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조 카페 컨설턴트·다락방의 불빛 대표
[동양일보]주변에 사진작가분들이 많은데 초창기의 카메라와 비교해보면 요즘은 카메라가 많이 좋아져서 원화는 화면을 굉장히 정교하게 얻을 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눈처럼 효율적이지는 않아서 카메라로는 하늘의 구름과 나무 그늘 그리고 그 나무 그늘 아래 비스듬히 기대어 누운 사람까지 동시에 눈으로 보는 것처럼 표현하지는 못한다고 하는데, 다른 측면도 있다. 모두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는 포기하고 한 가지에 집중해서 어떨 땐 그런 면이 사진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배경을 흐릿하게 보이게 하고 피사체만 뚜렷하게 찍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사진은 의도적으로 한쪽을 검게 나오게 하고 피사체 일부만 보이게 한다든지 하는 경우이다.
사진 이야기를 했지만, 세상의 이치가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아파트에 거주했을 때 이야기이다.
오래전에 지어진 아파트라 지하주차장이 좁아서 일찍 퇴근하는 날이 아니면 거의 지상 주차를 해야 했던 곳이다.
한밤중에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CD 몇 장을 골라서 주차장에 주차된 차로 가서 듣곤 했는데, 그럴 때면 꼭 캔커피 하나를 챙겼었다. 평소 층간소음 문제로 조심조심 듣다가 차에서 원하는 음량으로 음악을 듣다 보면 가슴이 뻥 뚫린 듯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곤 했는데, 물론 집안에 보유하고 있는 오디오가 훨씬 좋은 것이었지만 그 상황에선 자동차 순정오디오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히고 편안한 자세에서 보이는 자동차 앞 유리 너머의 세상은 또 어떤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빗물에 알록달록 불빛들이 번져 보이는데, 자동차 철판을 타격하는 빗방울 소리와 음악까지 어우러져 모든 것이 완벽한 순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 손을 뻗어 캔커피 한 모금 목구멍으로 넘기다 보면 천국이 여기구나 싶었다. 최고의 바리스타가 좋은 원두를 가지고 최적의 분쇄도, 물의 온도, 추출 시간 등을 고려하여 정성껏 내려준 커피는 아니었지만, 빗소리와 음악, 차창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환상적인 풍경과 함께였으므로 캔커피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커피가 가진 미세한 맛과 향을 혀끝으로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시는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좋은 순간이라면 대중적인 커피라도 충분할 때도 있다.
친구와 함께 LP 구매를 위해 홍대 근처를 갔다가 점심을 먹고 찾은 카페에서 기대하지 않은 맛 좋은 카페라테를 마시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서 그 기억을 가지고 다시 찾은 그곳에서 마신 카페라테는 그때만큼 맛있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큰 기대를 키워가다가 두 번째 그곳에 갔을 때는 ‘나도 모르게 커피의 맛을 분석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원하는 LP를 구한 뒤 친구와 행복한 마음을 나누는 자리에서 마신 꽤 괜찮은 커피와 큰 기대를 하고 커피의 맛을 분석하며 마셨을 때의 만족도가 달랐던 것이다.
초고화질의 영상이 더 큰 감동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세상일도 마찬가지다. 너무 따지지 말고, 너무 분석하지 말자. 흐릿하게 보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