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예술인이 함께하는 서산문화예술의 새 지평 열겠다”
[동양일보 장인철 기자]“그동안 시민들에게 진 빚을 갚는다는 각오로 시민과 문화예술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서산의 가치가 되고 지역발전의 동력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규선(72·사진·서산시 읍내동) 서산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는 전직 서산시장으로서 현직 시장의 공약사업인 문화재단을 이끌게 돼 걱정이 앞선다.
지역성장의 동력인 석유화학, 자동차산업의 발전과 조화를 이루는 문화예술 진흥은 시장 재임시에 못다 이룬 것이기에 그 간절함이 남다르다.
서산의 정체성을 바르게 정립해 시민들의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서산의 가치를 새롭게 창조하겠다는 열정이 문화재단 대표 모집 응모에 대한 전직 시장의 망설임을 꺾은 동기다.
‘자수성가한 정치인의 아이콘’인 조 대표는 서산출신 문화예술인 기념사업을 앞장서 추진해 온 문인이다.
서산중앙고를 졸업하고 서산군새마을지회장, 대전일보 기자로 근무하던 1990년대, ‘몽유도원도’를 그린 조선 최고의 산수화가 ‘안견’이 서산출신임을 확인하고 ‘몽유도원도 반환운동’과 안견기념관 건립을 주도했다.
조선시대 가야금 산조와 병창의 대가로 알려진 심정순(1873~1937) 기념비 비문을 짓고, 윤곤강 시인의 ‘나비’ 시비 건립에 앞장섰다.
‘청춘예찬’으로 잘 알려진 음암면 출신 우보 민태원(1984~1934)선생 기념비 건립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모두 고향을 떠난 민 선생의 후손을 수소문해 대구에 사는 딸을 찾았는데, 반갑게 달려 온 딸이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장의 직인 찍힌 아버지 수배전단을 품고 왔다.
당시 일곱 살이었던 그녀가 한밤에 벽에 붙은 아버지 수배전단을 떼어 고이 간직해 온 것이 민 선생의 유일한 사진이다.
민 선생의 문학비 흉상은 이 사진으로 제작했다.
시장 재임시에도 시립미술관, 창작예술촌 건립 등 역사, 문화사업을 역점적으로 추진해 국비를 확보하고 건축설계 공모도 완료했는데 안타깝게 중단됐다.
아쉬움이 많은 조 대표는 짧은 임기(2년)동안 평소 소신대로 ‘지금 이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다.
“먼저 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저를 대표이사로 뽑은 맹정호 시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올해 첫 업무를 시작한 만큼 시민과 문화예술인이 마음껏 끼를 발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주력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큰 사업인 축성 600주년을 맞은 해미읍성축제와 안견미술제를 시민주도로 성공 개최하고 창작예술촌, 생활문화센터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시민 눈높이에 맞춰 개발할 계획이다.
특히 내포문화권의 대표적인 읍성이자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한 천주교 성지인 해미읍성의 가치 재발견과 새로운 도약을 목표로 축제 프로그램 개발 공모를 추진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내적으로는 문화행사 주도, 문화정보서비스 제공, 문화공간 운영 역량을 강화해 서산의 문화가 자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방침이다.
할 일도 꼭 해야할 일도 많기에 신생 재단의 발길이 무겁지만 서산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 계승하는 일은 사명감을 갖고 추진하겠다는 각오다.
서산은 백제시대에는 불교유입 경로로 고려시대에는 안향보다 53년 일찍 ‘정신보’가 성리학을 들여 온 한국정신문화의 메카였다. 이후에도 안견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했다.
이들 문화예술인들을 알리고 예술혼을 기리는 사업이 서산의 문화적 경험을 축적하고 역량을 키우는 정도란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이같은 노력으로 축적한 경험과 역량이 새로운 문화지도자 양성의 자양분이 되도록 하는 것이 선배 문화예술인의 책무라고 믿는다.
“평생을 지금 만난사람, 지금 하고 있는 일, 지금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동안 서산시민들로부터 차고 넘치도록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뿐입니다”
조 대표는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경륜을 온전히 시민들에게 되돌려 드리기 위해 시민과 문화예술인이 말을 경청하고, 예술이 꽃피는 행복한 문화서산을 만들어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가족으로 아내 한명숙(63)씨와 딸 세현(38·한서대어학교육원 한국어 강사), 아들 창현(35·변호사)씨가 있다.글·사진 서산 장인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