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스즈카의료과학대학 강사(鈴鹿醫療科學大學)

오오하시 켄지 스즈카의료과학대학 강사
오오하시 켄지 스즈카의료과학대학 강사

 

[동양일보]●지상 포럼 ‘인간의 존엄’을 다시 생각한다 1-2

인간존재에 고유함과 동시에 특수한 상호관계성은 사회적· 존재적 관계성과 역사적· 생명연쇄성이라는 수평축과 수직축의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 수평축을 왕양명(王陽明)은 천지만물· 인간은 모두 ‘일기유통적(一氣流通的)’, 즉 ‘기(氣)’가 서로 통하고 서로 감응하는 데서 일체(一體; 하나로 이어짐)로 본다.

그것은 ‘한 기운이 유통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이고, 거기에 경계나 서로의 간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다’(<전습록傳習錄> 하권). 만물은 모두 일체적인 ‘기’로 맺어지고 있다. ‘기’의 상호연관· 감응관계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생기· 작용 활동한다.

수평축의 상호관계성과 깊이 관련되는 ‘기’는 생명력· 활동력임과 동시에, 천지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생성· 생명· 활동의 원리다.

한편으로 ‘기’는 한 찰나의 마음의 작용=기(機; 기세)로 바깥(자기 이외의 사물· 사태· 사람)을 향해 발동하는 점에서, 끝없이 ‘사이’적인 성격을 가진다. 야스퍼스는 니체의 말을 빌려 “진리는 두 사람의 ‘사이’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철학의 목적에는 인간상호의 관계성인 교제(코뮌이카치온) 속에서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인간은 혼자서는 인생의 의의에도, 참된 자기에도, 진리에도 도달할 수 없다’(<철학입문哲學入門> 구사나기 마사오草薙正夫 역).

공자의 ‘인(仁)’을 두 사람의 인간 교제로 이해하는 야스퍼스의 ‘<사이>로부터’의 철학은 동아시아 세계가 공유하는 ‘기(氣)’의 세계관· 인간관과 통한다. ‘기’가 수직축의 관계성으로 작용할 때, 그것을 유교는 ‘효(孝)’라고 부른다.

죽음을 향하는 존재인 ‘노(老)’와 삶을 향하는 존재인 ‘자(子)’가 합친 글자인 ‘효(孝)’는 죽음과 삶이라는 상반하면서도 상통하는 ‘기’의 역사적 연속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인 E. 에릭슨이 ‘generate(아이를 낳는다)’와 ‘generation(세대)’을 합체시킨 낱말인 ‘Generativity’가 의미하는 ‘생명연속성’, ‘생명연쇄성’ 만큼 ‘효’의 방식과 작용을 적절하게 말해준 말은 없다.

서양 근대적 ‘존엄’ 개념에 의거하는 당연한 귀착으로 조만간 일본에서도 인정될 것으로 보이는 존엄사· 안락사의 문제점은 하늘에서 주어진 ‘목숨’을 자기 혼자의 소유물로 여기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해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인간의 ‘목숨’은 반드시 개인적인 것에만 수렴되지 않는다. 인간의 ‘목숨’과 깊이 관계되는 ‘기’와 ‘효’는 모두 자기가 아닌 ‘타자’를 대전제로 하는 ‘사이’적인 개념이다.

개개인의 ‘목숨’은 개체의 틀을 뛰어넘는 것이며, 만물 중에서 유일하게 선택받아 대우주(신)의 자기인식이라는 역할을 맡은 인간만이 ‘목숨’의 가치를 타자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목숨’을 자기와 타자를 맺는 ‘사이’적인 것으로 자리매기는 것,

이러한 우주론적임과 동시에 ‘사이’적인 ‘목숨’의 이해에 입각한 ‘인간의 존엄’ 개념이야말로, 지구환경의 파괴, 과학기술의 폭주, 종교· 민족 간의 대립, 가속화되는 분단· 격차사회, 구미에서 과격화하는 테러의 연쇄 등 현대문명이 직면하는 중요문제를 해결로 이끄는 사상· 철학의 연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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