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응 충청북도문화원연합회 회장 · 수필가

김장응 충청북도문화원연합회 회장 · 수필가

[동양일보]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셨지만 50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나는 대교장(大校長)이 계시다.

1976년 3월 잔설이 가시지 않은 추운 날씨로 기억된다. 이 무렵에는 학교가 교원들 인사이동으로 썸썽글러 할 때인 3월 2일자로 조중협 교장선생님께서 증평초로 새로 부임하셨다.

나는 당시에 이 학교 평교사로 6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부임하시자마자 3학년부터 5학년까지 3개 학년에서 야무지고 빠릿빠릿하게 생긴 아이들 30여 명을 모아 야구부를 창단하셨다. 감독도 청주에서 근무하시던 지금은 고인이 되신 오용균 선생님을 특별 초빙했다.

운동장 서편쪽에 야구 백보드를 설치하고 공이 뒤로 튀어 넘지 않게 하는 가림막을 높이 20m, 너비 30m 정도로 설치해 본격적인 야구부 훈련이 시작됐다. 현재 한화이글스에서 투수코치로 있는 좌안 송진우 선수가 당시 증평초 4학년으로 야구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그후 2009년 2월 23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와 한화의 경기에서 국내 야구사상 최고령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야구선수로의 생활을 마감하는 은퇴경기를 가졌다. 증평초에서 야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발탁하신 은사이신 조중협 교장선생님께 은퇴경기 시구를 하도록 주선한 가슴 뿌듯한 일화도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만약 조중협 교장선생님께서 증평초에 야구부를 창단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송진우 선수′가 과연 탄생할 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교장선생님은 매주 월요일 직원조회 시간이면 꼭 교무실 소칠판에 유명 인사들의 명언이나 귀감이 될 만한 글귀를 직원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교장선생님이 매 주마다 주어 진 많은 글귀 중 지금도 잊지 못하는 명언이 하나 있다.

“1년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꽃씨를 심고, 10년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나무를 심고, 100년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사람을 심는다.”

맞는 말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의 가치를 알고 사람으로의 도리를 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10년, 20년이 아니라 100년은 걸린다는 말로 그래서 교육을 “100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는 말이 생긴 것 같다.

한번은 교장선생님과 같이 근무하면서 직원들과의 대화속에 모교인 증평초 1학년(1953년도쯤) 여름에 운동장 끝자락에 30~40m 정도 되는 미루나무 10여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 곳에는 참새가 어찌나 많은지 미루나무 밑에는 새똥이 하얗게 깔려 있었다는 얘기와 한 여름에 콩알만한 우박이 세차게 떨어져 참새가 우박에 맞아 떨어진 것을 사람들이 부대, 양동이, 새숫대야 등을 가져와 주워 갔다는 얘기를 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믿지를 않았는데 마침 조중협 교장선생님께서 그 당시에 교감으로 후문 쪽 사택에 살면서 그 광경을 보았다고 증언을 해 주셔서 그것이 사실인 것으로 판명된 적도 있다.

옛말에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말이 있다. 꽃의 향기, 술의 향기는 백리,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고 조중협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증평초에 근무할 때가 50여년이 거의 다 되었지만 지금도 새록새록 교장선생님의 야구 사랑하는 열정과 막걸리를 좋아하시며 구수한 입담으로 좌중을 웃기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런 교장선생님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닮으려고 내가 교장이 돼 매주 월요일 A4용지 한 장에 좋은 글귀를 만들어 5년동안 계속한 것을 모아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교장선생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라고 생각한다. ‘인향만리(人香萬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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