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인생 31년··· 늦깎이 도민대상 정갑영씨

정갑영씨
정갑영씨

노점서 번 돈 10% 사회 환원 일념서 나눔 봉사 시작
사랑나눔희망봉사회 구성…불우 청소년 급식비·장학금 지원
14년간 초등학교 앞 교통신호등 자처…무료방역도 펼쳐

[동양일보 지영수 기자]노점상을 하며 반평생을 봉사로 점철된 세월을 살아온 정갑영(64·청주시 금천동 풍림아파트) 씨.

정 씨는 31년 동안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쌀과 생필품을 나누고, 한창 꿈을 키울 시기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주며,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선물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금전적·물질적 기부에 그치지 않고 틈만 나면 교통봉사와 방역활동 등 몸으로 하는 봉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런 선행으로 지난해 말 20회 ‘충북도민대상’(선행봉사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충북 증평군 미암리 삼천석군·국가유공자 집안으로 불리는 곳에서 태어났지만 일제강점기와 5.16 군사정권의 토지개혁 등으로 가세가 기울어지자 부모형제 모두 음성군 무극으로 이사, 광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폐광이 되면서 이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정 씨는 “열여덟 살 되던 해 직업병을 앓던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가장이 돼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며 “가진 것 없고 배운 것이 없어 할 수 있는 게 노점행상뿐 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일제강점기 징용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인데도 병들고 거동이 불편한 걸인들을 밥 동냥으로 보살피는 최귀동 할아버지를 직접 봤다. 정씨는 “최귀동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시작한 것이 ‘사랑나눔희망봉사회’”라며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이라고 회상했다. “내가 번 돈의 10%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일념으로 좌판에 모금함을 설치하기 시작한 시기이도 하다.

청주 성안길과 지역 축제 행사장에서 자신의 손수레에 아이스크림·군밤·오징어와 함께 사랑을 팔았다. 궂은 날씨 등으로 벌이가 시원찮은 날에도 손수레 모금함에는 차곡차곡 온정이 쌓였고, 그렇게 마련된 돈은 자신보다 못한 이웃에게 전달됐다.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노점상 26명이 모여 만든 봉사단체 '사랑나눔희망봉사회'도 조직했다. 소년·소녀 가정 등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한 급식비 지원, 장학금 지급, 교통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동양일보와 월드비전이 주최하는 ‘사랑의 점심나누기’ 행사장에서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기도 했다. 2004년부터 15년(7~21회) 동안 시·군을 순회한 덕분에 ‘아이스크림 아저씨’라는 별명도 얻었다.

청주동중과 금천초 앞에서 등굣길 안전을 책임지는 교통봉사도 14년째다. 학교 앞을 쌩쌩 내달리는 차 때문에 횡단보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학생을 보고 '교통신호등'이 되길 자처한 것이다.

등·하교 시간에 하루 500번 인사를 하고 칭찬릴레이를 통해 상품권과 장학금을 줬다. 감사편지를 하고 졸업 후에도 찾아오는 아이들을 보며 봉사 활동 경력의 최고 보람으로 느낀다.

사회적협동조합 '좋은친구들' 회장인 그는 지난해 3월부터 금천동 지역 어린이 놀이터, 공원, 공동화장실 등 방역취약 다중시설에 70여 회에 걸쳐 무료 방역소독도 펼쳤다. 마스크도 무료로 나눠주고, 코로나19 안전수칙에 대한 홍보 전단지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정 씨가 31년 동안 봉사활동을 할 수 있던 것은 가족의 배려 때문이다. 특히 밖으로만 도는 남편을 대신해 아이들을 보살피고 없는 살림에도 가정을 잘 지켜 준 아내 김영숙(61)씨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씨는 금천동에서 ‘풍림떡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착한 가게’로 가입해 수익금의 10%를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해오다 4년 전 건강상 떡집을 그만뒀다.

정 씨는 “건강까지 잃어가며 인내해 준 아내의 눈물과 사랑은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을 것”이라며 “투병중인 집사람의 쾌유를 빌며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남은 생애 동안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고 싶다”며 “진심으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글·사진 지영수 기자 jizoon11@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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