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미영 수필가·씨앤씨 푸른병원 사회사업실장

[동양일보]아프고 죽는 일이 사람이 사는 삶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우리는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그 일은 나랑은 아직 거리가 먼 일로 여긴다. 물론 그렇게 여기기에 편안하고 즐겁게 살아간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할 때 그때서야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음을 실감한다.

60대 초반의 환자가 뇌출혈 진단 후 약물치료 받고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했을 당시는 앨튜브와 기관절개술을 했으며 의사소통은 전혀 되지 않았다. 미혼이라 보살펴 줄 사람도 없는 처지였으며 아무래도 혼자 지내다 보니 몸관리를 제대로 못한 듯 했다. 다행이라면 형제들이 적극적으로 재활치료를 원했고, 병원비 부담은 물론이고 나중에 개인 간병인을 쓰게 되면 그것 또한 부담한다고 했다.

재활치료를 받고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케어를 받으면서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고, 간단한 의사소통은 손으로 하기도 했다. 손에 힘이 생기면서는 필담이 가능해졌다. 어느 날 찾아뵈었을 때는 ‘선생님 부탁이 있어요. 동생한테 전화해주세요’라고 썼다.

전화번호는요? 라고 묻자 ‘010-X-0000 가운데 번호는 몰라요’라고 쓴다.“왜 무슨 일로 전화를 하고 싶은가요? 전화해서 뭐라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하자 동생들이 있는 고향으로 가고 싶다며 가능한 빨리 데려가 달라고 하셨다.

자세를 낮춰 눈높이를 맞추고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온 맘과 몸을 기울여 들어주려 하자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도록 눈물을 흘렸다. 글씨를 쓰긴 하나 힘이 없었고, 겹쳐서 쓰기도 해서 중간중간 물어보면서 필담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 동안 많이 힘드셨죠. 동생분도 오빠가 회복이 잘 되어 나오길 바랄 거에요. 지금 치료 중에 나가면 동생분도 힘들고 본인도 힘들 수 있으니 조금만 더 참고 치료에 집중하고 다 나아서 갔으면 해요”라고 하자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동생이 경제적인 부분 걱정하지 말고 오빠를 위해 최대한 도움을 주고 재활치료가 잘 되기를 바란다고 했던 내용을 기억하며 전달해주자 다시금 얼굴이 빨개지도록 눈물을 흘렸다. 앨튜브 빼고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해서 고마운 동생에게 따뜻한 말,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작은 것이지만 선물도 하면서 잘 지내려면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야 된다고 하자 먼저 손가락을 내밀며 약속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는 증거라며 앞으로 힘들거나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 해달라고 하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이 없던 상태에서 오셨던 분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뜨거운 눈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울컥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찾아 뵙고 동생이랑 통화한 내용을 전하자 말 한마디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지 몇 번을 물어봤다. 동생분이 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잘 되기를 바라니 분명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다고 격려를 해 드리자 다시 한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울음을 통해 감정발산이 잘 되었는지 차분하고 평온해 지셨고, 치료도 적극적으로 더 잘 받으셨다.

재활치료를 위해서는 다학제 통합진료도 중요하고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주위에서 함께 힘을 보태고 응원해주는 그 기운도 중요하다. 장애인으로 살게 될까 두려워하는 그 마음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좀 더 힘을 내 보자고 격려하며 도움을 줄 수 있는 그 일이 그래서 내겐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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