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보경 청주시 서원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권보경 청주시 서원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동양일보]깨진 자동차의 유리창을 방치하면 너도나도 도덕적 죄의식 없이 돌을 던지거나 훼손에 동참해 자동차가 더 망가진다는 이론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이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의 뉴욕. 당국이 길거리의 지저분한 낙서나 위험할 정도로 더러운 지하철 등을 방치하자 범죄는 늘어나고 기업과 중산층은 교외로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1995년 뉴욕시장에 취임한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는 강력하게 뉴욕시 정화 작업에 들어가 주요 거점에 CCTV를 설치해 낙서한 사람을 끝까지 추적했다. 또 지하철 내부 벽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범죄를 집중 단속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시민들의 행동이 바뀌면서 도시의 면모도 제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노숙인으로 붐비던 서울역 부근은 마구 버려진 담배꽁초와 쓰레기로 매일 몸살을 앓았지만 화분으로 꽃 거리를 조성한 후부터 깨끗한 거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망가지는 것처럼, 흉물로 변한 건물은 범죄 장소로 악용될 수 있고 나아가 도시 전체를 망가뜨리게 된다. 이처럼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듯한 사소한 일이 작게는 한 개인의 인생 전체의 판도를 바꿀 수 있고, 크게는 국가의 운명을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의 기본적 품성인 도덕과 윤리의 창이 깨진 채로 버려두면 삶의 전반이 황폐해지고, 국가 공동체는 법과 정의와 질서의 창을 깨진 채로 방관하면 체계가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여행지에서 수십 년째 방치된 흉물스러운 건물과 마주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을 수는 있지만 아마도 그곳을 다시 찾고 싶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기억할 때 가장 먼저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듯 도시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바로 건물이다. 도시경관 디자인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이유다. 이렇듯 깨끗한 환경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확장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깨끗한 곳은 더 깨끗해지고, 더러운 곳은 더 더러워진다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작은 골목길 하나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의 전 근무지였던 수곡 1동에서는 쓰레기가 쌓여있던 낡고 오래된 동네의 집 담벼락에 그물망을 설치하고 그 앞에 꽃 화분을 조성한 후 전반적인 환경개선 효과를 봤다. 이곳은 방치된 곳이 아니라 계속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좁고 어두운 골목길에 로고젝터를 설치하고, 눈에 잘 띄게 쓰레기 투기 금지 안내 문구 등을 게시했더니 쓰레기 투기가 현저히 감소했다. 작은 골목길 하나부터 가꾸고 공원의 후미진 곳이 깨끗해지니 마을 전체 이미지가 좋아진 것 같았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주는 교훈을 기억하자.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