시선/사물후광이 빚어낸 환희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었다.
어떠한 생명이든 무한고요와 무궁 조화의 자리가 있게 마련이고, 그 앙상블이 환희를 창출하기에 기쁨의 만나를 맛볼 수 있다. 청주시 사진작가께서 이 작품을 보고 소장하고자 구매했다니, 유사한 공감을 나눈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김선우의 법화불화전에 전시된 작품 가운데 눈에 띈 작품은 법신불을 작품이다. 김선우 작가의 마하마야1에 그려진 ‘법신불(법신-보신-화신 일여)’ 불화에서 ‘대열반’이 법신으로 나타남을 조우함으로, ‘상락아정’의 근원적 생명력을 체화하는 계기를 만들어 잔잔한 감동이 일상으로 살려지게 되었다.
‘법화경(法華經)’의 ‘무량수품(無量壽品)’에 ‘내가 부처가 된 이후로 지내온 많은 세월은 한량없는 백천만억겁 아승지로다’라는 표현이 발견된다. 석가세존이 공겁초에 깨치신 이름이 ‘위음나반인’이셨다. 또한 중생 제도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셨지만, ‘실제로 항상 시방에 설하신다’고 전한다.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냈지만 미래겁이 다하도록 시방법계에 두루 계시며 항상 설법하신다는 뜻으로 새길 수가 있다. 이는 기독교인이 주님이 항상 나와 함께 사신다는 맥락과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시방이 정토 아닌 곳이 없음이다. 일찍이 서산대사께서 ‘봄이 오니 풀이 저절로 푸르군’는 뜻의 시를 남겼는데, 김선우 작가도 ‘저절로’ 법신을 알아차리고, 법신-보신-화신의 일여경지를 전시회 출품작품에 담았으니 스스로 터득한 그 경계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할 것이다.
야규마코토 교수=이번에 ‘노소동행’ 작품전을 아주 재미있게 감상했다.
지금 생각해보고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김공수 화가가 사진기를 사용해서 실제 풍경이나 사물을 찍고 환상적인 그림을 만들어내시는데 원래 ‘사진’이라 함은 베낄 사(寫)와 참 진(眞)인 것인데 화가의 손으로 현실은 전혀 현실답지 않는 환상, 환각으로 변하는 것이다. ‘사진’은 더 이상 사진이 아니라 ‘사환(寫幻)’이 된다는 전환, 변화의 재미가 있다.
한편 김선우 작가의 그림은 대상의 배경이나 세부를 거의 그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김선우 화가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이런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지만) ‘인상파’라는 말이 떠올랐다. 미술사에서 말하는 이른바 인상파나 인상주의의 기법을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배경이나 사물의 세부를 거의 생략하고 마음에 찍힌(印) 모양(象)만을 뽑아서 바로 그리는 인상파. 곰곰이 생각해보니 꿈에서 보이는 사물의 모습과 비슷하다. (세부와 배경까지 뚜렷한 꿈을 꾸시는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만) 그렇게 보면 김선우 화가의 그림이야말로 마음에 비치고 찍힌 참모습을 (기타의 잡다한 부분들은 모두 생략하고) 그린다는 의미에서 ‘사진(寫眞)’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사진기를 써서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그림을 나타내는 나이든 화가 김공수와 아주 추상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참됨’을 그려내는 젊은 화가 김선우. 이 대비가 매우 흥미로운 작품전이었다.
김연숙 교수=동양포럼의 노소동행 기획에 부응하여, 노년을 대표하는 작가로 김공수 충북대 명예교수님과 청년을 대표하여 김선우 작가가 동행했다. 노년세대와 청년세대의 작품이 한 자리에 펼쳐진 것만으로도 감사하였고, 감동이었다. 사진판화를 통해 노년의 삶을 활기차고 보람차게 꾸려 가시는 모습 앞에서 중장년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막연하게 느껴졌던 나 자신의 노년의 삶의 비전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텅 빈 자신의 전시장을 홀로 돌아보면서도 한바탕 리듬을 타면서 즐거워하는 김선우 작가의 모습은 노소동행에 대한 감사의 몸짓이 아닌가 한다.
부디, 노소동행 기획이 일회성이 아니고, 앞으로도 매해 시화전이나 풍류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최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 전반에 노년세대와 청소년 세대 간의 깊이 있는 교류와 이해의 장을 넓혀갈 수 있기를 바라며, 감사드린다.
●젊은 김선우 화가를 격려하는 말씀들
5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된 공동작품전시회 개막 후에, 몇몇 활명삼소방 대화참가자들이 은사 김용환 박사의 충북대 교수 정년퇴임을 기리는 사은의 정을 담아 제자 김연숙 교수가 마련한 만찬회에 참석하고, 그 자리에서 김연숙 교수의 따님인 김선우 화가의 성장과 성취를 격려하는 뜻에서, 80대 노숙년세대 3인과 50~60대의 중장년세대 5인이 각각 소감을 나눔으로써 3세대 상호 존엄의 시범을 보여주었다.
김태창 주간=비대면이 고착되어가는 세태 속에서 전시회를 계기로 새삼 ‘대면’의 귀중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오래 만에 만난 활명삼소방 회원들과 함께 젊은 화가의 그림들을 상세히 돌아보고 나서 대화를 나눴다.
우선 활명삼소방이라는 장에서 맺어진 인연을 통해서 우리들의 ‘만남’이 있게 되고, 김선우 작가의 그림들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원혜영 박사님의 훌륭한 해설이 나오고, 이어서 우리의 진솔한 감상 감식의 나눔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만남과 거기서 일어난 변화와 그 변화가 여러 다른 인연들을 살려낸다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이치를 실감하게 된다. 김선우 작가와 불교의 값진 ‘만남’이 있어서 ‘불도화(佛道畵)’를 그리는 모티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만남’이 서로 아우러지는 가운데서 나는 김선우 화가의 그림들 속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귀중한 주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9월 24~25일 활명삼소방에 김용환 교수님이 올리신 글을 읽고 그 의미를 심사숙고했던 ‘도태(道胎)’(도를 잉태함)와 ‘출태’(잉태한 도를 드러냄)의 진솔한 현현에 감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김선우 작가의 삶과 나이 듦을 통해서 몸과 마음과 얼 안에 잉태된 도=진리=생명이 어떤 모습으로 출태=표현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평가를 받게 될 것 같다. 우리가 모두 활명삼소방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서, 그녀의 미래에 기대를 걸고 격려하자.
이렇게 서로 위하고 또 위하는 마음가짐을 청주 출신 의암 손병희는 ‘위위심’이라고 해서 ‘자리심’과 구별했다. 바로 이 위위심을 가지게 될 때의 놀라운 효험을 9월 6일자 김용환 교수님이 자신의 글에서 해설해 놓았다. 활명삼소방 카톡방은 가까운 곳에 있는 지혜의 보고다. 서로가 위위심을 가지고 성심으로 대하게 되면 거기서 서로 존엄하는 언행과 태도와 습관이 형성될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